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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Aug 25. 2019

「여름의 끝자락」, 이 한 곡으로 충분해

1년 5개월을 기다린 김동률의 디지털 싱글

아, 이번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이 글은 뮤지션 김동률의 곡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그의 취향이 곧 내 취향인 팬 시점으로 작성되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김동률은 만날 똑같은 음악만 해' 라거나, '예전 곡들은 좋았는데 요즘은 좀 별로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람회 1집부터, 아니면 김동률 1집부터 이번 디지털 싱글까지 듣고 이 글을 읽어주면 고맙겠다. 여의치 않다면 라이브 앨범만 들어도 김동률의 음악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곡 발표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한 새 프로필




이토록 기억에 남을 여름의 끝자락이라니


부제에서 '1년 5개월을 기다린 디지털 싱글'이라고 썼다. 이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김동률이 가장 최근에 발표했던 곡은 작년 12월 콘서트 첫날 공개한 「동화(feat. 아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5개월을 기다렸다는 말은 바로 아래 포스팅 때문이다.



2018년 3월 16일 '첫' 디지털 싱글 계획을 알리면서, 계절에 어울리는 곡을 한 곡씩 공개하겠다고 했다. 봄이 다 지나가자 더 더워지기 전에 여름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해 9월 「노래」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지. 그건 기다려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그러더니 올해 8월 5일, 이례적으로 악보부터 선공개했다. 피아노는 김동률과 절친으로 알려진 클래식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맡았다. 사실 두 사람의 컬래버레이션이 있을 거라는 소문은 작년 말부터 있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던 차였다.



김동률 악보 치고는 심플한 편이라, 일단 쳐 보기로 한다. 하지만 템포가 루바토.

Rubato
이탈리아어로 ‘도둑맞다, 잃어버리다’를 뜻한다. 음악에서는 ‘템포 루바토(임의의 템포)’라는 식으로 쓰이며, 그 부분에서는 연주자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템포를 바꾸어도 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18세기 이후 특히 쇼팽이 널리 사용하였는데, 화음(和音)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정한 한계가 있으며 어디까지나 감정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것이라야 한다.  (두산백과)


심플해도 김동률이다. 겨우 음이 이렇구나 정도로만 쳐 보고 누군가 올려주길 기다린다. 역시, 여기저기서 피아노 좀 친다 하는 이들이 앞다투어 곡을 연주했다. 소박한 연주, 감정이 흘러넘치는 연주 등 여러 버전을 들어보면서 김정원의 연주는 어떨지도 궁금해했다. 그러다 티저 영상도 올라오고 이제 본 곡이 올라올 것만 기다리던 전날,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2년 전에 작업을 마치고 묵혀서 발표한 곡


이건 도저히 전문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내일이면 ‘여름의 끝자락’ 음원이 발표됩니다.

악보를 읽어보셨거나, 티저 연주를 들어보신 분들은 완곡이 어떨지 많이들 궁금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대성공이네요. 하하. 한 번쯤은 이렇게 완성품이 아닌 형태의 선공개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랜 기간 한 곡을 만들어가다가,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그 과정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여러 소회에 잠겨 곡을 감상하게 되는데요. 비슷하게나마 여러분들도 그러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곡의 분위기를 얼핏 짐작할 수 있으니, 이런 반주에 어떤 멜로디와 어떤 가사가 붙을까를 상상할 수 있는 시간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음원이 발표된 후에, 여러분들의 상상과 어떻게 다를지, 기대에 부응했는지, 그런 반응들도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연주 영상을 찾아들어보면서, 같은 악보인데도 제각기 다른 느낌의 연주와 해석이 매우 재밌고 신기했었는데요. 공유는 몇 개 못했지만, 연주 영상 올려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수줍게 혼자서 몰래 쳐보신 분들도요.

