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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난 건 아니지만 함께였던 여행_2화

여행 후에도 남은 인연들

by 바다기린


이번 글은 여행지에서 맺은 인연이 여행 후까지 이어졌던 경우들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번 글과 마찬가지로 기억에 남는 모든 이들에 대해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던, 혹은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이들과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은 한 사람 한 사람 특별하다. 그 중 몇 명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들.



졸지에, 결혼 전도사

개선문에서 바라본 에펠탑


파리에서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나는 종종 ‘유랑’을 통해 한국인들을 만났다. 낮에는 혼자 다니는 것이 좋았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가 누군가와 함께여서 어디를 가도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주로 저녁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을 찾았다.


‘샹 드 마르스’ 에서 돗자리를 깔고 불 켜진 에펠탑을 바라보며 와인 마시기, 라탱지구에 있는 북적이는 재즈바 가기, 몽파르마스 타워 56층 ‘씨엘 드 파리’ 레스토랑에서 칵테일 마시기


처음 만나는 사이라는 어색함은 잠시. 혼자 하기 어려운 일정을 함께하기 위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그날도 나는 오후 일정을 마치고 유랑 게시판을 훑었다. 다른 날과 달리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날따라 집에 돌아와 느끼는 적막이 유독 외로웠다. 당장 만날 수 있도록 내가 글을 올리지 않고 지금 팀원을 구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쪽지를 보냈다. 답장이 바로 왔다.


“저희 남자 셋인데 괜찮으세요?“

“제가 유부녀에 30대 중반인 게 괜찮으시면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답장을 보내면서도 괜히 멋쩍었다. 이 남자 셋이 일행을 구하는 건 ‘여자’와 놀고 싶어서 아닐까. 거절 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쿨하게 오케이를 외쳤다. 나는 그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장소는 내가 정했다. 한국에서 잠깐 여행 온 사람들 중 그 곳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혹여 알더라도 짧은 일정에 갈 곳 넘치는 파리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남자 셋 중 둘은 나와 동갑이었고 한 명만 두 살 어렸다. 휴, 나로서도 대학생 셋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젊은이들을 인솔하는 이모 역할을 하고 싶진 않았거든.


“와,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아요? 진짜 멋진데요?”


‘팔레 드 도쿄’에는 사요궁처럼 발코니 같은 작은 광장이 있다. 옥상이라고는 하지만 높은 곳은 아니다. 미술관 건물과 레스토랑 건물 사이를 잇는 공터 같은 곳인데, 이 곳에서는 에펠탑과 센강이 한 눈에, 꽤 가깝게 보인다. 여름 밤에는 여기에 노천 펍이 열린다. 디제잉을 곁들인 힙한 음악이 연신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간이 테이블에 모여 앉거나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전년도 겨울에 파리에 왔을 때 팔레 드 도쿄의 전시를 보고 그 옆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동생과 저녁을 먹었었는데 전시도 꽤 훌륭했고 여기서 보이는 풍경에 매료되어 이번에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도 몇 차례 혼자 왔었다.


팔레드도쿄 근방에서 바라본 에펠탐


거쳐 온 곳들 중 스페인의 ‘이비자’가 제일 좋았다고 하는 걸 보니 왜 그들이 여길 마음에 들어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생맥주를 하나씩 주문해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음악 소리가 꽤 컸지만 야외라 그런지 대화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셋이서만 다니다보니 먹는 것도 가는 곳도 비슷비슷해 마침 정해진 일정이 없던 오늘 저녁, 새로운 멤버를 통해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애초에 성별도 나이도 중요하지 않았다고. 그 말이 진실이면 뭐, 다행이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도 덕분에 울적했던 기분을 털어내고 한국말로 맘껏 말하고 싶은 욕구를 풀어냈으니. 나는 남자 셋이 유럽여행을 하면 어떻게 다니는지 궁금했던 터라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었는데 질문의 대상이 된 건 나였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됐어?”

“남편이 혼자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하라고 해 준 거야? 대인배 형님이네.“

“결혼할 사람은 어떻게 알아봐?”

“결혼하면 좋아?”

“남편이랑 결혼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뭐야?“

“파리에 또 이렇게 너만의 스팟이 있어?”

