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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아 Aug 22. 2019

두 개의 심장이라 죄송합니다

남편과 처음으로 함께 간 산부인과. 

테스트기로 두 줄을 확인했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실로 나를 안내했다. 


어둑한 초음파실에 누웠을 때만 해도, 이게 아기집이라며 시꺼먼 초음파 화면을 이리저리 비춰가며 정성스레 설명해 줄 때도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별다른 감흥이란 게 없었다. 혹시나 했던, 설마 했던 임신이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현실이 되었음을 받아들이며 혼돈의 카오스를 허우적대느라 감동, 설렘 따위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 마치 초음파 화면. 시꺼멓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사진=놀라운 토요일 캡처)

     

화면 속 초음파보다 더 시꺼먼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 선생님은 밝은 얼굴로 ‘이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어볼까요?’라고 말했다. 아기는커녕 보일 듯 말듯한 콩알 하나 덩그러니 있었는데, 곧바로 스피커를 통해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콩알에서 심장소리가 나다니! 

혹시 미리 녹음해둔 효과음이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심장소리는 초음파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내 몸에 심장이 두 개다!
믿을 수 없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확인을 하며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지라 얼마나 놀라고 신기했는지 모른다. 콩알만 한 게 벌써 심장이 뛰고 있다니 생명의 경이로움이란 게 이런 걸까 싶어 약간 뭉클하기도 했다. 


순간 초음파실 밖에서 훌쩍이는 남편 소리가 들렸다. 진료실에서 화면으로만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아기 심장소리에 폭풍 눈물을 흘렸던 거다. 너무 감동받은 남편이 다소 부끄러워져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가, 넌 굉장히 섬세한 감정의 파더를 만나게 되었구나. 축하한다. 


남편의 폭풍 눈물, 죠큼 부끄러웠습니다. (사진=무한도전 캡쳐)


남편은 아기 심장소리를 들은 뒤 더욱 들떴다. 아빠가 된다는 감동에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는데, 그중 씁쓸하게도 긍정적 감정의 지분은 크지 않았다.    

  

가장 큰 걱정은 회사 생활이었다. 일이 아이보다, 가정보다 무조건 우선이라는 열혈 워커홀릭은 절대로 아니지만, 예상치 못한 시기의 임신을 회사에 말하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 회사를 옮긴 지 몇 개월 안 된 상황인데 임신을 했다고 말하면 뒤에서 얼마나 수군거리고 싫어할까 걱정이 앞섰다. 민폐 캐릭터가 되는 것 같아 민망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직을 했지만, 남편은 곧바로 회사에 본인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알리고 축하를 받았다. 선후배들과 매일 아기 얘기를 하느라 이것저것 주워 들어오는 육아 정보가 많았다. 누가 보면 애 셋 정도는 키운 프로 아빠처럼 정보력이 대단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무조건 조심, 또 조심해야 해 단축근무도 신청하고 배려도 많이 받는다는 임신 초기에도 나는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 아니, 다름없는 척했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박지성은 아무리 그라운드를 누벼도 끄떡없더구먼, 진짜로 두 개의 심장을 갖게 되니 나의 체력은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헐떡였고, 기운도 없고, 눕고만 싶었다.


두 개의 심장이 되면 형아처럼 날아댕길줄 알았어!! (사진=AFP)

      

임신 초기, 일 때문에 회사 사람들과 서울 모터쇼를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 행사장을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모른다. 점심시간쯤 되니 눈은 퀭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식사를 하는데 숟가락을 들 기운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함께 있던 동료는 운동부족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남의 속도 모르고. 


  

사무실 대청소날에는 책걸상을 들어 나르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애써 웃었다. 입덧으로 화장실에서 몇 번씩이나 먹을 것을 게워내고도 자리에 돌아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일했다. 임신을 들키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버텼다.     


가능하면 배가 나올 즈음에나 알리고 싶었는데 상사와 면담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3개월이 지날 즈음 회사에 임신 소식을 전하게 됐다.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아이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리는 그 말에 왜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이 함께 해야 하는지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야속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던 건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엄마가 되어 뱃속의 아이에게 가진 첫 감정이 고작 미안함이라니, 

가슴 저리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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