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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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에 이어 엘레나 페란테의 두 번째 작품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소개할까 합니다.
아내와 달리 저는 이런 성장(연예)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면 아내는 어릴 적에는 하이틴 만화책을, 청소년 때는 로맨스 소설을, 중년인 지금은 로맨틱 코미디 드리마를 매우 좋아한답니다. 아내의 취향을 존중하는데 문제는 자꾸 소설책과 드리마의 남자 주인공을 저와 비교한다는 점입니다. 10대인 딸이 방탄소년단 뮤비를 보며 "에휴~ 우리 아빠는 왜 민윤기가 아닐까?"라고 한숨을 쉬는 것까진 참을 수 있는데,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심취해 있는 아내가 현빈 한 번 보고 남편인 나를 한 번 보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은 참기 힘듭니다.
여하튼, 페란테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읽었습니다. 읽게 된 동기는 그의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즌만 돌아오면 빠짐없이 후보로 거론되는 이탈리아 작가답게 문체가 화려합니다. 특히 저는 이 책 한 권으로 문학에서의 '묘사'는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알았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폴리의 모든 공간도, 얼어붙을 듯 차가운 2월 창백한 햇살도, 아버지가 내뱉은 문장까지도. 나만 혼자 그곳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책의 첫 페이지 첫 줄에 나온 문장입니다. 추악하고 사악하다고 하는 고모 빅토리아를 닮았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10대 주인공 조반나가 한 말입니다. 믿고 존중했던 어른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을 이렇게도 멋지게 표현합니다.
"친가에 다녀올 때마다 어쩌다 수준 낮은 연극에서 배역을 맡게 된 사람들처럼 짜증을 내면서 친척들과의 만남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친척을 만났을 때의 싫은 감정을 '수준 낮은 연극에서 배역을 맡게 된 사람들처럼'이란 표현도 좋았습니다.
"내 몸이 곡식을 담은 부대 자루가 되어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구멍에서 아무도 모르게 알갱이가 새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저는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의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나야 한다."라는 문구가 생각났습니다. 끝도 없는 절망감을 곡식을 담은 부대 자루의 미세한 구멍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 '조반나'라는 10대 여학생의 성장소설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조반나의 시선에는 부모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삶은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성과 교양을 갖춘 부모님의 불륜, 친구 부모의 불륜, 빅토리아 고모의 이중적인 사고와 삶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가 너무 다르다고 주인공은 생각합니다.
특히 '팔찌'라는 매개체는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팔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팔찌는 불륜의 대상자, 내연녀에게 주는 거짓된 사랑입니다.
"거짓말, 거짓말.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분별력 있는 그들의 머릿속과 지식으로 가득 찬 그들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파충류보다도 못한 믿을 수 없는 동물로 만들어버린 걸까?"
10대 여주인공 조반나가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보면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성장 소설이 그렇듯 조반나 또한 그렇게 경멸하고 비난했던 어른들을 닮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흔한 성장 소설로 치부하면 절대 안 됩니다. 소개했듯이 단어와 문장의 쓰임새가 이렇게 적절하게 표현될 수도 있구나, 뻔한 상황을 이렇게 기막히게 비유적인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 넷플릭스 드라마 '어른들의 거짓된 삶'을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