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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May 17. 2024

고양이는 참으로 요물이로다

별고나 2024년 5월 17일 금요일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시골집에 가면 강아지, 고양이, 소, 염소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꼬리를 흔들면서 반겨주는 강아지나 여물 먹기에 정신없었던 소와 달리 고양이는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홍길동처럼 때로는 동에 번쩍, 때로는 서에 번쩍하면서 나타났는데 나는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고양이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자고로 고양이는 요물이니 가까이하지 마라"라고 얘기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 이유에 대해서 딱히 얘기를 해 주지 않았는데 밤에 주로 활동하는 야행성이라는 점과 어린아이의 소리와 비슷한 울음소리 그리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 때문에 불길하다는 얘기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검은 고양이는 재수가 없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고 전설의 고향과 같은 공포 드라마나 공포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도 등장했을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인데 이런 얘기를 마치 진리인 것처럼 얘기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동거동락을 해 보면서 "고양이는 참으로 요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렸을 때 시골집에 있었던 고양이는 사실상 불청객이었다. 강아지, 소와 달리 정식적으로 키우진 않았기 때문에 가족이라고 볼 수 없지만 밥을 주는 정이 있으니 식구라고 볼 수 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였다. 비유하자면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고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한 것이었다. 종종 눈에 띄지만 쉽게 곁을 주지 않는 길고양이의 모습만 봤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정이 별로 없고 개인주의가 강한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를 직접 키워보니 이건 지극히 일부의 사례였고 인간 중심의 편견에 불과했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인의 정서상 고양이 갖고 있는 독립적인 성향이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담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왔을 때는 낯도 많이 가리고 적응하는데 얘를 많이 먹었다. 1살이 되기 전에는 고양이들의 에너지가 너무 넘쳤는데 영락없는 사춘기 시절이었다. 하지만 내년이면 삐쥬와 뚱이도 사람 나이로 10살을 맞이하게 된다.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지만 한해 한해 지날 때마다 점점 깨달음을 얻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듯하다. 고양이 집사 경력이 오래된 만큼 나 역시 좀 더 시야가 넓어진 느낌을 받게 된다. 강아지는 시종일관 변함 없는 무한한 애정을 온몸으로 보여준다면 고양이는 사람을 애태우고 홀리게 하는 신비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어 혹시 전생에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창문 밖의 세상을 신기해하며 보고 있는 삐쥬와 뚱이의 이름을 처음 부를 때는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 고개를 돌아본다. 하지만 연달아 부르면 의미 없는 고양이 집사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귀만 쫑긋 움직이고 꼬리가 요동친다. 새초롬한 얼굴 속에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심연의 눈동자를 보게 되면 그야말로 '너무도 사랑스러운 요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AI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양이는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각자만의 취향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이지만 단순한 호불호 차원을 넘어 감정적으로 반려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은 아무리 사냥본능이 있는 고양이라고 할지라도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강아지 같은 경우는 간혹 갑자기 사람에게 달려들어가 물어뜯는 경우가 있지만 고양이는 그런 경우가 없다. 고양이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경우는 서로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접근하거나 난데없이 고양이 몸을 들어 올렸을 때 발생한다. 지난 3월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간 뀨 같은 경우 처음 본 순간부터 나만 바라보고 나에게 몸을 기대던 유독 별난 아이였기 때문에 유독 기억이 많이 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묘연일 뿐 서로 길들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고양이 눈을 보고 마치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본인이 숨겨야 하는 추악한 비밀이 많거나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던 게 아닐까? 누구에게는 고양이가 보기 싫은 요물일 수 있지만 나한테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요물이다. 그래서 불과 6살 만에 너무 일찍 고양이 별로 간 뀨를 생각하면 죄책감과 더불어 지독할 정도로 상실감이 들고 생전에 볼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니 매일 너무 그리워진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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