”파리에 동생이 산다고? 예뻐?“


그날 밤이 깊도록 우리는 이동 없이 그자리에서 대화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서로의 카톡과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주고 받았고 그들이 파리를 떠나기 전 한 번 더 만났는데 그때는 그들의 로망대로 ‘샹 드 마르스’에서 와인을 마셨다. 역시나 지하철이 끊기기 직전까지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다. 유랑에서 일행을 구할 때 나는 매의 눈으로 ‘짝짓기’가 목적인 남녀를 걸러냈다. 그런 글들은 아무리 점잖은 척 해도 토씨 하나에라도 의중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서 능구렁이가 되다보니 직감적으로 알게 된달까. 무조건 술을 먹기 위한 모임도 걸러냈다. 인원이 너무 많은 모임도, 다짜고짜 본인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사람도 탈락이었다. 그런 나의 눈에 거슬리지 않은 글이었기 때문에 쪽지를 보냈으면서도 한 켠으로는 망설임이 있었다. 불순한 의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파리에서 만난 로맨틱한 인연’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누군가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나를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이 궁금해했던, 기혼자로서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3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일과 연애, 결혼에 대해 사뭇 진지하다는 걸 느꼈다. 한국에 있는 내 남사친들도 모두 결혼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여자친구가 없는 그 나이대의 남자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나는 스물 일곱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3년 연애 후 결혼을 했고 그 당시 결혼 6년 차였다. 그런 내가 30대에 ‘혼자’인 불안함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자유와 가능성을 부럽다 했지만 그들은 내가 ‘좋은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룬 것을 부러워했다. 이야기를 나눌 수록 한국에 있는 남편이 그리워졌다.


한국에 돌아와 웨딩플래너가 되어 한참 정신 없이 일하던 시기, 그들 중 한 명이 연락을 해왔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보고 있었지만 그 애가 연락한 이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나 결혼해. 상담 받으러 가도 되니?”


2년 전 파리에서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냐’,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라면서 연거푸 술잔을 비우던 애가 결혼을 한다니! 몇 주 뒤 고객으로 마주한 커플은 여느 예비 부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여전히 ‘결혼’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막연한 희망이 아닌 계획이 되어 있엇다. 그 친구가 데려온 여자분은 세 살 연하로 예쁘장했고 늘씬했다. 어떤 드레스를 입혀도 근사할 만 했다. 그 친구의 ‘소원’을 이루어준 이 귀인에게 나는 첫 눈에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나의 편애를 느꼈는지, 결혼 후 2년 뒤 본인의 남동생 결혼 준비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파리에서의 어떤 하루, 예기치 않은 만남이 여기까지 흘러오다니 참 신기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결혼’이 실제가 되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도 각별함을 느꼈다.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는 사이로

엄마아빠, 남편과 함께 본 마테호른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한달 간의 유럽 여행. 나의 일과는 당일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다음날의 일정을 점검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날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눈으로 관찰한 식구들의 체력 소진 추이를 가늠해 한국에서 미리 짜 온 계획의 A~C안에서 시의적절한 옵션들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옵션을 찾느라 한참을 졸린 눈을 부비며 가이드북,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닥치는대로 뒤졌다.


때로는 인스타그램에 여행 사진을 올리며 나와 같은 태그가 달린 게시물들을 검색해보았다. 한참을 보다 보니 내가 같은 사람의 게시물을 반복해서 클릭해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분명히 나도 똑같은 곳을 다녀왔는데 그녀가 찍은 사진 속 장소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감성적인 색감과 눈에 쏙 들어오는 구도, TPO에 맞는 옷차림,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피드를 매일 확인했다. 신기하게도 나와 루트가 자주 겹쳤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중인 것도 같았다. 나도 그녀처럼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어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보기도 하고 그녀가 올린 맛집을 참고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방문했던 여행지에 그녀가 머무르고 있을 때는 나 또한 좋았던 곳들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하지만 하루 고민해 하루 완성하는 벅찬 일정에 그저 상상으로만 머문 참견이었다.


