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당연히 수면 내시경 검사였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비수면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았었다. 주변 사람들은 위와 대장 내시경을 동시에 하는데 어떻게 수면이 아닌 비수면으로 받을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나를 대단하다고 하면서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비수면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가는 병원은 수면 내시경일 때 무조건 보호자를 동반해야 가능했다. 맞벌이 부부라 아내를 데려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갈 상황도 아니어서 어쩔 수없이 비수면 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생각보다 비수면 내시경 검사가 그렇게 아프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장 내시경을 위해 장을 비워야 하는 과정이 더 힘들고 끔찍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수면 검사를 고집했던 나는 이번부터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을 때 있었던 일이다.
비수면으로 위 검사를 마치고 곧바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찰나, 갑자기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남녀 인턴들이 들이닥쳤다. 곁눈질로 보니 남자 1명과 여자 3명의 인턴들이었다. 이들은 나의 대장 내시경의 생생한 현장 교육을 위해 들어온 것이었다.
"이 분은 장 청결이 잘 되지 않았네. 여기 까만 부분 보이죠?"
내시경을 하는 지도교수는 인턴들에게 화면의 까만 부분을 보면서 말했다. 아마도 내가 비수면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네 보입니다."
인턴들은 대답했다.
"이렇게 생긴 건 용종이 아니라 관장이 제대로 안 돼서 생긴 변입니다. 이렇게 창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없어요."
지도교수는 인턴들에게 굳이 나의 장에 남아 있는 변(?)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나는 너무 창피하여 눈을 질끈 감은 채 머리를 더 깊숙이 숙였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여기 S자 결장을 지날 때 힘을 너무 세게 주면 천공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내시경을 뺄 때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모든 장벽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고요."
지도교수는 마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조정석)처럼 인턴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인턴들에게는 살아 있는 교육의 유익한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날 이후 나는 다시는 비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선생님 일어나세요."
간호사는 곤히 잠들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분명 주사약이 들어가는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한 것까지 기억하는데 벌써 내시경 검사가 끝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왜 이 편한 수면 내시경을 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 비수면 검사를 고집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선생님 위 내시경을 끝내고 입에서 호수를 빼려고 하는데 너무 꽉 물고 있어서 빼는데 애 먹었습니다. 아마 입술 안쪽에 상처가 났을 거예요. 약 발랐으니 오늘은 맵고 뜨거운 음식은 드시지 마세요."
그러고 보니 아랫입술이 살짝 부어 있었고 아팠다. 어쩌면 지난 비수면 검사의 트라우마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라 이를 악물게 만든 것 같았다.
이 한 몸 희생해서 인류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고 생각하면 뿌듯한 면도 있지만, 다시는 비수면 내시경을 받지 않으리라는 나의 다짐은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