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루틴과 리추얼 사이 어디쯤을 걷기.
아침에 일어나서 보통은 커피를 갈아 533ml짜리 컵에 아메리카노를 가득 내려서 책상에 앉는다. 아직은 어둑한 시간이 안정감을 준다. 어지러운 책상 앞에 유독 가지런히 꽂혀있는 세 권의 노트를 차례대로 꺼내 어제 있었던 일들을 각각 기록한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어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을 거기에 내려놓고 오늘을 시작한다.
5년 치 일기를 한 페이지에 쓸 수 있게 되어 있는 노트들을 2년째 채우는 중이다. 대여섯 문장이면 다 차버리므로 아직 쓸 얘기는 항상 더 있어서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단상과 망상들을 비워낸다. 일명 '하루노트'다.
그러고 나면 5mm 모눈 속지를 끼워놓은 빨간색 A4 가죽 바인더에 하고자 했던 일과 새로 하게 된 일들을 체크리스트처럼 작성해서 시행여부를 표시해 둔다. 일종의 로그북(log book)으로 한눈에 나의 하루를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2주쯤 전에 성당의 성물방에서 구입한 『준주성범 묵상노트』를 읽고 쓰면서 생각한다. 처음 들어보는 책인데, 내용 자체는 새길만 하다. 일상에서 흘러가는 생각의 흐름에 다른 방향의 물꼬를 틀어주는 느낌을 이 시간 만이라도 가질 수 있어 매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제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붙여둔 책을 집어 들고 '필사노트'에 베껴 쓴다. 쓰다 보면 내 생각이 피어나고 몇 줄 함께 적어가다 보면 한 군데로 수렴되는 생각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고, 창 밖에는 환한 아침이 와 있다.
요즘 아침에 떠오른 질문 하나, '새로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엊그제 차를 가지고 출근하는 김에 연체된 책들을 반납해야겠다 싶어서 집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도 들렀다 올 심산으로 책들을 가방에 챙겼다. 그런데 막상 퇴근시간이 되자 거기까지 갔다 오는 게 귀찮아졌다.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하기 싫어도 그냥 하자'싶어 져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한다. 반납하고 나서 보니 대출 정지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 하루라도 먼저 반납한 게 그나마 시간을 아낀 셈이 되었다. 이렇게 오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서 뿌듯해졌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사람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무엇이 새로워지냐 하면 싫은 것을 안 보이는 구석에 던져놓는 게 아니라 막상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새로운 사실과 의미까지 얻게 됨을 알게 된다는 점이 그렇다.
日新, 又日新 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기 싫거나 무작정 미루고 싶거나 의미 없어 보이는 등등의 이유로 발길에 걸리는 돌멩이들처럼 내 갈길에 걸리적거리지만 무시해도 되는 것들을 하나씩 집어 살펴보면서 길을 걷는 느낌. 그래서 걷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만은 줄어들고 때로는 새로운 길도 걸어 볼 용기가 생기는 과정.
욕망을 채우는데 의미를 두면 결국 끝없는 욕망 앞에 무력감과 자책감으로 채워져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분명히 하고 싶어서 했고, 하기 싫어서 안 했는데도 끝 모를 막막함과 불안감에 질식할 것 같은 날들도 꽤나 많았다.
작은 일이 인생을 이뤄 간다. 견디고 해 냄으로써 경험이 달라지고 인식이 달라지며, 새로운 감각과 사고를 얻게 된다. 아는 것은 많으나 내 것은 없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일상의 루틴을 해 나가는 것도 극복이다. 그로부터 통찰을 얻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리추얼이 된다. 루틴을 반복하는 리추얼 자체가 삶의 펀더멘털이 되어 감을 경험해 본다면 이제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게 된다. 더 넓고 풍부한 세상으로 나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