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덕후가 등장인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무언가의 팬이 된다는 건 하루 틈틈이 설렘을 느끼는 일이더라.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덕후인 나는 브런치에 ‘제인 오스틴’을 검색하여 들어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개인 브런치 페이지에 팝업창을 띄울 수 있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반가워요- 저도 제인 오스틴 관심 있어요! 심지어 좋아해요!
덕후가 되어보니 내가 덕질하는 대상의 매력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봐 줄 때 묘한 기쁨이 느껴진다. 내 자식이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아온 것만 같달까. 내가 낳아 키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디 가수가 공중파 음악 방송에 출연한 느낌이기도 하고.
이쯤 되니 이토록 좋아하는 제인 오스틴을 더욱 알리고 싶어 졌다고 말해야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작가의 존재를 알리기보다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 그녀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오늘도 브런치에서 제인 오스틴을 찾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하는 덕후의 바람을 담아 그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입문하기가 쉬우면 좋으련만 그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과속 방지턱 같은 낮은 진입 장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주된 범인이다. 때문에 나 역시 처음부터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십 대 시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다가 두 번은 포기한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던데 등장인물이 어찌나 복잡하던지. 나는 재미라고는 조금도 느껴보지 못한 채 책을 덮어버리곤 했다.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등장인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여러 명의 동일한 이름 때문이었다. 분명히 베넷 씨라는 등장인물이 딸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음 문단에서 돌연 베넷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또 다른 장면에서는 분명 결혼해서 출가한 딸이 돌연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고.
이해해보려고 몇 번을 시도한 끝에야 그녀의 소설에는 등장인물을 이름을 부르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이해하고 나니 그녀의 다른 소설에도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한 권씩 제인 오스틴의 읽으며 나는 제인 오스틴 덕후가 되었다.
진입장벽이긴 하나 이건 한 손으로도 넘을 수 있는 아주 낮은 방해물이다. 한 번만 넘으면 제인 오스틴의 세계로 넘어올 수 있다. 그러니 혹시나 나와 같은 이유로 제인 오스틴의 책을 덮어버린 분들이 있다면 아래의 내용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주 간결하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연애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다. 주제만큼이나 배경도 일상적이다. 배경을 이루는 구조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비슷하다. 드라마가 1988년 쌍문동에서 덕선이네, 정환이네, 선우네, 택이네, 동룡이네의 일상 이야기를 담았다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1800년대 영국 남부에서 베넷 집안, 다아시 집안, 캐서린 집안 등의 일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집안 별로 등장인물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어느 집안의 누구인지 가계도를 그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제인 오스틴 소설의 첫 시작은 주인공 집안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으므로 주인공 집안부터 메모하면 된다. 또한 집안 별로 거주하는 지역이나 공간을 부르는 명칭이 있는데 이 명칭을 같이 메모해두면 좋다. 내용 중에 ‘덕선이네를 방문했다’라고 하지 않고 ‘쌍문동 149-1번지를 방문했다’고 그려놓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시)
덕선이네 – 쌍문동 149-1번지
정환이네 – 쌍문동 149-5번지
다아시 집안 – 더비셔 지역의 펨벌리
베넷 집안 - 롱본
집안 별로 등장인물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데 누가 어느 가족의 누구(아빠, 엄마, 딸, 아들, 손주) 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조금 복잡하다. 가족 중에서 자신의 성(Family name)으로 불려지는 사람이 있고, 일부는 자신의 이름(First name)으로 불려지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김 아무개의 가족을 예로 들면 가족 중 누구는 김 씨로 불리고, 누구는 철수 혹은 영희로 불리는 것.
그러나 호칭의 몇 가지 법칙만 기억하면 크게 어렵지 않다. 일단 집안의 1세대(주인공의 부모 세대)는 대체로 성(family name)으로 불린다. 조부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영국에서는 부부가 되면 여자는 남자의 성을 따르기 때문에 부부 모두 같은 성씨를 가진다. 이를 영어로 쓰면 Mr. Kim & Ms. Kim으로 다르지만 우리나라 말인 ‘-씨’로 바꾸면 퍽 난감해진다. 이에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아래와 같이 번역한다.
