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나 2024년 5월 31일 금요일
막둥이 고양이 뀨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뀨는 이런 케이스에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뀨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특히 집에 들어올 때 이러한 감정이 더욱더 커진다. 왜냐하면 집에 올 때마다 고양이 3남매가 잘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일종의 루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뚱이, 삐쥬는 있지만 뀨가 없다는 상실감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이게 계속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모름지기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에 모든 고양이 집사 분들께서 자신의 고양이가 가장 낫다고 얘기하시겠지만 아무리 봐도 뀨는 특별한 아이였다. 6년 전 처음 나와 만날 때부터 나한테 다가온 후 가슴에 안겨서 잠을 청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던 어머니마저 집에 오실 때 항상 뀨가 꼬리를 흔들고 부비부비하고 특유의 울음소리로 반겨주는 모습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을 정도다. 다른 아이들도 개냥이였지만 수다스럽지는 않았다. 조용했던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 게 바로 뀨였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현실성이 없는 얘기이지만 그만큼 고양이가 소중한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 했다는 걸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넘어서 자식이나 친구 같은 귀한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과연 죽어서 고양이 마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 고양이 평균 수명보다 훨씬 더 일찍 세상을 떠난 뀨이기에 마주할 자신도 없다. "나는 너를 정성껏 키웠다"라는 말을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만큼 "넌 나를 어떻게 생각했어?"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없을듯하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최선을 다해서 뀨를 돌봤던 것일까? 반대로 뀨는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주었던 것 같다.
티베트 불교에 '육도윤회'라는 게 있다. 일체중생이 자신의 지은 바 선악의 업인에 따라 천도,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세계를 끊임없이 윤회전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카르마 = 업보 = 인과응보라고 볼 수 있다. 뀨에게 고양이 마중을 받으려면 적어도 내가 고양이로 환생한 후 일생을 마쳐야 그러한 자격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의 죄책감이 덜어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뀨가 나한테 웃으면서 "고생했어"라는 말을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뀨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고민을 좀 해봤다. 죽기 직전 의자에 앉아 있던 나에게 유독 많이 올라탔던 게 많이 생각이 나는데 뀨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알고 그러했던 건지 꼭 물어보고 싶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