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윤제 장편소설 [8월의 태양]을 읽고
책 띠지에 적힌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보고 이 소설은 20대들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열여덟 살은 수능이라는 성인식을 준비하는 나이에 불과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성인식을 치러야지만 비로소 스무 살과 청춘을 맞이할 자격이 주어진다는 못된 편견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하게 20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열여덟은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서있는 나이다. 작가는 그 경계를 '청춘의 시작'이라고 정의한다. 십 대 시절을 '사춘기'라고 뭉뚱그려놓은 나의 게으름을 들켜버린 순간이었다. 경계에 선 자들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꿈꾼다. 그곳에는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무엇이든 꿈꿀 수 있다는 설렘이 공존한다. 묘한 공기가 느껴지는 8월의 태양 아래, 막 청춘이 시작되는 다섯 개의 인생이 등장한다.
청춘은 그들에게 묻는다. 정말이지 무엇이든 꿈꿀 수 있냐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이뤄나갈 수 있느냐고 말이다. 태연하게 묻던 청춘은 돌연 미소를 지우더니 매섭게 열여덟을 채찍질한다. 동해의 항구도시 강주에서 다섯 명의 청춘들은 휘몰아치는 시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소설의 주인공 동찬이 묻는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우리의 운명은 전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청춘의 의지나 꿈 따위는 헛된 망상처럼 느껴진다. 피할 수도 맞서 싸울 수도 없는 잔인한 운명 앞에서 동찬은 수없이 무너지고 원망하며 좌절한다. 이 모습이 열여덟을 한참 지난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더욱 서글프다.
과연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을까? 그렇다면 굳건한 의지와 투지로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청춘들은 뜨거운 태양과 차디찬 바닷물에 자신을 번갈아 담금질하며 답을 찾아 나선다. 피해도 보고, 주먹을 날려도 보고 맞기도 하던 청춘들은 운명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와라! 와라! 와라!”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해상축제 '뱃고놀이'가 둥둥거리는 북소리와 함께 절정에 이른다.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들의 뱃고놀이는 끝이 난다. 그들은 운명론을 받아들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 운명론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운명에 관한 다른 한 가지를 찾아냈다. 운명은 정해져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두려움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두려움에 맞서 본 사람은 분명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된다. 뼛속까지 고통을 느끼며 이리저리 방황할 지라도, 그 혹독한 담금질은 두려움을 다루는 자신만의 힘을 만들어낸다. 그 힘은 얼마나 무한한지 파도치는 운명 앞에선 사람이 당당히 “와라!”라고 외치게 된다. 이건 두려움에 순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이것이 경계에 선 사람들의 운명이고 시작되는 청춘의 운명이다.
우리는 ‘미성년’이라는 글자 뒤에는 놈 자(者)를 붙이고, 어른이 되면 완성되었다 하여 이룰 성(成) 자에 사람인(人) 자를 붙여 ‘성인’이라고 부른다. 열여덟 해를 산 사람은 미성년자다. 속되게 표현하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놈’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더 이상 놈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미성년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아직 답에 이르지 않았다 하여 그 과정까지 무의미한 것은 아니므로. 인고(忍苦)의 과정을 못 본 척 지나칠 수는 없다. 어디선가 자신의 운명 앞에서 담금질을 하고 있을 그들은 ‘청춘’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한편, 어른들은 청춘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것에서 비롯되는 시련과 고통에는 치를 떤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열여덟 못지않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힘겹게 씨름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청춘이라 부른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청춘이 된다. 나는 세상 모든 청춘들에게 <8월의 태양>을 추천한다. 각자의 운명 앞에서 당당하게 “와라!”라고 외칠 수 있길 바라며.
* 많이 읽고 좋을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서평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책을 제공받아 아주 주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글은 올려야 하는 곳에 이미 올렸고, 더 많은 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브런치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