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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쓱 Feb 03. 2021

쉽지 않은 날이지만

정말 쉽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어젯밤, 책방 문을 닫기 20분 전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운전이 힘들어지기 전에 집에 출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급하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에 갔는데, 저의 차 양 옆에 있는 차들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었습니다. 게다가 앞에도 차가 있어서 차를 빼기가 어려워 보였어요.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지 2개월밖에 안 된 초보이지만 주차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아무리 어려운 코스도 시간을 오래 들이면 어떻게 원하는 대로 됩니다. 그런데 어제는 눈이 내려서 시간을 들일 수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차를 빼려고 이리저리 시도하던 중 골목 양 옆에서 차와 오토바이가 왔습니다. 저보고 빨리 움직이라고 빵빵- 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결국 앞에 주차되어 있던 흰 그랜저를 살짜쿵 치고 말았습니다. 첫 사고라서 멘탈이 바스러졌습니다. 차 주인과는 다음 날 아침에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와인을 많이 마셨어요. 


오늘 아침이 되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운전 안 할 거야! 난 사고를 냈어ㅠㅠ"라며 좌절했었지만, 술이 깨서 이성을 되찾고 보니 운전을 또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게다가 도로의 눈도 녹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언니를 세무서에 데려다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섰습니다. 세무서에 도착해서 언니를 내려줬을 때, 차 주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수리하는 데 얼마 정도 들지 물어봤습니다. 차 주인이 정비소에 문의하는 동안 저는 세무서를 떠나 커피 학원에 왔습니다.


커피 학원 앞에 주차를 하고 차 주인과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수리비가 30만 원이라고 해서 보험 처리하지 않고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30만 원을 계좌이체로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9시 26분이었습니다. 커피 수업이 시작되기 4분 전입니다. 학원에 들어가며 어머니께 전화로 잘 해결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커피 수업에서는 샤케라또를 배웠습니다. 칵테일을 만드는 셰이커에 얼음과 에스프레소, 시럽 일정량을 넣고 쉐킷 쉐킷-! 흔들어서 제조하는 아이스 에스프레소 음료입니다. 한 명씩 다 해봤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서 열심히 흔들었는데, 뚜껑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놓쳤는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안에 있는 샤케라또가 제 얼굴과 옷, 그리고 바닥에 다 튀었어요. 정말 부끄럽고, 민망하고, 서러웠습니다. 


자꾸 실수만 저지르는 제가 너무 미웠어요. 왜 이렇게 덤벙대고 침착하지를 못할까, 타박했습니다. 그런 자괴감에 빠진 모습을 몇 번 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싫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여전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책을 읽을 만큼 진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서러움을 토해냈습니다. 조금 괜찮아진 뒤, 자리에 앉아서 할 일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도 하나, 둘 오셨습니다. 어? 셋, 넷이 오시네요? 어어어? 다섯??? 

다른 가게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저희 책방은 평일에 다섯 명이나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놀라운 일이에요. 두 번째로 오신 손님들이 나가실 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저 오늘 아침에 수요일의 편지 잘 읽었어요."


제가 놀랍고 기분이 좋아서, 신나는 목소리로 "네?"하고 되물었더니 즐거운 목소리로 화답해주셨어요. 


"지난주부터 수요일의 편지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전 편지들까지 쭉 다 읽었어요."


와, 정말 기분 좋은 말입니다. 이 손님들이 나가시고 컵을 정리하면서 마스크 아래로 활짝 웃었습니다. 


다음 손님도 나가시기 전에 인사를 건네셨어요. 이번에는 장식장에 놓인 컵을 물어보셨습니다. 


"저기 있는 레몬컵은 구매하신 거예요? 아니면 사장님이 직접 그리신 거예요?"


또 신나서 제 아는 분이 도예를 하시는데, 그분이 개업 선물로 만들어주셨다고 주절주절거렸습니다. 


8시쯤에 오신 마지막 손님도 말을 건네셨습니다. 


"늦게까지 여시나 봐요?"


사실 손님들이 말을 안 걸어주시면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야깃거리가 없나 탐색하고 궁리하지만 찾기가 어렵습니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 실례가 될까 봐 조심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면 신이 나요. 정말 단전에서부터 쌓아놨던 말들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으면 안 되니까 간략하게 말을 합니다. 


"9시까지 열어요!"  



엉망진창이었던 하루였는데, 

말을 걸어주신 분들 덕분에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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