‘여름의 끝자락’은 처음 멜로디를 쓸 당시부터 김정원 씨의 연주를 염두에 둔 곡입니다. 그래서 정원이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본격적인 피아노 편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곡을 하기 전에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초벌 편곡이 끝난 후에도 정원이와 여러 번 만나서 검수를 받았는데요. 첫 연습 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사운드를 마침내 현실 세계에서 듣게 되는 기분! 초견임에도, 제 맘을 다 읽고도 넘치는 연주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입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친구의 격려에도 힘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물론 ‘훌륭한’ 피아니스트이니까 가능한 거겠지만) 조언과 여러 제안들이 너무 값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 매끄러운 연주를 위해서 뿐 아니라, 음악 자체를 해석하는 여러 시각들을 열어 주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분명 제가 쓴 곡인데, 저는 채 들여다보지 못한 숨겨진 부분들을 끌어내 주는 안목과 연주에 매번 레슨을 받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렇게 여러 번 수정을 거듭하여 편곡이 완성되었고, 오랜 시간 공들여서 가사를 쓰고 녹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언 2년 만에 여러분들에게 곧 공개가 되겠네요.

실은 이미 2년 전에 모든 녹음 과정은 끝났는데요. 작년 여름에도 공개할 수 있었던 곡을 일 년 뒤로 미뤘던 것은, 그만큼 제가 이 곡을 아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름의 끝자락’은 일반적인 가요 형태의 곡은 아닙니다. 좀 더 클래식 가곡 형태에 가까운 곡이지요. 만약 정규앨범 안에 삽입되었더라면, 누군가에겐 수록곡 중 한 곡으로 그냥 스킵하게 되는 곡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기왕 싱글로 몇 곡을 발표하게 된 이번 기회에 이 곡을 가장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항상 대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다수가 아닌 소수 리스너를 위한 음악도 진지하게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걸 티 내고 싶었나 봅니다. 단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건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스며들어 조용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와서 보니 미니앨범 <답장>을 공개할 때 벌써, 모든 곡을 다 만들어 놓고 그렇게 하나씩 발표했던 것이다.


봄(그럴 수밖에), 가을(노래), 겨울(동화) 이제 여름(여름의 끝자락)까지, 모든 계절이 완성된 것 같다. 하지만 고대하던 이 곡을 들으면서 한없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 미리 말하지만 이 곡은 정말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동률 곡의 순위를 바꿔야 할 정도로 마음에 든다.


그 어떤 곡 보다 김동률과 닮은 곡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서정적인 음악이 좋은걸요.


- 2018년 9월 11일, 두 번째 디지털 싱글 노래 발표 포스팅 중


김동률 하면 풍성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떠오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사실 국내 대중가요의 스트링 편곡은 유재하가 시작해서 김동률이 완성했다는 말이 있을 만큼 김동률의 음악은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뒷받침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곡은, 오로지, 피아노 반주와 김동률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2015년 <THE CONCERT>에서 김동률은 6집 동행 수록곡인 「그 노래」의 일부를 완전한 무반주로 불렀다. 올림픽 체조경기장 무대에서 핀 조명이 그만을 비춰주는 가운데, 그 넓은 공간을 그의 목소리 만으로 채웠다. 무대 효과며 모든 걸 아낌없이 사용한 공연을 보던 중 나온 장면이라 더 충격이었고 그만큼 더 감동이었다.


「여름의 끝자락」도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의 절친인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반주와 함께, 최대한 담백하게, 어쩌면 약간은 서툴게 부르는 듯한 곡이다. 기교 없이 부르는 목소리가 한없이 서정적이고 슬프다. 마치 와인을 묵히듯 2년간 아껴뒀다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죽여 듣다 곡이 끝나면 그 잔향을 느끼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브 음원이 아니지만 라이브 같은 생각이 든다. 이 곡을 녹음하면서 감정이 북받쳐올라 몇 번이나 멈췄다 또다시 녹음하지 않았을까? 콘서트에서 듣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라이브로 들을 자신이 없다. 듣는 사람도 그렇고 부르는 김동률도 오열하지 않을까...


