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창조하는 게 아닌 모방하는 것
예술의 규칙
예술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아마 자유일 것이다.
예술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자율적인 활동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아무렇게나 해도 될 권리와는 다른 의미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유형의 예술가가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예술가들이다. (여기서 부족함은 실력을 의미한다.)
그들은 작품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 방어기제가 발동해 부족한 자기 작품을 합리화한다.
나는 이런 예술가를 선호하지 않는다.
흔히들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예술의 본질은 창조라는 것이다.
이는 반은 옳고 반은 틀린 말이다.
예술은 창조의 영역임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 창조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모든 예술은 무엇인가를 모방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모방 대상 중 일부를 확대 혹은 축소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창의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물감이나 글을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다고 그게 예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참고로 나도 이 같은 실수를 겪은 적이 있다.
예술은 무엇을 모방할까? 그것은 삶이며 철학적으로 더 파고든다면 절대적 완벽함으로까지 귀결된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 그것이 예술이 모방하고자 하는 대상인 것이다.
완벽한 삶을 모방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목적이고
이데아란 무엇인가?라는 각자의 견해에 따라 작품에 독창성이 추가되는 것이다.
근데 이런 사실을 간과하는 예술가가 너무 많다. 예술로 성공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무엇이 완벽할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절대 진리기 때문이다.
절대 진리는 보편적이며 개별적이므로 내가 여기서 절대 진리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42번의 호흡이라는 글에서 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삶은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삶의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때도 적용된다.
절대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개별적이므로 그 답은 오로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예술가는 모방하는 사람이고 모방의 대상은 절대적 완벽함이다.
예술가의 창의력은 무엇이 절대적 완벽함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그 나름의 답에 기반하여 어느 부분을 확대, 혹은 축소하며 창조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품은 예술이 아닌 지적 유희로 끝날 위험이 매우 크다.
예술 창조의 근원은 모방에 있다.
모방의 대상은 삶이며
더 나아가선 완벽함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회피하거나 변명해선 안된다.
이는 진리를 탐구할 예술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변명과 합리화 속엔 아무런 미학이 없다.
완벽에 갈증을 느껴야 한다.
삶을 담아낼 의지가 없는 예술은 영혼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