엄마아빠와 포루투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그녀의 계정은 'K‘단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틈틈히 그녀가 올리는 서울의 맛집들을 스크랩했다. 좋아하는메뉴나 인테리어 분위기 등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지인이 아닌 누군가의 인스타그램을 이렇게 진득하게 지켜본 적은 없었는데 이쯤 되면 내 입장에서는 이미 ‘아는 사람’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문득 나는 그녀에게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몇 달 전부터 인스타 팔로우 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제가 올해 여행했던 곳들을 똑같이 여행하고 있는 모습에 반가워서 모든 게시물을 다 봤던 것 같아요. 분명 저도 다녀온 곳인데 **님 사진 속 그 장소는 훨씬 더 멋지게 표현되어 있어서 매번 감탄했답니다. 그리고 의상도 장소에 맞게 센스있게 선택하시는 거 보고 나도 여행 다닐때 기능성만 생각해서 옷 입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ㅎㅎ. 같은 곳을 가도 이렇게 멋진 사진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부러웠네요. 저도 특히 파리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님도 파리를 특별히 애정하시는 것 같아 괜히 친근감도 느꼈네요. 좋은 사진 통해 제가 몰랐던 좋은 곳들 알려주신 점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예쁜 사진 통해 좋은 곳 많이 알려주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그냥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파리 이야기라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DM 확인을 잘 안해서 이렇게 따뜻하고 감사한 글을 지나칠 뻔 했네요 ㅠㅠ 저렇게 좋게 생각해 주셨다니 너무 감사해요. 실상은 가족여행 가는데 제가 계획한 거라 많이 지치고 쩔어있었는데. 하하 저도 늘 여행 다닐때 편한거 편한거 했는데 막상 사진 보니까 너무 아쉽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여행은 이쁜 옷도 좀 입어보자!라고 좀 챙겨 갔던 것 같아요. 여행 마지막에는 결국 지쳐서티만 입고 다녔지만요 ㅋㅋㅋ. 저도 늘 남의 사진 보면 ‘아, 같은 데 다녀왔는데 저렇게 멋있는 데였나’ 싶었는데 그마음을 저에게 느껴주셨다니 너무 부끄럽고 감사합니다. 진심 가득한 이 메시지 하나로 오늘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너무 따뜻한 하루 출발이에요! 주변에서 보면 관심사가 정말 같거나 같이 여행 얘기를 공유할 사람이 없더라구요.. 서로 다녀오지 않은 곳을 얘기해봤자 얘기도 잘 안통하구.. ㅠㅠ 정말 ## 님만 괜찮으시다면 기회 잡아 함께 얘기 나누고 맛있는 거 먹어도 좋을 것 같아요. 흐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정말 친하게 지내요! 덕분에 아침부터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네요. 히히. 오늘 날씨 너무 추운데 꽁꽁 싸매시구 다니시구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그녀의 답장을 보고 마음이 따땃해졌다. 그저 팬심으로 보냈던 메시지여서 이런 화답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는 진짜로 만났다. 그녀가 알려준 브런치 카페로 향하는 길,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30대 중반이 지나면서 회사 동료 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서로에 대한 호의만으로 마주하게 된 인연이었다. 그녀는 첫 만남에 자신이 직접 만든 라구소스와 토마토절임을 가져다주었는데 그 맛이 파는 것과 다르지 않아 깜짝 놀랐다. 여러모로 참 재주가 많은 친구였다. 아무리 떠올려도 질리지 않는 파리에 대한 감상을 실컷 떠들면서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었던 그날의 대화도 무척 즐거웠다. 브런치카페에 이어 디저트샵까지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험도 즐거웠다. 누군가를 만날 때 어디를 갈지 정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었는데, 그녀의 추천은 하나 같이 만족스러워 이후에도 그녀를 만날 때면 늘 남편을 데리고 다시 가고 싶은 곳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알고 지낸지 어느덧 6년째지만 아직도 나는 그녀의 나이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아마 나보다 5살 정도 어릴 것이다. 그보다 더 어릴수도. 하지만 나이 차이는 큰 의미가 없는 사이라는 게 더 좋다. 우리는 함께 부산여행도 다녀왔는데 그때 처음 부산도 비행기로 가는 게 더 편리하다는 걸 알게되었고 이후 매년 서너번씩 부산을 다녀오는 소위 ’부산 회전문‘이 열렸다. 내 주변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더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숨겨진 맛집과 예정된 핫플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덮어놓고 믿고 따라가는 게 오히려 이득인 사람.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지가 단단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에 있었다. 그리고 정말 좋았던 건, 그녀가 나 같은 사람에겐 그의 기대만큼 호응하기 어려운 부류인 마냥 여자여자한 성향이거나 발랄함 가득한 텐션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편안했고 매력적이었다. 몇 차례 만나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내가 물었다.


