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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Aug 05. 2024

신축과 리모델링 vs 창작과 편집

올해 이른 봄에 계획을 세웠다. 독립서점 리모델링을 5월 말까지 끝낸다는 계획이었다. 5월 중순부터 삐긋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정체상태다. 신축도 리모델링도 공사가 멈출 때가 있다. 인력과 자재 조달이 힘들어서, 돈이 없어서 멈추기도 하지만, 길을 잃어서 멈추기도 한다. ‘야옹책방’ 리모델링은 길을 잃었다. 애초에 구현하고 싶은 모습이 있었지만, 실제로 진행해보니 제대로 되지 않는다. 돈이 부족한 문제를 푸는 것도 디자인의 한 영역이라 생각한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 정체성의 문제다. 만들려 했던 머리 속 모습과 실제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 사이의 간극이다.

집을 짓는 사람들은 말한다. 리모델링보다 신축이 쉽다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리모델링에 욕심이 없어 대충하는 사람은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쉽다고 말한다.

깊은 고민 없이 집을 새로 짓는 사람은 신축이 리모델링보다 쉽다고 말한다.

이는 신축이 쉬운가, 리모델링이 쉬운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축이든 리모델링이든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결과물을 만들려 하는가에 달린 문제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신축이든 리모델링이든 모두 어렵다.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하고 그 결과물이 정형성, 평범성을 넘어서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라면 신축도 리모델링도 어렵다. 이쯤되면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더 어렵다. 오랜 세월 망가진 방법으로 골프, 테니스, 수영을 해왔던 사람에게 멋진 폼을 만드는 일보다, 아예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이 더 쉬운 것과 같다. 리모델링은 한계와 제약이라는 조건 하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 정리되지 않은 온갖 글들을 잔뜩 모아둔 하드디스크 등을 말하며 내가 그 동안 쓴 글들이 책 100권 분량은 될거야.. 라는 말을 한다. 쓴 글들은 많은데 공개하지 않았다는 말 속에는 비밀이 있다. 편집과 윤문, 기획과 창작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나도 제대로 써먹을 수 없는 쓰레기들이라는 말이다. 왜 이렇게 쉽게 단정하는가?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주제없이 메모하든 끄적여 놓은 글들, 서로 다른 성격, 다른 내용의 글들을 모아두기만 하면 저절로 책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써 먹겠지라는 생각처럼 글쓰는데 방해되는 태도도 없다. 작가는 글자료를 만들어내는 일보다 한 장의 제대로 된 글을 오늘 당장 써야 한다. 큰 결심을 하고 지난 글들을 열어 뭔가를 만들어 보려 하면 깨닫는다. 누더기 글들로 새로운 멋진 창작물을 만드는 것보다 아예 처음부터 쓰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끝없이 고민한다. 이 글을 고쳐서 완성할까? 처음부터 다시 쓸까? 도저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은 글을 붙잡고 씨름하는 편집자의 마음이 그렇다. ‘이 책은 엎는 게 맞아.’라는 생각으로 고통스런 작업을 한다.

리모델링은 집을 고쳐서 쓰는 일이다. 삶은 리모델링 편집과 비슷하다. 기존에 있는 것을 고쳐 쓰는 일이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안타깝게도 삶이란 지난 삶을 고쳐 쓰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새 삶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리모델링을 생각하며 글과 삶을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때로는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이 더 낫다. 예상치 않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재미와 보람,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견한다기 보다는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결과는 해봐야 아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결과까지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이 있을 것 같다.

- 여러 목표를 세우지 말 것.

리모델링이든 책, 일, 삶을 기획할 때는 구현하고자하는 목표를 하나만 세우는 것이 좋겠다. 리모델링하는 김에, 새 집을 짓는 김에, 이런 좋은 소재로 글을 쓰는 김에, 이 일을 하는 김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 생긴다. 글의 주제가 많으면 글은 산으로 간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형편없는 글이 되기 쉽다. 리모델링도 그렇다. 딱 한 컨셉만 전달되면 좋겠다. 응… 화이트 우드네. 응… 여백이 많네. 응, 자연친화적이네. 응…. 편안하고 쾌적하네. 한 문장에 한 컨셉이 들어가듯 하나의 목표만 세워야 하겠다. 편안하고 쾌적하고, 코지하고 레트로 하고, 빅토리아 양식도 살짝, 모던하면서도 향수를 자아내는 포근함도 살짝… 이렇게 되면 디자인은 산으로 간다. 일도 맛이 간다. 삶의 문제 대부분도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욕심을 많이 부려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여러 것을 동시에 구현시키려는 욕심과 하나를 제대로 구현하려는 욕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후자는 탁월함을 만들 수 있으나, 전자는 죽도밥도 되지 않는다.

독립서점 리모델링을 다시 생각한다. 단순화해야겠다. 너무 많은 것을 구현하고 싶고, 너무 많은 것들이 얽히고 설키다 보니 디자인도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

- 자연, 화이트, 우드로 어우러진 여백이 있는 공간.

그래도 여전히 여러가지가 있다.

더 줄이고 더 줄이고 더 줄이자.

글도 그렇다.

단순한 글이 좋은 글이다.

삶도 그렇다.

복잡하고 탁월함의 종착역은 단순함이다.

그걸 우리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될 지 안 될지는 모른다.

일단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리모델링은 기존의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그런 점에서 리모델링과 삶은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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