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향에 가면 어릴 적 추억이 녹아 있는 작은 모래사장 바닷가를 찾아 간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내 빰을 스칠 때 나는 모래 냄새,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 갯벌 냄새가 어릴 적 내가 그곳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추억을 소환해 주기 때문이다. 모래사장 바닷가 가는 길에 만나는 파도 일렁이는 모습과 코 끝을 스치는 바다 향기는 첫 키스의 설레임도 안겨준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추억의 공간을 찾아가는 길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작년까지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양손에 들고 기차역으로 갈 때의 날씨는 이번 추석처럼 무더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 하늘은 가을이 아니라 한 여름의 뙤약볕이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그 길을 걷는 내내 나는 흐르는 땀을 닦기에 바빴다.
즐겁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마을 어른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작은 백사장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하니 마을 어른 몇 분이 바다를 보며 푸념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나는 낯익은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를 했다.
"응 그래. 누구더라? 아 맞다. 김철수의 큰아들이구만! 교장 선상님이라는..."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본 나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어르신, 바다를 보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나는 인상을 쓰며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게 여쭈었다.
"예전 같으면 오늘 같은 추석이면 벌써 바다에 나가 해우(사투리로 '김'을 '해우'라고 한다)를 시작했을 텐디, 날이 너무 더워 부러 갔고 시작도 못 한 것이 걱정스러워서... 쯧쯧"
어르신 한 분이 근심 가득 찬 얼굴로 말씀하셨다.
"해우는 바다 수온이 많이 차가워야 잘 자라고 맛도 좋고 한디, 올해처럼 날씨가 더워 불면 양식하기 힘들어. 심하면 해우가 다 녹아 불제... 그란디 나는 괜찮혀. 이미 살만큼 살아서. 문제는 우리 손주 녀석들이랑께. 날씨가 이렇게 더워 불면 인자 우리 손주들은 우리가 만든 맛난 해우를 못 먹을 수도 있어 불어서 걱정이제"
어르신은 살만큼 살아서 괜찮은데 손주들은 당신 손으로 만든 맛있는 김을 못 먹을 것 같다는 말씀이 가슴을 찌른 듯 아팠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위기가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나 또한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기후변화가 심각하니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말에 진정성과 힘이 없었다.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삶의 양식이 바뀌고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 심각한 것은 이 위기가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아닌 아무것도 모를 어린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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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오늘 새벽에 바다에 나갔다 왔어야~ 날이 많이 시원해져부렀어, 인자 해우 양식을 시작해도 되겄드라"
오늘 아침 고향에 전화했더니, 바다 온도가 떨어져 김 양식을 해도 되겠다는 아버지의 기쁜 목소리를 들으니 진짜 가을이 온 것 같아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