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소식에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하듯 양가 어른들이었다. 엄마는 “나 임신이래”라는 전화에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던 걸 꽤 걱정하고 있었다고 했다.
시가 어른들도 반가워하셨다. 특히 시아버님은 임신 소식을 들은 날 밤, 자다가도 몇 번씩 벌떡벌떡 일어나 허공을 보며 껄껄 웃을 정도로 좋아하셨다고 한다.
어른들은 기쁨과 환희에 벅차 갑작스러운 축하 파티를 열자고 했다. 상견례 이후로 양가 어른들이 만나 식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어둠 속 콩알만 한 손주의 등장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하 인사를 해야 한다고 나선 거다. 아기의 존재감은 실로 놀랍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양가 어른들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임신 소식을 축하했다. 뭐, 이보다 더 화기애애할 수 없어 약간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어른들은 딸일까 아들일까에 대한 온갖 추측부터 남편과 나의 어릴 적 이야기까지 꺼내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성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육아로도 흘렀다. 남편도 나도 일하고 있는 상황이니 육아에 대한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아이를 미뤄왔던 이유 중 큰 부분이기도 했다. ‘할머니 육아’도 많다지만 엄마도, 시어머니도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시아버님과 아빠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 열심히 일하는 일개미였다.
악아는 언제까지 일할 거니?
요즘은 어린이집에도 일찍 보낸다지만
그래도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하는 거야.
예상했던 멘트, 역시 식상하군.
‘임신’하면 연관검색어처럼 줄줄이 따라붙는 말들.
‘언제까지 일할 거니’, ‘아기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남편도 똑같이 아이가 생기고 부모가 됐지만 그는 한 번도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없다. 여자에게, 엄마에게만 ‘경력단절’, ‘독박 육아’의 은총이 허락되는 자비로운 사회다.
“요즘은 아빠들이 육아를 하기도 하더라고요. 주변에 보니까 와이프가 일하고 남편이 집에서 애 키우며 살림하는 집도 있던데요? 남자들이 살림 잘하고 와이프도 능력 있으면 요즘 애들은 그렇게 하기도 하나 봐요.”
내가 입을 열기도 전, 엄마는 시어머니의 말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던졌다. 당연히 시어머니와 똑같이 아기 키우기는 엄마 몫이라며 나를 다그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빠 육아를 권장하니 의외였다.
아무렇지 않게 뭉개져버리는 딸의 커리어가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어머님의 아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 온 것처럼 엄마의 딸도 지금껏 열심히 공부하고 달려와 지금의 자리에 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듯하다.
“아휴, 그건 아니죠 사돈.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어떻게 남자가 아기를 키워요. 남자는 나가서 돈을 벌어야죠, 집에서 살림이라니….”
남편이 “나는 살림이 체질이다”라며 해맑은 리액션까지 더하니 시어머니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옆자리에 아버님이 앉아계셨으니 망정이지 등짝 스매싱을 대차게 한 대 맞고도 남았을 분위기였다.
“어쨌든 저는 아기 절대 안 키워줄 거예요. 손주들 키우면 아주 골병 나더라고요. 요즘 애들이랑 육아 방식도 달라서 좋은 소리도 못 듣고요. 악아야, 알겠지? 절대 맡기지 마라.”
이럴 수가. 나와 어머님은 이렇게 마음이 잘 통한다. 저 역시 같은 마음입니다! 어머님께 아이를 맡길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혹시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건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임신 축하 자리에서 해야 할까 싶었던 게 사실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축하 파티는 묘하게 복불복 육아 게임으로 흘러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기는 축복이네, 둘은 낳아야 하네 하며 주말 드라마 한 장면처럼 화기애애하더니만 혹여나 육아 폭탄을 안게 될까 모두가 초조해진 얼굴이었다. 아가야, 너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하구나.
육아는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엄마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함께요.
그러니 모두들 긴장 푸시고 식사나 하시죠.
축하 파티에서는 진심어린 축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