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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Sep 14. 2019

[성장판 서평단 2기] 난 아프면 총을 쏴

브누아 필리퐁 <루거 총을 든 할머니> 리뷰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갈까?


그나마 개인의 목소리가 수용되는 현대에서 조차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다. 아침 기상시간을 완벽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직장 출근 시간, 등교시간, 프리랜서라 할지라도 개인을 컨트롤하는 무언가가 있다.


네이* 판의 게시판에 가 보면 21세기에도 스스로의 삶을 속박하는 수많은 사연이 있다. 소위 '판춘문예'라 불릴 만큼 자극적인 사연도 많다. 실제로 자극적인 사연을 지어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나...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베르트를 능가할만한 사연은 아직 읽어본 적 없는 듯하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 바람난 남편,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 거기에 전쟁 중 침입해 강간을 시도한 나치까지. 그녀는 자신을 아프게 한 존재들을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처리한다. 그리고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처럼 지하실에 그들을 묻는다. 이 정도 되면 기사 타이틀은 자극적으로 달수 있다. '결혼, 살해, 매장... 이 시대 최고의 악녀' '누가 베르트 가비뇰을 인간이라 하는가' 등등.


400페이지를 훌쩍 넘어가는 이 소설은 옆집 사람에게 총을 쏜 베르트를 취조하며 진행된다. 지하실의 시체 일곱 구, 그리고 동물 사체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지만 베르트의 사연은 단순히 그녀가 누군가를 살해했다로 요약할 수 없다. 시체는 결과일 뿐이고, 102년간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을 설명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1914년생 여성


1914년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이 시대 여성의 지위란 지금과 비교해 보잘것없었다. 프랑스에서는 1945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다. 베르트는 여자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기에 태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해 왔다.


첫 번째 결혼에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잡화점 주인과 결혼하지만 이 역시 그녀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다. 할머니, 어머니, 베르트 3대가 사는 집안에서 어머니가 가출하고 할머니는 독주를 만들어 팔아 손녀를 돌봤다. 할머니가 나이가 들자 베르트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여러 번의 결혼을 거치며 '왜 베르트는 이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 결혼마다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이며, 베르트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방법이었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강하다


베르트는 자신을 강간하려는 나치에게서 빼앗은 루거 총을 사용해 자신을 지켜낸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베르트가 갖고 있는 능력이 있는데 독주라도 쉽게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집을 찾은 남자들은 베르트의 할머니, 나나의 비법으로 만든 독주를 마시고 쉽게 취한다. 일찌감치 이 술을 마셔온 베르트는 함께 독주를 마셔도 흔들리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알코올에 강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이를 이용해 그녀는 언제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운전면허는 없지만 차는 있다


베르트는 차를 가지고 있다. 자동차를 갖고 있고, 운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혼자서 얼마든지 멀리 이동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운전을 할 줄 알지만 베르트가 살던 시대에 자기 차를 가지고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강점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진 이탈리아인 남편을 처단하고, 이 차를 이용해 무사히 그를 옮긴다. 하지만 그녀는 운전면허를 따지는 않았다. 자유롭게 필요한 것들을 취하고 불필요한 것은 무시하는 그녀를 잘 묘사한 것 같다.


결정적인 순간, 빠르게 실행


베르트는 결코 성급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에게 조금 더 기다렸다가 이혼을 했다면 살인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조금 더 기다려 재혼을 했다면 좀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베르트의 결정은 언제나 신속하고 명확했다. 이번 결혼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번 살인은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번 결혼은 아이를 갖기 위해서 등 그 순간에 직면한 문제를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낸 것이다. 비록 그 결과만 보면 지하실에 여러 구의 시체를 숨긴 연쇄살인마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영화처럼 풀어낸 102년의 인생


작가인 브누아 필리퐁은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적나라한 묘사에 당황한 적도 있었지만 영화 장면을 보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브누아 필리퐁
브누아 필리퐁: 1976년생. 소설가인 동시에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유년시절부터 만화와 영화에 심취했던 그는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 코엔 형제, 베르트랑 블리에, 프랭크 밀러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아 무거운 주제를 블랙 유머로 가볍게 풀어내는 스타일을 장착했다. 감독으로서 메가폰을 잡은 장편 영화 「어느 날 사랑이 걸어왔다」는 2010년 15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에 선정되었다. 2018년 출간한 화제의 장편소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핵심만을 관통하는 빠른 전개로 프랑스의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또 다른 작품으로 『꺾인 사람들』(국내 미출간)이 있다.(위즈덤하우스 작가 소개)

 

작가의 성별에 따라 작품을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성 작가가 썼다면 조금은 더 감정이 격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브누아 필리퐁의 작품은 처음 만나보지만, 다음에도 믿고 볼만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올려둬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2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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