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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아 Jan 25. 2019

그것이 알고 싶다, 절값 분실사건

새벽 3시,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택시 한 대가 들어섰습니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택시에 오른 이는 오늘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악 씨였습니다. 전날까지 야근을 한 탓인지 악 씨는 새신부치고는 낯빛이 어두웠죠. 피곤에 지친 그녀는 그저 오늘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을 뿐입니다.


그녀의 얼굴은 그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을까요. 사건은 그날 오후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절값 분실사건’이라 부릅니다.      

   



마음에 드는 식장을 겨우 찾았는데 원하는 날짜에 가능한 시간은 첫 타임, 오전 11시뿐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정성스러운 자기 합리화 과정이다.


일찍부터 주말을 시작하면 하객들도 하루가 길고 좋지, 식 끝나고 바로 점심시간이니 딱이야, 저녁 비행기로 바로 신혼여행을 갈 수 있어 등등 그럴싸한 이유를 줄줄이 나열했다. 당연히 좋은 것만 떠올리고 나쁜 것은 외면했다. 이를테면 새벽 3시부터 결혼식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극한 직업, 그것은 결혼식 첫 타임 신부 (사진=무한도전)

        

오전 11시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청담동 미용실에 새벽 4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했다. 집과 식장이 서울에서 거리가 있다 보니 오가는 시간도 상당했다. 새벽 3시에 출발해야 여유 있게 청담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일이 많아 신혼여행 짐은 싸지도 못한 채 겨우 눈을 붙인 것이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두 시간 정도 잠을 자고는 새까맣게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택시에 올랐다.      


뚝뚝 떨어지는 혼인율을 걱정하는 뉴스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눈에 띄는데, 미용실은 꼭두새벽부터 결혼을 하겠다고 모여든 예비 신랑 신부로 가득했다. 모두 나처럼 오늘의 예식장 개시 커플이 되기 위해 무거운 눈꺼풀을 꿈벅이며 칙칙한 맨얼굴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북적이는 미용실에서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있다 보니 인력 시장에 온 듯 한 착각도 들었다. 오전 4시 30분이면 한창 인력시장의 리크루팅이 시작될 타이밍이기도 하다. 어디서 나를 부르지는 않을지 초조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고, 먼저 호명되는 예비 신랑 신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되는 그 풍경이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의 이름도 호명되었다. 나는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메이크업실에 들어섰다.       


새벽부터 청담동까지 달려온 이유는 단 하나, 오늘의 나를 새사람으로 재창조할 조물주를 영접하기 위해서다. 배우 김사랑을 담당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녀를 선택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조물주의 손에 나를 맡겼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면 김사랑이 될 수 있다. 조물주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나는 잠시 후 남편이 나를 김사랑이라고 착각하면 어쩌나 수줍은 걱정을 했다.    


다음 생은 꼭 사랑으로 (사진=나혼자산다)


한 치 앞의 거울도 제대로 보지 못한 과대망상이었다. 조물주는 비지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돈 들여 잘 꾸며 놓은 나' 이상의 무언가는 되지 못했다. 김사랑이 되는 것은 현대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것인가. 그래도 뭐, 꽤 사랑스러운 신부로 새로 태어났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반짝이는 비즈 수백 개가 달린 갑옷처럼 무거운 드레스로 갈아입고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영혼이 육신을 떠나 청담동 허공을 떠돌았다. 바짝 허리를 조인 드레스 덕에 늑골은 한껏 수축됐다. 움츠러든 5번, 6번 갈비뼈에 장기들이 짓눌린 듯 고통스러웠다. 스프레이로 떡칠한 머리도, 눈꺼풀에 붙어있는 인조 속눈썹도 뭐 하나 편한 것이 없었다. 공주놀이를 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 결혼식장으로 향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지쳤다.         


식장에서는 더욱 정신이 혼미해졌다. 신부대기실에 앉아 꽃처럼 미소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식권을 챙겨주는 가방순이도 챙겨야 하고, 식전영상 등을 체크하고, 아빠와 함께 입장 연습도 해야 했다.


정작 몇 달을 준비한 결혼식은 눈 깜짝할 새 끝이나 매우 허망했지만.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온갖 레시피를 보며 몇 시간 동안 땀 흘려 요리 하나를 만들고 5분 만에 먹어치운 기분이랄까.


