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이상적인 여행메이트의 탄생
베네치아에서 부장님과 함께 곤돌라를 타기 전, 내심 아쉬웠다. 배 한 척에 무조건 10만 원이었기 때문에 아까 수상버스에서 정보를 주고받았던 한국인 여학생 둘을 섭외하면 4분의 1로 정산할 수 있었는데 부장님이 불편하다고 하셔서 둘이서만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편이랑 타는 거랑 비교하면 50% 절약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하기로 했다.
곤돌라로 운하의 골목까지 들어가 보니 확실히 걸어 다녀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건물의 뒤편 집과 집 사이 오직 곤돌라만 다닐 수 있는 수로는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했다. 머리 위로 빨랫줄이 걸려 있었고 개인 보트를 정박하는 공간과 그곳에서 바로 집과 연결되는 얕은 계단의 구조를 보니 이곳이 영화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게 실감 났다. 곤돌리에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는 저너머 여전히 시끌벅적할 관광객들의 웅성거림보다 물이 벽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큰 물길로 나와도 수상버스를 탈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납작한 배 바닥에 앉아서 보는 시야는 소금쟁이처럼 내가 물 표면에 바로 더 있는 듯했다. 만약 그 여학생들과 함께 탔다면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대화를 하느라 이렇게 곤돌라의 묘미를 음미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밀고 당기고, 따로 또 같이
한동안 말없이 베네치아의 분위기에 취해있던 우리는 둘 다 동시에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는 남자랑 와야 하는 곳이네요. 이런 곳을 부장님이랑 와 있다니.”
“그러게 말이다. 근데 남자여야 될 것 같아. 남편 말고.”
“오오, 맞아 맞아 ㅋㅋ“
남편과 함께여도 물론 좋겠지만 사실 베네치아는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유리공예품, 레이스 같은 특산품도 그렇고 다른 이탈리아 지역보다 비싼 물가도 그렇고. 아직은 현실감각이 덜 필요한 사이의 남녀가 함께 오면 이 도시는 모든 구석이 온통 황홀하게 로맨틱해서 여기서 결혼 약속까지 일사천리로 가능할 법했다.
우리는 각자의 남편과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보다 남편이 없어서 더 좋은 일들을 하기로 했다. 함께 카페 플로리안에서 3만 원에 육박하는 커피를 마시고(아무리 여자끼리여도 라이브 연주가 없었다면 합리화하지 못했을 금액이다) 내가 보더콜리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골목골목을 쏘다니는 동안 부장님은 눈에 띄는 옷 가게에 들어가 부피는 작고 가격은 무거운 옷을 쇼핑했다. 리도 섬에서 해수욕을 할 때는 부장님이 파라솔을 대여하자고 했지만 내가 막았다.
“부장님 옷 산다고 돈 썼잖아요. 이건 아껴요.”
반나절, 온종일 기준으로 금액이 책정되는데 우리가 해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돈을 내겠다고 하는 부장님 손에 양산을 쥐어주고 이걸로 버텨보시라고 했는데 덕분에 우리 둘 다 의도치 않게 태닝을 한 몸처럼 타버렸다. 나는 이미 탈 대로 탄 몸이었지만 부장님도 나 못지않게 온몸이 구워졌다. 곤돌라에 대한 복수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수용하며 플러스 마이너스를 맞춰갔다. 부라노섬에서는 당시 인스타에서 보았던 각기 다른 색상의 벽에서 찍은 아홉 컷의 사진을 격자 프레임으로 한 사진 안에 편집하는 걸 해보자며 돌아다니다가 탈진할 뻔했지만 둘 다 포기하지 않고 결국 해내고야 말았고 나중에 찍은 사진일수록 영혼이 없는 표정의 서로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이건 대학생들이나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보는 나에게 부장님이 또 당했다. 하지만 나도 부장님에게 맞추어 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다. 먹는 양이 적은 부장님이 식간이 짧아 도저히 레스토랑 식사를 못 하겠다고 했을 땐 노점의 조각 피자 하나를 테이크아웃해서 간단히 해결하기도 했고 로마에서 남부투어를 갔을 때는 폼페이에서 더위를 먹은 부장님이 포지타노에서 보트를 타는 체험은 못 하겠다고 너만 갔다 오라고 하셨는데 혼자 두고 가기 그래서 함께 바닷가 카페에 가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일행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로마에 왔으니 콜로세움은 당연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부장님은 동네를 산책하고 여유로운 오전을 보내고 싶어 해서 각자 원하는 걸 하고 점심 먹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매 일정을 둘 다 몸이든 마음이든 편한 쪽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각자 시간을 보낼 때도 같이 다닐 때도 불만이 없었다. 친구와 여행을 가보면 그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잘 맞을 것 같았던 친구와 의외로 안 맞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부장님과의 여행은 막연하게 ‘안 맞을 게 뭐 있겠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맞았다.
