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하 Sep 20. 2023

하늘에서 비가 내려

수요일마다 비가 와


또 비 오네?

재활용쓰레기 버려야 하는데 비가 온다며 엄마 얼굴에 그늘이 졌다. 3주 연속이다. 아빠가 버리겠다고 하자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빠의 대답만으로도 충분했는지 기어코 엄마가 다 치웠지만.


그 사실을 아는 나는 엄마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다음 주도 비 올 거야.

엄마에게 눈빛으로 크게 혼났다.





따스한 햇살이 눈이 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하지만,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우산을 쓰더라도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빗방울에 젖으면 바로 축축하고 무겁게 달라붙는 옷 때문인지, 그 꿉꿉한 날씨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이 싫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에는 낭만에 젖어든다는데, 나는 낭만이란 낭만이 다 없는지 어럈을 때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직 비를(눈을) 어떻게 뚫고 가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너무 현실적이었을까? 그래서 출근길에 비 오는 건 더더욱 싫었다. 새벽출근도 그랬지만, 오후출근과 야간출근에는 더더욱. 비를 뚫고 출근하는 길은 감정마저 가라앉아 다른 때보다 그 길이 더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비보다 눈이 더.. 싫었지만!





근데 언제부터 비가 좋아졌더라? 창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모습이 운치 있다고 느꼈을 때부터? 아니면 비 오는 날 먹으면 더 맛있는 김치전이나 파전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비 오는 날 유난히 향이 깊은 듯한 커피 때문에? 더 이상 오후와 야간에 출근하는 일이 없어서? (마지막이 제일 확실한 것 같지만)


아니, 결국은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언제라도 좌절 후에는 행복이,
비가 온 후 맑은 날이 오는 것처럼.
- 스누피 명언 -


비는 계속 내리지 않고 그치게 되어있다. 비가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어지고 그 위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결국 마음 역시 무거워져도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가벼워지면서 무지개처럼 화사하게 차오르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비가 오면 전만큼 기분이 더 우울해지지는 않는다. 향긋한 커피 한 잔이나, 좋아하는 음식, 혹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그 빗소리를 같이 즐길 수 있어졌으니까.



p.s

그런데.. 진짜 밤 되니까 비가 그친 것 같다. 다음 주도 수요일에 비 오려나..?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꽃 길을 걸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