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가 불러온 파장
첫째 육아에 전념하던 아내는 둘째 출산을 몇 달 앞두고 쇼핑몰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었던 아내의 욕구와 때마침 나타난 유명한 쇼핑몰 유튜버의 등장이 아내를 쇼핑몰 사업으로 이끌었다. 쇼핑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발생했고, 아내의 쇼핑몰은 생각보다 빠르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전문 쇼핑몰을 표방했지만, 그 단가가 매우 낮은 편이라 판매를 하는 노력에 비해 순이익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그러던 2022년 초 쌀쌀했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태워 평소 자주 가던 장난감 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차가 정차했을 때 우리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꽤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잠바와 니트 모자를 쓴 어르신들이 파크골프를 치는 모습이었다. 한두 분이 아니라 모든 홀에 사람이 꽉꽉 차 있는 모습이었다.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을 한 자리에서 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무척이나 즐거운 듯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하 호호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까르르 웃기도 하고, 홀컵에 공이 아깝게 빗나갔는지 허리를 굽히며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는 그 운동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차가 출발하여 그 경기장의 입구를 보고 그곳이 파크골프장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장난감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그 파크골프장을 바라보았다. 어린이날 장난감 가게에 아이들이 북적이는 것과 같이 파크골프장에는 언제나 어르신들이 북적거렸다. 주차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저런 걸 팔아야지
파크골프장을 수차례 지나다닌 후 내가 꺼낸 한마디였다. 아내는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나 역시도 농담으로 꺼낸 이야기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약 1년 동안 파크골프장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 팔꺼냐', '안 팔 거냐', '저게 노다지다' 등등 농담반 진담반으로 파크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어디에 같이 갈 것을 요청했다. 어디냐고 묻는 나의 말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파크골프 제조사
처음에는 내 말을 농담처럼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을 해볼수록 파크골프는 온라인 쇼핑몰을 하는 사람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산업자체가 성장을 하며, 일정 수준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었다. 또한, 낮은 객단가의 아내의 제품과는 달리 파크골프채는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150만 원에 달할 정도로 객단가도 높은 아이템이었다.
그런 생각이 정리되자 아내는 본인의 방향과 가장 맞는 제조사를 선정하여 그곳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장님을 미팅하고, 온라인 판권을 확보하였다. 우리 부부의 판매 능력은 낮을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마음을 사장님이 알아주신 것 같았다.
그리고 수차례 미팅을 통해 우리는 파크골프채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 사장님은 대단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설명을 해주셨지만, 문제는 우리가 사장님이 설명해 주는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아내는 파크골프는 물론 골프에 대한 경험이 없었으며, 나 역시도 파크골프는 무지했고, 약 15년 전에 골프를 잠시 쳤던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이 있는데 이것을 고객들에게 표현을 하지 못해 팔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답답했지만 무지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이템이었다.
그냥 내가 쳐볼게
파크골프는 어떤 사람들이 치고, 어떤 채가 좋은 채인지, 실제로 소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결국 내가 아내에게 건넨말이다. 실제로 쳐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저런 걸 팔아야지"라고 이야기를 했으니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아내는 파크골프채를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고, 나는 파크골프를 치는 파크골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