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를 통한 삶의 기본기 다지기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됐다. 다섯 권의 전공책을 책상에 쌓아둔 채 바라보기만 한 지 2주일이 지나간 후에야 책을 펼쳐봤다. 그중에 가장 만만한 것으로 골라 읽어봤다. <영작문 II>는 문법에 대한 내용이다. 문법적으로 정확하면서도 많이 쓰이는 문장들을 엄선해서 실었다는 머리글에 끌려서 한 권 전체를 필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정 분량으로 나눠서 쓰면 10월 중순쯤에 한 번 다 쓸 수 있을 것 같다. 문장을 하나씩 소리 내어 읽고 다 외워질 때쯤 노트에 쓴다. 단어 단위로 외우면 단어만 기억나고, 구나 절 단위로 외우면 그만큼이 익혀지는 느낌이 새롭다. 쓴다 해서 저절로 알아지는 것은 없다. 하물며 글씨체도 어떤 모양, 방향, 크기로 쓸지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써야 변화가 온다. 저 문장이 내 손 끝에서 저절로 나오도록 해야겠다, 필요할 때 끄집어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고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술술 읽히던 문장은 책에서 눈을 떼면 금세 띄엄띄엄 해 지고 만다. 머릿속에서 이어 붙이기가 자연스러워질 때쯤 노트 위에서도 한 문장으로 재현될 수 있다.
아직 완전히 익혀지지 않는다 해서 좌절하지는 않는다. 늘 사용하는 말도 아닌데, 몇 번 외웠다고 자연스럽게 내 의식과 무의식에 녹아들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것에는 그렇게 하기 위한 '양'이 쌓여야 하고, 양을 쌓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표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영어가 편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에 대한 '양'이 쌓여야 함도 이해한다. 읽을 수 있어야 들리고, 들을 수 있어야 말할 수 있다. 말하고 읽을 수 있으면 쓸 수도 있다. 나 혼자는 지껄이고 끄적일 수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비슷한 언어적인 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 문화권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좋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다 보면 역사와 철학을 알고 싶어 진다. 더 나아가면 그 접점에 있는 다른 언어와 문화, 역사, 철학까지도 관심이 확장된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극'도 필요하다. 또한 이것들을 내 삶의 기본기로 만들고 싶다면 일상에 넣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저녁시간에 이것들을 넣어봤다. 저녁을 먹으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선다. 공원을 한 바퀴 걷다가 내가 정해놓은 구간에서는 달린다. 조금씩 그 구간을 연장해 보는 것도 내가 달릴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집에 오는 길에 집 근처의 벤치 등받이를 잡고 푸시업을 정한 개수만큼 한다. 스쾃도 그 옆에서 그만큼 하고 돌아와서 샤워를 하면 책상에 앉는다. 노트북을 열어 강의를 듣고 연습문제를 풀어서 정리를 한 다음 영어 말하기 앱으로 오늘 분량을 말한다. 그러고 나면 영어가 조금 감이 왔나 싶어질 때쯤 영작문 문장을 외워가며 필사를 한다.
때로는 시간이 짧아 아쉽고, 오히려 휴일 오후에는 무료해지기도 한다. 저 루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지만 아예 모든 것이 어그러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를 편하게 대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으로 쌓아가는 이해의 '양'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넓은 세상을 누리며 즐기기 위해 갖춰가는 삶의 기본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언어는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고, 그 너머에는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다양한 언어로 구현될 수 있는 넓고 깊은 세상이 있음을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이 즐거움을 일상에서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삶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