“나는 너를 만나면 새로운 곳도 알게 되고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도 나눌 수 있어서 즐거운데, 너는 나를 만나면 뭐가 좋아?“

“언니는 매사 열정적이잖아요. 새로운 일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또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이런. 이 친구는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안심이 되면서 동시에 앞으로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렵 나는 이런저런 마음 소란한 일로 매사에 시니컬해져있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나의 한계에 대해 실감할 일이 많아지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쪼그라들어 있었던 마음이 그 친구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스르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엄마아빠와 호카곶


그 사이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역시나 육아도 정말 예쁘게 잘 하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계정에서 정보를 묻는다. 아이 옷은 어디서 샀는지 유아식 레시피는 어떻게 되는지 가방이나 신발은 어디껀지 등등. 누가 보아도 인플루언서인 그녀의 삶을 곁에서 들여다본 나는 안다. 그녀가 보여주기 위한 것과 실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만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이 피드 안의 근사한 사진들보다 훨씬 멋지다는 것을.


그때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나와, 그 메시지에 답해주었던 그녀를 다시 한 번 칭찬하고 싶다. 그러지 않았다면 계속 염탐만 하며 결국 부러움 외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뻔했으니까. 여행지에서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그녀는 어떤 의미에서 나와 여행 내내 함께했고, 일상으로 돌아온 후에는 오래 알고 지낼 사람이 되어 내 곁에 있다.


여행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길을 물어보거나, 잠시 물건을 빌리거나, 짧은 대화로 무료한 기다림을 견디기도 한다. 때로는 남은 인생에 포함될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떤 만남이든 같은 날, 같은 여행지에 함께 있어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것은 분명 ‘옷깃만 스쳐도’ 보다는 훨씬 큰 인연이다. 모든 순간에 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행 중에는 나와 함께하는 일행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어떤 우연으로 누군가와 인연이 닿았을 때 최소한 그를 귀하게 대해야 한다. 눈에 띄는 불쾌한 행동으로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그 역시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므로 상냥하게 대하고 성심껏 답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다른 어떤 이의 여행을 망칠 당위는 없다. 우리는 각자 본인의 여행을 하고 있을 뿐, 똑같이 어쩌면 한 번 뿐일 경험을 하는 중이니까.


우리는 여행지에서 대부분의 것에 관대해진다. 생경한 음식도, 복잡한 관광지도, 이해되지 않는 절차도 ‘문화’라고 인정하며 웃고 넘긴다. 하지만 희안하게 사람에게 있어서만큼은 더 보수적이 되는 것 같다. 불친절한 웨이터,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현지인, 반갑다고 통성명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한국인을 대하며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왔냐며, 혹은 이럴 시간 없다며 툴툴댄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여행자로서 받았던 친절들에 대해 생각한다.


눈이 마주치면 은은한 미소를 띄워주던 사람들, 앞서 가며 문을 열어주던 사람,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여유롭게 피해주며 되려 미안하다고 말하던 사람, 소변이 너무 급한 나머지 뛰쳐들어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화장실을 안내해주던 카페 사장, 와인 한 잔을 시키며 프리스낵이 없냐는 질문에 본인이 먹던 감자칩을 내어주던 웨이터, 의심의 눈초리와 거부하는 손짓에도 끝내 따라와 픽업 차량을 불러주었던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안내원, 웨이팅을 하던 식당 앞에서 우리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부디 식사가 맛있길 바란다고 말해주었던 현지인. 나라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나 예기치 못한 배려는 당시보다 지나고 나서 은은한 여운을 주었다.


며칠 전, 자라 매장에 줄을 서 있는데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응대하는 직원이 없는 계산대 줄에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바로 옆 교환/환불 줄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그들은 왜 계속 옆에 있는 줄만 줄어드는지 의아한 눈초리였다.


“이 줄은 교환/환불 전용 줄이고 계산을 위한 직원이 지금 없는 상태야. 혹시 빨리 결제하고 싶다면 저 문 뒤에 있는 셀프 체크인 기계로 가봐”


그 말을 듣고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후다닥 이동했다. 나는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이탈하지도 않고, 따로 시간을 내지도 않고 그저 말 몇 마디로 그들의 수고를 덜어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이렇게 평소의 나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은 친절도 여행자에게는 소중한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기에. 혼자 떠났을 때조차 늘 누군가의 친절과 함께라는 것을 알고나면 그 중 어떤 여행도 외롭거나 나쁘기만 한 여행은 없다고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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