[남편] Mr. 오스틴 – 오스틴 씨
[부인] Ms. 오스틴 – 오스틴 부인
혹은 등장하는 가문이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인 경우, 남자의 성씨에 귀족적 지위를 붙여 번역하기도 한다. 꼭 지체 높은 집안이 아니더라도 성씨 뒤에 직업에 따른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남편] 윌리엄 경(공, 대령, 소령, 중위 등)
[부인] 윌리엄 (경) 부인
귀족 집안의 여자에게는 부인이라는 호칭 대신 ‘레이디’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레이디라는 호칭은 이름 앞에 붙여서 부른다.
[남편] 윌리엄 경(공, 대령, 소령, 중위 등)
[부인] 레이디 캐서린
부모 세대를 찾았으면 형제/자매를 구분할 차례다. 이때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바로 첫째를 찾을 것. 보통 첫째에게만 성씨(Family name)를 붙여서 부르고 둘째부터는 이름(first name)을 부른다. 그러니 첫째만 찾으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다.
형제의 경우 첫째에게만 성씨에 ‘~씨’를 붙여서 번역하고 둘째부터는 성씨 대신 이름을 부른다. 첫째에게 ‘~씨’ 대신 직업이나 지위를 붙여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집안의 아버지를 부르는 경우와 동일하므로, 장면에 따라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해내면 된다.
(예시) 윌리엄 집안 삼 형제
첫째, 버나드 윌리엄 - (호칭) 윌리엄 씨(경, 공, 중령, 대령 등)
둘째, 제임스 윌리엄 - (호칭) 제임스
셋째, 존 윌리엄 -(호칭) 존
자매도 마찬가지다. 첫째에게만 성씨에 ‘~양’을 붙여서 번역하고 둘째부터는 성씨 대신 이름을 부른다. 다만 여기에서는 등장인물이 미혼인 경우만 해당된다. 결혼하게 되면 남편 성을 따라 성씨를 바꾸기 때문이다.
(예시) 베넷 집안 다섯 자매
첫째, 제인 베넷 - (호칭) 베넷 양
둘째, 엘리자베스 베넷 - (호칭) 엘리자베스
셋째, 메리 베넷 - (호칭) 메리
넷째, 키티 베넷 - (호칭) 키티
다섯째, 리디아 베넷 - (호칭) 리디아
남매로 이루어진 집안의 경우도 동일하다. 각 성별의 첫째에게 위와 같은 법칙을 적용하여 번역하고 둘째부터는 이름을 부른다.
(예시) 대시우드 집안 삼 남매
첫째, (남자) 존 대시우드 - (호칭) 대시우드 씨
둘째, (여자) 메리 대시우드 - (호칭) 대시우드 양(첫 번째 딸이므로)
셋째, (여자) 릴리 대시우드 - (호칭) 릴리
손주는 별다른 호칭을 붙이지 않고 이름 그대로를 부른다. 다만 손주의 이름을 지을 때 조부모나 부모의 이름을 따서 똑같이 짓는 경우가 많다. 헷갈릴 수 있으나 어느 집안인지만 구분해놓아도 글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다음은 제인 오스틴 <설득>에 나오는 한 단락이다.
앨리엇 씨가 그의 두 사촌과 클레이 부인을 대동하고 산책을 나갔다가 밀섬 가에 도착했을 즈음 비를 만났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여성들이 비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만큼은 되었다. 더욱이 엘리엇 양의 경우는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있던 레이디 달림플의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정도였다. 따라서 엘리엇 양과 앤과 클레이 부인은 몰랜드 제과점으로 들어갔고, 엘리엇 씨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레이디 달림플에게로 갔다. 목적을 달성한 그가 다시 일행과 합류했다. 레이디 달림플이 그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몇 분 안에 그리로 오겠다고 했다면서.
위의 법칙에 따라 등장인물을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 엘리엇 씨 – 엘리엇 집안의 첫째 아들
* 엘리엇 양 – 엘리엇 집안의 첫째 딸
* 앤 – 엘리엇 집안의 둘째 혹은 그다음에 태어난 딸
* 레이디 달림플 – 달림플 씨 부인
* 클레이 부인 – 클레이 씨 부인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위에 적어놓은 인물 구분 방법은 장면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구분하기 위해 성 대신 이름에 직위를 붙여 부르는 경우도 있고, 남녀 주인공이 단 둘만 있는 경우 서로의 이름만을 부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호칭에 관한 큰 틀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변주쯤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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