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노년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다시, 올리브”까지
미국 북동부 메인 주의 바닷가 작은 마을 “크리스비’에서 수학 선생으로 평생을 보낸 여성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다룬 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는 2014년 HBO에서 총 4회로 구성된 시리즈로 제작되어 에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본인 스스로 우울증을 앓고 있고,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올리브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은 마을의 사람들 이야기는 소설과 시리즈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작가인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2019년, 11년 만에 “다시, 올리브”로 외로운 노년의 삶을 적나라하지만 다정하게 보여준 소설을 발표했다.
[책 기본 정보]
제목: 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
지은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옮김이: 권상미
문학동네 2010-05-06 (원작 출판 2008년)
[시리즈 기본 정보]
제목: 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 2014년
감독: 리사 츨로덴코
출연: 프란시스 맥도먼드, 리차드 젠킨스, 존 갤러거 주니어
내용: 평화로운 작은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념에 어긋나는 관계와 범죄, 비극이 난무하는 곳이다. 차가운 듯 따뜻한 전직 교사 올리브의 눈으로 이곳의 25년을 담았다. (왓챠)
그런 어르신이 있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어”라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관습적인 날씨 이야기로 다정하게 대화를 시작하지 않고, 다른 사람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한 말은 절대 안 하고 짧은 몇 마디로 사람의 속을 콕콕 찌르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어르신이 있다.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이러한 올리브 역에 딱 들어맞는 배우이다. 165cm의 보통 사람 신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발 사이즈가 275인 거구의 여성을 연기로 보여준다. 20대에 아버지가 부엌에서 총으로 자살한 사실을 거리낌 없이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남편은 “헨리를 볼 때면 늘 따스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때문이다”라는 평판을 가진 약사이다. 사람들은 짝을 이루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다정하고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좋은 사람이다. 올리브는 다정한 남편의 소중함을 한참 후 에야 알게 된다. 그들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말이 없는 아이로 성장하고, 올리브는 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지는 않을지 늘 걱정하곤 한다. 크리스토퍼가 아이였던 중년 시절의 올리브와 헨리 이야기는 단 한편이고, 은퇴 이후 50~60대까지의 올리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12편의 단편으로, 총 13개 챕터로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약국, 밀물, 피아노 연주자, 작은 기쁨, 굶주림, 다른 길, 겨울 음악회, 튤립, 여행 바구니, 병 속의 배, 범죄자, 강] 이 중, 올리브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약국, 밀물, 작은 기쁨, 다른 길, 불안, 강] 단편이 HBO 4회분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올리브가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확신과 불안이 공존하여 그녀를 변덕스럽게 만들었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자살을 하기 위해서 고향 크리스비로 돌아온 제자 케빈을 만나고 아들 크리스토퍼가 결혼하고 부모의 곁을 떠나가는 은퇴 후의 이야기,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강도 사건으로 서로의 민 낯을 알게 되고 헨리를 떠나보낸 후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게 되기까지, HBO는 짧은 4회 미니 시리즈로 올리브의 중년에서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농밀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11년 만에 출간된 “다시, 올리브”는 노년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두 권의 소설에서 인상적인 글은 아래와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 Olive Kitteridge
[밀물]
다시 한번 존 베리먼을 생각했다. 총과 아버지의 자살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오… 자비! … 방아쇠를 당기지 마오, 그리하면 나는 평생 당신의 분노로 고통받으리니…
[작은 기쁨]
올리브는 침대에 누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까.
[튤립]
그녀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있는 건 더 싫었다.
[강]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내 차례가 돌아올 타르트 접시처럼 사랑을 경솔하게 내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 아니, 사랑이 눈앞에 있다면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그녀의 타르트 접시는 헨리의 선량함으로 가득했고 그것이 부담스러워 올리브가 가끔 부스러기를 털어냈다면, 그건 그녀가 알아야 할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알지 못하는 새 하루하루를 낭비했다는 것을.
[다시, 올리브, Olive, Again]
[단속]
잭은 가슴속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이었고, 남편과 사별한 그 여자가 식료품점에서 날씨, 이야기를 할 때도 똑같이 느꼈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그런 말은 그만! 정말로 어땠는지 말해줘! 잭은 뒤로 기대앉으며 잔을 앞으로 밀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그저 그뿐, 사람들은 뭔가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 알지 못하거나, 정말로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올리브 키터리지가 그리운 이유였다.
[망명자들]
그리고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 입을 벌린 어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은 어떤 것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그를 찾아왔다.
[시인]
말을 걸어오다
삼십사 년 전 내게 수학을 가르쳐준 누군가는
나를 겁에 질리게 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침 먹는 자리로 와서 앞에 앉았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채
내가 늘 외로움을 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자기 이야기인 줄 모르고
그걸 시로 써. 그려가 말했다.
맘껏 써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양극성 장애, 우울증으로 힘들게 살고 있으나 그 사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족의 삶을 갈아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올리브는 냉정한 관찰자에서 사실을 인정하고, 고독한 삶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나의 가족들은 장년, 노년 시기를 대부분 건강하지 않게 보냈기 때문에, 그 시기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50대 이후의 삶을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알려 주었고, 보다 현명하게 그 시기를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 때 행복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는 것을 느낄 때 행복해한다. 행복이라는 것을 사회적, 경제적 성공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안다. 삶은 외롭고 쓸쓸한 것이지만 그 또한 사람과 사회 속에서 위안을 받게 된다.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뉴욕에 사는 아들 가족과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자신의 재킷에 묻은 아이스크림 자국을 보고 아들과 며느리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은 “관계”에 절망하고 요양원에 누워 있는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얼마나 사소한 것에서 갖게 되는 작은 실망이 사람을 절망하게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이 대단하였다. 연말연시에 보기에 쓸쓸한 이야기이지만, 또 한 살을 먹기에 직면해야 하는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이 엿보이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