요리를 준비하면서 이미 진이 다 빠져, 음식 맛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 익숙한 상황이다. 남는 것이라곤 사람들에게 보여줄 인증샷뿐인 것도 비슷하고.        



     

부케까지 멋지게 던지고 나니 드디어 결혼식 종료.

인 줄 알았는데 나는 또다시 헬퍼 이모님의 손에 이끌려 어느 골방으로 향했다.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아직 폐백의 관문이 남아있다.      


결혼을 준비할 때 폐백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간소화된 예식을 생각했기에 폐백은 생략하길 원했다. 폐백 음식을 준비하는 비용이며, 폐백 때문에 한복까지 대여해야 하니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것이 많았다. 안 그래도 결혼 준비 비용이 예산 초과이니 생략 가능한 것은 생략하자며 남편과 협의를 끝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른들과의 협의는 고비가 많았다. 시댁에서는 조부모님이 계시니 폐백까지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셨고, 친정에서는 시댁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맞다며 나를 다그쳤다. 결국 간소화된 예식은 개나 주고 남들 하는 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거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시집가는 딸이 혹시나 시댁 식구들에게 밉보일까 강남의 비싼 폐백 음식점에서 으리으리한 폐백상을 주문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영 못마땅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나와 또 다르니 말릴 수도 없었다.   


결혼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 (사진=압구정백야)


연지곤지를 찍은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폐백상 앞에 섰다. 남편은 푸른 관복에 사모까지 쓰니 전래동화 속 꼬마신랑이 따로 없었다. 수모님은 술 한 잔을 걸친 듯 걸출한 입담을 뽐내며 폐백을 진행했다. 밤과 대추를 던지고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수모님의 지시대로 모든 가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녀의 기세는 늠름했다.


머리 위에 족두리를 얌전히 올려두고 다소곳이 모은 두 팔 위에 한천을 덮어두니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다. 수모님은 계속해서 내려오는 나의 팔꿈치를 수평으로 들어 올리며 옆구리를 꾹꾹 찔러댔다. 나는 벌을 서는 아이처럼 불쌍한 표정도 지어봤지만 자비란 없었다. 그런 자세로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하며 절을 올리는 것은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과정이었다. 처음 뵙는 시댁의 일가친척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무릎 관절이 삐걱대는 소리가 폐백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절값을 생각하니 없던 힘이 다시금 샘솟았다. 얼굴 근육이 마비돼도,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져도 108번이고 절을 할 의욕이 불타올랐다. 두둑이 쌓여가는 봉투로 향하는 탐욕스러운 시선은 누가 볼까 재빨리 감췄다. 절 한 번에 봉투 하나라니 역시 노동의 대가는 거짓이 없다는 진리를 떠올리며 더욱 열심히 그리고 진심을 다해 감사의 절을 올렸다.      


먹은 음식도 없는데 헛구역질이 나오고 현기증에 머리가 어질 할 즈음 드디어 폐백이 마무리됐다. 남편은 나를 둘러업고 좁은 폐백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나는 절값 봉투를 신나게 흔들며 잇몸 만개 웃음을 보였다. 두둑한 돈 봉투를 손에 드니 그간의 고생이 싹 다 잊혔다. 어깨춤까지 추며 잔치의 재미를 만끽했다.      


수모님은 프로다운 모습으로 재빨리 나를 탈의실로 데려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족두리와 활옷을 뺏듯이 가져갔다. 눈 깜짝할 새 나는 새색시 한복 차림으로 돌아왔고, 세상 개운한 기분에 발재간을 부렸다. 이제 흉통을 조이던 드레스도 없고, 머리 위에 얹어진 족두리도 벗었으니 마음 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빈 속에 밥이 몇 숟갈 들어가니 그제야 몸을 떠났던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절값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자기야, 그런데 폐백 하고 받은 절값 어디 갔지?"

     

심장이 두근두근 (사진=무한도전)


아까 받았던 두둑한 봉투들이 사라졌다. 이것은 대형 사고다. 헐레벌떡 주머니를 뒤져보려 했으나 한복에 주머니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들고 있는 손바닥만 한 핸드백은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잘 찾아보라’는 이야기만 했다. 심장이 덜컹했다. 나의 신성한 결혼식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다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현장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분명 돈 봉투를 손에 쥐고 어화둥둥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다. 폐백이 끝나고 한복을 갈아입는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폐백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일가친척을 비롯한 가족 외 외부인은 없었다. 아, 둘 있었다. 폐백을 도와주는 수모님과 예식장 직원. 하지만 식장 직원은 폐백실 밖에 있었고, 수모님은 계속해서 내 옆을 지켰다. 이들은 용의 선상에서 제외한다. 그렇다면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너무 정신이 없어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상황을 리플레이했다. 조금씩 기억이 돌아왔다. 폐백 후 절값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고, 수모님 손에 끌려 들어가기 전 가방순이를 맡은 동생을 찾았다. 하지만 동생이 폐백실에 없었고, 나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봉투를 건네주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옷 갈아입으러 들어가면서 봉투 자기한테 줬잖아."

