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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Jun 15. 2024

삼총사 흑막의 반전, 고양이 집사 리슐리외 추기경

별고나 2024년 6월 14일 금요일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OTT로 인해 볼거리가 넘쳐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TV, 만화책, 잡지, 신문 등 즐길만한 게 한정적이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이나 매주 평일 오후 5~6시경에 하던 만화를 보는 게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문호 알렉상드로 뒤마의 소설 삼총사를 모티브로 제작한 '천하무적 멍멍기사'였다. 주인공인 달타냥이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삼총사의 구성원인 아토스, 프로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와 의기투합하면서 총사대에 입문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타냥과 삼총사 혹은 사총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총사는 머스킷 총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 총사대가 자신의 칼을 모으고 외치는 구호가 바로 "모두는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all for one, one for all)"인데 유비, 관우, 장비가 함께한 삼국지 도원결의를 연상시킬 정도로 낭만 가득한 장면이자 명대사라고 할 수 있다. 총사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부류의 3명이 모이면 삼총사라는 말을 쓸 정도로 보통 명사처럼 되어 버렸다.

달타냥이 총사대에 들어가고 나서 맞서는 상대가 바로 추기경파인데 왕과 왕비를 보호하고자 여러 가지 비밀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모험을 하게 된다. 천하무적 멍멍기사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등장하는 캐릭터를 강아지라는 동물로 의인화를 시킨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로 맞추기 위해 일종의 장치인데 아이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리슐리외 추기경은 다른 등장인물과 모습 자체가 다른데 강아지가 아닌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뛰어난 지략을 앞세워 나라를 지배하려고 하는 야심을 대놓고 외관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작중의 모습만 보면 리슐리외 추기경은 흑막이자 최악의 빌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 가상의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알렉상드로 뒤마가 머스킷티어 부대를 이끈 실존 인물 샤를 달타냥의 생애에서 영감을 얻어 3부작 소설을 낸 게 바로 달타냥 로망스였다. 그중에 1부에 해당하는 게 가장 잘 알려진 삼총사인 것이다. 참고로 2부는 '20년 후', 3부는 철가면으로 유명한 '브리즐론 자작: 10년 후'이다. 또한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3세와 왕비 안 도트리슈 그리고 리슐리외 추기경도 실존 인물이다. 달타냥과 삼총사가 비호하던 안 도트리슈 왕비는 프랑스와 대척점에 선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데 왕권 강화 차원에서 정략결혼을 하긴 했지만 실제 루이 13세는 그녀가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데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기울였고 심지어 유언에서도 왕비가 섭정을 하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달타냥과 삼총사를 대적하는 빌런이 바로 리슐리외 추기경이다. 본명은 아르망 장 뒤플레시인데 그가 다스리던 영지의 이름이 리슐리외였기 때문에 이름보다 호칭이 더 유명하다. 공작이면서 추기경이었는데 가톨릭 성직자였던 추기경의 빨간 수단은 그를 상징하는 복장이 되었다. 천하무적 멍멍기사와 같은 미디어믹스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면 고귀한 태생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시골의 하급 귀족 출신이었다. 신학 공부를 위해 20살의 나이로 소르본 대학에 입학했는데 성품행사를 맡은 바오로 5세가 훗날의 리슐리외 추기경을 두고 평하길 "오래 살면 간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으로 잘 알려진 조조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의 실권자가 되어 절대 왕권의 기초를 확립하고 근대 국가로서의 프랑스를 세운 인물이 되었다. 루이 13세와는 표면적으로 신하와 주군의 주종 관계이지만 사적인 내용을 털어놓을 정도로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으며 혹시나 본인을 암살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정적이기도 했다. 

성직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아내와 자식이 없었는데 눈에 띄는 점은 고양이 집사였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선호하지 않았는데 리슐리외 추기경은 고양이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고 한다. 죽을 당시에 14마리나 되는 고양이를 키웠는데 유언에도 고양이에 대한 당부가 들어가 있었다. 남은 고양이들을 죽을 때까지 돌보는 조건으로 하녀 1명에게 평생 먹고 살 정도의 연금과 고양이와 같이 살 집을 남겼을 정도이다. 아마 생전에 키운 고양이를 모두 합치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당시의 광기라고 할 수 있었던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을 금기하지 않았지만 고양이를 죽이거나 학대하는 짓에 대해서는 금기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환국정치로 피바람을 일으켰던 숙종 역시 말년에 고양이 집사라는 반전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프랑스 절대왕정을 위해 과도한 업무를 수행해야 했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의 공적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이권을 내놓아야 하는 상관관계가 있는 만큼 귀족들의 증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늘 암살과 실각의 위험 속에서 살았는데 주군이자 친우였던 루이 13세까지 가담했다는 설까지 존재할 정도이다. 

한나라를 멸망시킨 역적이라는 오명을 가진 조조와 달리 그가 난세의 간웅이 되지 않고 치세의 능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타고난 성품이 가장 큰 영향을 줬겠지만 무조건적으로 무한한 애정을 주는 고양이라는 존재가 괴물이 되지 않게 하는 억제기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행적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달리 충분히 프랑스인에 존경을 받을 만한 명재상이었다. 또한 당시 비선호 반려동물이었던 고양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줬던 고양이 집사였다. 먼저 가 있던 고양이의 마중을 받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나중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14마리의 고양이를 직접 마중 나온 모습도 충분히 그려질 정도이다. 참으로 비현실적이면서 낭만적인 스토리이지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과 헤어짐이라는 상실감이라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고양이 집사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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