함께하는 이는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고
여행은 함께하는 이를 소중하게 만든다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이동할 때였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놀라운 기차 시스템을 경험했다. 분명히 20분 전에 전광판에 뜬 알림을 보고 3번 플랫폼으로 올라갔는데 탑승 시간이 5분 남았을 때까지 기차가 오지 않아서 플랫폼에 있는 전광판을 다시 보니 우리 기차가 5번 플랫폼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헐레벌떡 계단을 내려가고 또 오르고 5번 플랫폼에 가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에 올랐는데 이번에는 우리의 좌석이 없었다. 티켓에는 분명 몇 번 량에 몇 번 좌석이라고 찍혀있는데 예를 들어 7량 20A라고 하면 그 기차는 5량까지밖에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그 사이 기차는 출발을 해버렸고 승무원을 찾아 티켓을 보여주며 이 기차가 맞냐고 물어보자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맞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좌석이 이 열차에는 없는데 어디 앉아야 하는 거냐고 묻자 그는 여전히 동요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데나 앉고 싶은 데 앉아. 사람 오면 비켜주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나와 부장님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부장님이야 원래 화가 없는 사람이고, 나는 평소라면 뭐 이런 식이냐며 혼자 구시렁 대거나 좌불안석으로 동동거렸을 텐데 일행이 부장님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내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앞선 유럽여행에서는 남편이나 부모님과 함께였기 때문에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여행의 계획부터 실행까지 진두지휘하는 입장인 데다 남편과 부모님 모두와 함께 할 때는 양쪽의 체력과 감정상태를 동시에 살펴야 했고 부모님만 모시고 여행할 때는 수고와 책임을 나눌 조력자 없이 오로지 혼자서 두 분을 케어해야 했기 대문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기꺼이 그 모든 긴장을 감당할 만큼 특별한 추억이 된다.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공유하는 사이로서 여행의 에피소드들은 두고두고 함께 모였을 때 이야깃거리가 된다. 내가 여행의 대부분을 리드하더라도 그만큼 내 공로를 인정받고 상대의 만족이 내 만족이 되는 일체감이 크다. 그렇다 보니 막상 현장에서 보이콧(?)이 있을 때 설득과 회유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일정을 짤 때 상대의 체력도 감안하지만 취향을 고려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 힘을 내서 일단 가보면 분명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이다. 그럼에도 끝내 상대가 포기를 선언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너 혼자라도 다녀오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혼자 다녀온 곳들도 있기는 하다. 그럴 때면 이 좋은 걸 함께 보지 못하다니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에 사진과 영상이라도 보여주고 싶어 눈보다 손이 바쁘다.
하지만 부장님과 함께하는 여행에는 느슨해진 연대감에서 오는 묘한 편안함이 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세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첫째, 각자가 여행의 주체이며 서로를 위해 기획한 여행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둘째, 서로에게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강요할 수 없고 내가 원하는 수준의 만족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셋째, 동등한 입장에서 타협과 조율을 하는 것이 결정의 책임감을 덜어주고 기꺼운 양보와 배려로 이어진다.
모든 친구와의 여행이 이렇지는 않다. 무엇이든 함께해야 하는 스타일이거나, 본인에게만 맞춰주길 바라는 경우에는 가족과의 여행보다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일 수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맞춰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과 함께 여행할 때는 절대 하지 않는 생각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부장님과의 여행은 친구와의 여행이 주는 편안함과 편리함이 모두 있었던 여행이었다.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적당히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호흡이 잘 맞았던 것이다.
모든 여행이 옳다
부장님과 만나기 전 혼자서 피렌체를 여행했다. 유럽의 도시들 중 풍경이 예쁜 곳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의 풍부함과 매력이 독보적인 곳은 단연 파리라고 생각한다. 곳곳의 공원들은 매일 찾아도 새롭게 힐링이 되고 셀 수 없이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품이 하나같이 다 좋아서 한 달을 머물러도 질리지 않는 곳. 지금까지 내가 겪은 도시 중 그런 파리에 견줄만한 곳은 피렌체뿐이다. 피렌체에 있는 내내 며칠 뒤 만날 부장님이 일정 때문에 베네치아와 로마만 보고 돌아간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피렌체부터 함께 여행했음 더 좋았을 걸. 이것도 부장님이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하며. 그런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사실은 부장님께도 함께 여행을 떠날 ‘가족’이 있다는 거였다. 부장님이 부모님이나 남편과 함께 다시 이탈리아를 올 때 피렌체를 꼭 들르시라고 하면 되겠다.
어쩌면 가족과의 여행에 더 애를 쓰고 마음을 쓰는 이유는 ‘백업’이 없기 때문 아닐까. 친구와 와서 좋았던 곳은 가족과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보다는 드문 것 같다.
부장님과 나는 아이가 없고 남편과 유독 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남겨두고 온 아이 걱정도 할 필요 없었고 남편에게 줄 선물도 함께 고르며 비슷한 감정선을 공유할 수 있었다. 함께 여행하기 전에는 몰랐던, 누구보다 잘 맞았던 여행 메이트. 그래서 부장님이 하루 먼저 떠나고 로마에서 마지막 밤을 혼자 보낼 때 그렇게 헛헛했나 보다. 다행히도 이제 파리로 돌아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동생네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하며 소진되었던 여행 근력은 쉼 같은 이탈리아 여행으로 회복되었고 나는 다시금 가족이 그리워졌다. 이후의 파리 한 달 살기는 근거리에 사는 동생을 종종 만나며 지냈다.
퇴사와 함께 계획했던 나의 90일 유럽여행은 떠나기 전에는 온통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겪고 나니 그 안에서 가족의 의미, 남편의 배려, 부장님과의 우정, 나에 대한 반추를 곱씹어 보게 된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이 있었다.
떠나보아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은 여행지만이 아니다. 함께 하는 이도 더욱 잘 알게 된다. 혼자만의 여행이 좋은 것도 누군가와 함께 해봐서이고,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운 것도 혼자 있어봐서이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무언가는 남긴다. 체력과 돈과 시간을 흔쾌히 내어놓는 이유는 그 남은 무엇들이 두고두고 이렇게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께 떠날 이가 없어도 언제든 여행을 떠나고, 함께 떠날 이가 있다면 당장 떠나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