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에겐 직접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

독자(reader)와 유저(user) 사이

by ELLA

나는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를 좋아한다. 책장을 손끝으로 살짝 쥐었을 때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 책장을 넘길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다.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소멸을 우려하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이책의 경쟁자가 되기에 전자책은 너무 약한 상대였다. 사람들은 책을 쥐던 손에 손바닥만 한 전자기기를 쥐었고, 인간보다도 똑똑한 이 기기는 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수한 콘텐츠를 쏟아내며 일상에 파고들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이 주목받으면서 책은 힘을 잃어갔다. 과거 텍스트 중심의 콘텐츠가 주류였던 시절, 많은 이들의 취미가 으레 '독서'였다면 오늘날 주요 콘텐츠 소비자의 취미는 '유튜브 시청'인 것이다. 1인 1스마트폰 시대, 책의 경쟁자는 스마트폰이 되었고 전자책은 되려, 독서에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토록 하는 도서 시장의 조력자가 되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도 '밀리의 서재'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물리적으로 자유롭다. 단 5분이라도 시간만 생기면 어디서든 스마트폰을 꺼내 독서가 가능하다. 이 첫 번째 이유는 사실 그 짧은 시간 독서를 위해 무거운 종이책을 항상 가지고 다닐 만큼 내가 독서에 열정적이지는 않음을 반증한다.


둘째,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 모든 책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월 사용료를 지불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눈길이 가는 책을 선뜻 구매하기는 망설여질 때 나는 밀리의 서재를 이용한다.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전자책을 다운로드하여 훑어보고 나의 취향에 꼭 맞는 책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책을 서점에서 구매하고 정독한다.


사실 종이이든 스마트폰이든 책을 읽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전자책 서비스를 그저 종이책 독서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하나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이유는 딱 하나. 전자책은 나에게 과분하기 때문이다.


전자책은 다양한 옵션을 제공한다. 내 눈에 제일 편안한 화면의 밝기를 조정하고, 글씨체와 글씨 크기를 설정하고, 터치 방식으로 페이지를 넘길지, 스크롤을 할지도 고민해본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책갈피 기능으로 표시를 해두기도 하고, 하이라이트 기능으로 색을 입혀 밑줄을 쳐두기도 한다. 문제는 이 다양한 기능들이 내겐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이면 됐다.


결국 종이책의 본질은 '책'이고 전자책의 본질은 '서비스'인 것이다. 종이책은 '읽는' 것이고 전자책은 '이용하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독자(reader)이지만,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독자인 동시에 사용자(user)가 된다. 그래서 종이책을 ‘읽을 때’는 내가 읽고 있는 내용 즉, ‘WHAT’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지만 전차책을 ‘이용할 때’에는 내가 이용하는 방법 ‘HOW’에 따라 만족도가 좌우된다. 'WHAT'에 더 높은 독서의 가치를 두는 내게는 종이책이 주는 만족도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도 유사하다. 음악을 구매한다는 개념보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개념이 더 익숙한 시대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음악을 감상하는 오늘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행위 자체보다 그 음악을 '어떻게' 듣는지에 더 주목한다. 그래서 '멜론', '지니'와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은 무손실 고음질 음원, 3D 입체 음향 등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서비스뿐만 아니라, 플레이리스트를 기반으로 취향을 분석한 추천곡, SNS 계정 연동 등 다채로운 서비스 제공에 힘쓴다.


음악 감상은 CD를 사거나 MP3 파일을 다운로드하던 과거에도, 그리고 수많은 기술을 접목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당연해진 현재에도 인기 많은 취미이다. 다만 과거 음악 감상이 청자(listener)의 역할에 주목했다면, 오늘날에는 청자인 동시에 음악 감상 서비스의 사용자(user)인 것이다.


독서든 음악 감상이든 우리는 서비스 이용자로서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이 배경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스마트폰이 있다. 그러나 가끔은 HOW에 대한 수많은 선택지를 주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온전히 WHAT에만 집중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행인 점은 오늘날의 기술 발전이 HOW에 주목했다고 해서 WHAT의 본질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책을 읽으면서 그토록 평온함을 느끼는 이유는 책 자체가 주는 감동보다 200g짜리 작은 전자기기를 잠시라도 손에서 내려두고 멀리한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가득한 책에 사인을 받고 싶다. 오롯이 독자로서.


시대가 바뀌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많아진다. CD, MP3 플레이어, 책이 스마트폰의 한 기능으로 무형화되고 우리는 책을 쥐던 손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나 콘텐츠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의 등장이 기존 방식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취향에 맞는 방식을 고르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현명한 유저(smart user)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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