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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로등 Feb 09. 2023

아이의 졸업

나름의 스트레스가 피고 지는 보통의 하루 끝에 생각해 보니 내일이 아이 졸업식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1학년, 입학식 다음날부터 아침 일곱 시 반에 엄마, 동생과 함께 돌봄 교실로 등교를 하고 저녁 여섯 시에 엄마, 동생과 함께 집으로 오던 아이. 그러다가 코피를 몇 번 쏟고, 돌봄 교실에서 잠만 자던 아이는 다섯 시에 이모님과 하교를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다가 인도에 갔다.


인도의 국제학교에서는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아이는 한 학년을 낮춰서 2학년으로 들어갔고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함 속에서 묵언수행을 하듯 일 년을 보냈다. 


그 해 학년말 학교 행사에 갔던 나는 원형극장을 채운 인도아이들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됐다. 

자기 반 합창하는 순서에 같이 올라가길래 대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곧 당혹감에 어쩔 줄 몰랐다. 공연 내내 아이는 마이크를 두드리고, 노래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평 시간에 교장선생님이 아이이름을 불러 무대로 올라와 자기 옆에 세우고 이런 얘기를 했다. '이서는 지금 언어를 배우는 중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해 나가는 중이니 우리가 지켜보고 기다려야 한다.' 

나는 소리만 안 냈지 펑펑 울었다. 교장선생님, Sir Viju Baby, 멋진 말로 포장을 한 건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는 위안을 주는 얘기였다. 


3학년이 되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영어로 곧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오픈 클래스 행사에서 다시 만난 교장선생님은 이서가 말을 한다면서 우리에게 축하를 전하셨다. 아이는 그 행사에서 수학과목에 대한 발표를 했고, 표정은 밝았다. 


4학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와 적응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아이는 별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고학년에 귀국한 아이들은 1년 정도 적응 기간을 생각하라고 하시며 아이의 생활에 삐걱거림이 있어도 과정이라고 하셨다. 


5학년이 되자 아이가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는 전화를 몇 차례 받게 되었다. 우리는- 남편, 나, 아이- 우리의 노력으로 행동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을 보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의사는 아이의 집중력이 2분인데 45분 수업을 어떻게 따라가겠냐고 했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냐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따지지 않아도 아이는 워킹맘의 자녀라는 원죄가 있다. 태어난 지 91일째 되던 날부터 낮시간은 엄마 아닌 아주머니, 선생님들과 지내고 밤에는 화를 많이 내고 짜증에 가득 차있는 엄마와 함께해 온 시간 들이었을 테니. 


내가 육아책을 읽어 마음을 다잡고, 내 일을 더 마음껏 못해 동동거리며, 집에 오면 집안 정리에 집착할 때, 아이는 자기에게 도움이 필요한 줄도 모른 채 엄마 주위를 맴돌았을 것이다. 


6학년, 이제는 자기 생활을 챙겨서 해 나가는 아이가 되었다.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하면서도 막상 해 나가면 얻게 되는 작은 성취감도 스스로 알아가는 것 같다. 


오늘도 아이는 5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더니 곧 으레 그렇듯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아이가 아니었으면 가보지 못했을 길을 걸었고, 여전히 아직 걷지 않은 길이 있음에도,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이 삶을 경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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