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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May 03. 2024

조선의 절대군주 vs 고양이 집사, 숙종의 두 얼굴

별고나 2024년 5월 3일 금요일

조선 왕조 역대 최강의 왕권을 가진 왕이라고 하면 단연 숙종을 뽑을 수 있다. 장장 46년에 이르는 치세 동안 무수한 환국 정치를 통해 매우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정통성 때문이었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은 효종의 외아들이었고 숙종 본인은 현종과 정실부인 명성왕후 소생의 아들이었고 조선 왕조 대대로 따라왔던 외척과 관련된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약점을 잡을 만한 게 없었다. 왕위를 오를 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고 대비전의 수렴청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친정을 했으니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조선 왕조의 절대군주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숙종은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면호를 가지고 있었다. 매사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 포악한 성정과 화병을 안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왕조에서 명군으로 잘 알려진 영조와 정조도 이러한 성정을 물려받게 된다. 숙종 스스로 본인의 화증이 뿌리내린 지 이미 오래고 날이 갈수록 깊은 고질이 되었으며 치료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인정했을 정도인데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신경성이 유발한 스트레스성 질환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조선의 절대군주라고 불리는 숙종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환국 정치이다. 인조반정 이후 한 당파에 인해 모든 권력이 독점되는 식으로 전개가 이루어졌는데 숙종은 절대왕권을 이용해 적절하게 환국을 일으켰고 이는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졌다. 후대에 와서는 숙종의 왕권 강화책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뿐만 아니라 지나친 환국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으로 붕당의 건전성을 날려버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숙종이지만 유일하게 남은 여동생 명안공주와 자식들을 지극히 아낀 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의외의 면모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말년에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궁궐 내 후원을 거닐던 중 가냘프게 축 처진 길고양이 한 마리를 거두게 되는데 이 고양이에게 금덕(金德)이라 이름을 붙였고 금덕이가 새끼를 낳자 그 아기 고양이를 금손(金孫)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금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숙종은 금손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다고 하는데 환국 정치로 피바람을 일으킨 숙종의 잔혹한 면모를 생각하면 의외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더 놀라운 부분이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종이 승하한 후 고양이 금손이가 3일 동안 먹이를 먹지 않고 주인 없는 어전만 보면서 슬프게 울기만 했다는 것이다. 고양이 집사를 영원히 잃은 고양이는 먹기를 거부하고 애처로이 울며 시름시름 앓더니 2주일 뒤에 빈전 계단에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 감명받은 왕대비 인원왕후가 숙종의 릉 옆에 금손을 묻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내용은 단순히 야사가 아닌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과 김시민 <동포집>에 실릴 정도이니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절대군주 숙종이 고양이 집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처음에는 측은지심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동생과 자식에게 애정이 깊은 숙종이기에 금덕이가 아기 고양이 금손이를 낳는 장면을 쉽게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금손이가 일반적인 고양이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애교와 순애보를 보여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 고양이의 경우 개와 달리 사람을 우러러보는 게 아닌 동등한 존재로 보는 성향이 있어 요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고양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고양이 3남매를 동시에 키운 경험이 있는 필자 같은 경우에도 지금은 막둥이 고양이 뀨가 항상 나만 바라보면서 무한한 애정을 줬던 별난 존재로 기억하고 있다. 숙종이 환국 정치를 펼친 가장 큰 이유는 왕권 강화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 왕조에 있어 꼬리표처럼 따라왔던 적장자 문제와 이로 인한 신하들의 지나친 참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심을 숨기고 본인의 야심을 펼치는 이율배반적인 신하들의 모습과 달리 금손이는 조건 없는 애정을 줬기에 큰 위안을 얻었을 거라고 본다. 아마도 고상한 언변을 앞세워 이해득실과 조건을 따지는 신하들은 숙종에게 있어 악취를 풍기는 애증의 존재로 보였을 듯싶다. 하지만 편 가르고 급 나누지 않고 오직 나만 바라주는 고양이 금손은 애정의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수라상 밑에 납작 엎드려 있다 숙종이 던져주는 고기를 받아먹고 밤에는 숙종 옆에서 함께 잠을 잤으며 신하나 중전을 만날 때도 고양이 금손과 함께 있었다고 하니 숙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셈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 내용일 뿐 숙종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보면 오히려 금손에게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을 거라고 사료된다. 고양이 집사라는 타이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마치 주종이 바뀐 모순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장자의 호접지몽이라는 말처럼 피아의 구별을 잊고 나란히 보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표현이다. 나와 사물은 곧 하나이기에 인간이 곧 고양이이고 고양이가 곧 인간이다. 아마 숙종과 금덕이는 함께 하면서 그걸 깨달았을 거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숙종의 죽음은 금덕이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만약 금덕이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죽었다면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인해 병약해진 숙종의 죽음으로 이어졌을 거라고 보인다. 타고난 본성과 더불어 은혜와 의리가 쌓이게 되면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이와 같은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불과 6살 만에 별이 된 막둥이 고양이 뀨 역시 금덕이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줬기에 마치 야누스와 같은 숙종의 두 얼굴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숙종이 금손이를 좀 더 일찍 만나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에 IF가 없다고 하지만 숙종의 화병이 덜어져 우리가 알고 있는 환국 정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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