소속사 자료 내용이겠지만 '단편소설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가사'라는 말에 약간은 낚인 듯도 하다. 「그럴 수밖에」처럼 구체적인 전개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곡에는 다른 가사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대중가요지만 독창이나 합창곡으로 불려도 될 만큼, 서정적인 곡이다.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한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듣는 완벽한 노래


사실 악보만 공개됐을 때는 정말 궁금했다. 이후의 멜로디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이 곡이 불러온 가사는 어떤 내용일지, 피아노는 어떤 연주 일지,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어떨지.


이 곡은 가사가 있는 노래지만 피아노가 아니면 그 감동이 조금은 덜할 것 같은, 처음부터 피아노와 함께 태어난 곡 같다. 김동률이 '처음 멜로디를 쓸 당시부터 김정원 씨의 연주를 염두에 둔 곡'이라고 언급했듯이. 그래서 피아노가 절반의 역할을 하는 곡이다. 김정원의 목소리는 없지만, 20년간 우정을 쌓아온 두 음악가가 만드는 앙상블이다. 이중창 같기도 하고, 피아노 이중주 같기도 한 아름다운 곡.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하는 4집 <토로(吐露)>에서 「River」와 「잔향(殘響/ 殘香: 한자를 둘 다 쓴 이유는 이 곡만 한자표기가 없어서 중의적인 의미라 생각해 넣었다)」, 그리고 「청원(請願)」에 김정원의 연주가 들어가 더 완벽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그들이 함께한 시간만큼 협업은 더 자연스럽다.


김동률의 곡을 많은 이들이 자기 목소리로 불러보곤 하는데, 김동률을 흉내 내려 하기보다는 가곡처럼 불러주면 더 어울릴 것 같다. 혹은 언젠가 김동률이 피아노만으로 꾸미는 콘서트가 있다면, 거기서 소박하게 들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거기다 지난 <답장> 뮤직비디오와 콘서트 인터미션 영상을 제작한 CASKA 김선혁 감독이 작업한 꿈같은 뮤직비디오까지 선물 받았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아련하고 서정적인 단편영화 같다. 김동률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감사인사를 남겼다. 연기를 해 준 신인배우 김도건도 주목해봐야겠다.

https://youtu.be/YVB8vL7rBjY


그 답장은 꿈이었을까


작년 한 해를 채워준 미니앨범 <답장>이 이제야 마무리되었다. 김동률의 이전 앨범 구성을 참고해 디지털 싱글 4곡의 순서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름의 끝자락을 가장 마지막에 발표한 김동률의 선택은 신의 한  라고 생각한다. 가장 김동률다운 곡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답장> 앨범 전체를 미처 보지 못했던 색으로 물들인 듯하다. 그래서 그럴까, 여름의 끝자락을 듣고 <답장> 앨범을 다시 들어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들린다. 앨범 전체가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같다고나 할까..


노랫말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곡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김동률 그 자체인 아름다운 곡, 음원 순위가 아니라 그의 바람대로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귀와 마음에 스며들어 조용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더운 여름의 끝자락
매미들은 울어대고
느릿느릿 읽던 책 한 권 베고서
스르르 잠든다

내가 찾아간 그곳은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아침이면 까마득히 다 잊혀질
아득히 먼 그곳

가물가물 일렁이는
누구일까 애타게 떠올려 봐도
무엇을 찾고 있는지
코끝이 시리다

홀로 걷고 있는 이 길
어제처럼 선명한데
이 길 끝에 나를 기다릴 누군가
마음이 급하다

라라라라 읊조리면
어느샌가 겹쳐진 낯익은 노래
그 순간 눈은 떠지고
바람만 흐른다

또 꿈이었나 멍하니 기지개를 켜다가
젖어 있는 내 두 눈을 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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