"아, 맞다. 내가 봉투를 받아서 어쨌지?"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도 정신이 없어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다. 탈의실에 가지고 들어갔나, 폐백상에 다시 올려두었나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범행 현장을 떠올리던 남편이 드디어 무릎을 탁 쳤다.

      

"나도 옷 갈아입어야 해서 동생한테 들고 있으라고 했어."

      

콩닥거리던 가슴이 잠시나마 진정됐다. 절값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니 천만다행이었다. 연골이 나가도록 절을 했는데 절값까지 잃어버렸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판이었다. 남편은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다가가 ‘아까 맡긴 절값을 달라’고 말했다.

      

"그거 엄마한테 줬는데? 나 가방 작아서 안 들어간단 말이야. 엄마 가방 크니까 거기 넣었지."

     

나의 손에서 남편 손으로, 남편 손에서 다시 시누이 손으로, 시누이 손에서 이제는 시어머니 손으로 이동한 절값이었다. 주인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가엾은 절값을 만나게 될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엄마, 절값 엄마한테 있어요?"

"...응? 절값?"

"엄마한테 드렸다는데?"

"아, 그래그래. 깜박했네. 여기 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사진=영화 타짜-신의 손)

     

남편은 시어머니에게서 절값 봉투를 받아 들고 돌아왔다. 나의 연골과 맞바꾼 사랑스러운 절값아 어디 갔다가 이제 왔니. 그런데 고작 몇 분 사이 너의 몰골이 상당히 수척해졌구나.


남편에게 건네받은 절값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이것은 아까 만진 그 두께감이 아니다. 처음에 나의 손에 들려있던 절값 봉투는 얇은 책 한 권만큼 두둑했는데, 지금은 볼품없는 전단지처럼 팔랑댔다. 어림잡아도 절을 열두 번은 더 했는데, 돌아온 봉투는 고작 3개뿐이었다. 이것은 수가 빤한 밑장 빼기 기술이다.


나는 남편에게 어머님이 봉투를 덜 주신 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의 부주의함이 불러온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명절마다 엄마는 주머니가 두둑해진 나를 작은 방으로 몰래 불렀다. 일가친척에게 받은 용돈으로 떡볶이를 배 터지게 사 먹으려 입맛을 다시고 있는 내게 평소답지 않은 상냥한 말투로 "나쁜 사람이 훔쳐가면 어떡하니? 엄마가 잘 보관해줄게"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엄마의 손아귀에 들어간 용돈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엄마들의 주머니란 그런 것이다. 한 번 넣은 것을 뱉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버뮤다의 삼각지대처럼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나는 홀연히 사라진 절값을 떠올리며 시어머니가 나를 딸처럼 생각하시는 것이 정녕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한 명 더 생겼다니 축제로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사진=그것이 알고 싶다)


절값 분실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악 씨는 의미심장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줬는데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댁을 방문했을 때, 시어머니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죠. '친척들이 절값도 챙겨줬는데 립스틱 하나를 안 사 왔냐'며 타박을 했다는 건데요. 절값은 받은 적이 없어도 일가친척의 선물까지 손수 챙겨야 하는 그 속사정은 무엇일까요.

 

악 씨는 '가만히 있었더니 가마니가 됐다'며 가슴을 내리 쳤다고 합니다. 만약 결혼식 당일 절값의 행방을 집요하게 쫓았더라면 적어도 립스틱 공격은 받지 않았을 것이라면서요. 밟았을 때 꿈틀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렁이가 두 번, 세 번 밟히는 것을 허락한 건 아닙니다. 알아도 모른 척, 아파도 괜찮은 척 넘어가(주)는 지렁이의 아둔함을 헤아릴 순 없는 걸까요. 며느리의 삶은 참으로 피곤합니다.   

 
절값 분실사건의 진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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