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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Jun 07. 2024

사연 없는 고양이의 죽음은 없다

별고나 2024년 6월 7일 금요일

나의 소중한 반려묘 뀨가 황망하게 죽은 지도 벌써 3개월 정도 지났다. 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고 하루도 빠짐없이 죄책감을 기반으로 한 상실이라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아니... 이렇게 여운이 남게 되면 감내하기 힘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뀨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로 회귀하는 것과 같은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중이다. 부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뀨의 사인은 여전히 불명이지만 사고보다는 질병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밥도 잘 먹었고 그루밍도 잘했으며 기지개도 힘차게 했던 뀨였기에 지레짐작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게 오판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유독 크게 울고 갑자기 사료가 으깨진 상태로 토를 했고 자다가 몸을 떨었던 부분에 대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 너무도 후회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구토를 거의 하지 않았고 자다가 몸을 떠는 건 사냥하는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갈 때 유독 크게 울었던 부분이 계속 반복된 부분은 심상치 않았고 그냥 넘기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고양이 커뮤니티에 검색을 해 본 결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칭얼거리는 사례가 올라온 걸 확인하면서 안심을 했다. 남다른 사교성을 보여줬던 뀨는 워낙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런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편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양이 화장실을 다른 방에 놓고 썼는데 우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 그 방으로 가면 신기하게도 뀨는 울지 않고 조용해졌다. 태어날 때부터 난청이었던 아이였기에 유독 목소리가 컸는데 화장실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갔다. 병원을 가는 것 대신 유산균과 같은 영양제를 먹였는데 그것도 3개월 정도만 이루어졌을 뿐 꾸준하게 섭취를 하지 않았다.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뀨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혈뇨를 누지 않는 것만 확인했을 뿐 오줌을 누고 생기는 덩어리, 일명 감자가 어느 정도 크기로 뭉치는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는 어쭙잖은 지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던 거 같다. 맨 처음에 의심했던 질병은 방광염이었는데 물을 유독 잘 먹었던 뀨가 방광염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뀨가 너무 크게 운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뀨는 원래 그런 아이라고 답을 정해 놓고 얘기를 했다.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살릴 수 있었던 시간은 많았지만 나는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아픈 것을 내색을 하지 않는 게 고양이라고 하지만 우리 뀨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에도 유독 너무도 씩씩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줬다. 불과 3일 전에 집에 방문한 손님들이 있었는데 전혀 아픈 걸 내색하지 않고 사람들을 반기며 열정적으로 환영해 줬다. 마치 내가 집에 들어오는 걸 허락한 손님들은 검증된 사람이니 친구처럼 지내면 된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뀨뿐만 아니라 뚱이와 삐쥬까지 합세해 고양이 3남매들의 환영을 받은 사람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갔다. 


하지만 우둔한 고양이 집사는 고양이 자랑하기만 바빴지 수많은 위협 신호를 무시하고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보냈다. 구취가 점점 심해져가고 있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태생적으로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만 했던 내가 너무 미워질 뿐이다. 아마 뀨는 요독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점점 심해졌고 갑작스럽게 전해질 불균형이 이루어졌고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탈수가 생겼기 때문에 물을 허겁지겁 먹었던 것 같고 구취가 점점 심해진 것도 이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사료와 물을 잘 먹는 뀨를 보면서 매우 건강하다는 멍청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본인 몸이 좋지 않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지나친 의미 부여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일주일 전에 뀨가 죽음을 예견한 것과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문 앞에 있는 자전거 위의 안장에 계속 앉아 있었다. 내가 현관문을 열 때면 큰 목소리로 나를 반겨줬는데 그 당시에는 안장이 편해서 거기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힘을 내서 살아생전 고양이 집사를 위해 마중을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유독 나를 좋아하던 아이였지만 3월 9일 토요일이 있었던 주에는 유독 나에게 많이 상체에 올라와서 꾹꾹이를 해줬다. 심한 경우에는 하루에 10번 넘게 올라올 정도였는데 꾹꾹이를 하고도 내려가지 않고 나에 품에서 잠을 자려고 했다. 아마 죽기 전에 내 체온을 느끼고 싶었던 거 같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품에 쏙 들어갔던 아이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ㅠㅠ 하지만 나는 그런 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뀨를 내 몸에서 떼내고 바닥에 놓았다. 

2024년 3월 9일 오후 3시 정도에 집을 나와서 1시간 후에 집에 왔을 때 뀨는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 날 오전에 뀨가 어떤 모습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간밤에 늦게 잤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이미 10시였고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아마 뀨는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테고 잠을 자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텐데 무심한 집사는 그 순간에도 자기 자신만 생각했었다. 순식간에 몸이 안 좋아졌을 테니 나머지 고양이들도 이와 같은 변고가 생겼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뀨는 잠을 청하던 라이언 애착 소파가 아닌 마룻바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 죽기 전에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내려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죽기 직전에 애착인형을 배설물로 더럽히지 않아야겠다는 본능 같은 게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멀티어댑터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이게 꺼져 있었던 건 아직도 미스터리 같은 부분이다. 집 내부에 홈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고양이 집사 분들 중에 뀨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던 분들이라면 꼭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시길 바란다. 후회막급이라는 말처럼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 없는 게 바로 소중한 생명이니까...

 


나는 뀨가 전하는 진심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뀨가 알려준 위험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과연 죽은 후 고양이 마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을까


사연 없는 고양이의 죽음은 없다

뒤늦게 후회하는 어리석은 인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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