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쉽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어젯밤, 책방 문을 닫기 20분 전에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운전이 힘들어지기 전에 집에 출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급하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에 갔는데, 저의 차 양 옆에 있는 차들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었습니다. 게다가 앞에도 차가 있어서 차를 빼기가 어려워 보였어요.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지 2개월밖에 안 된 초보이지만 주차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아무리 어려운 코스도 시간을 오래 들이면 어떻게 원하는 대로 됩니다. 그런데 어제는 눈이 내려서 시간을 들일 수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심지어 제가 차를 빼려고 이리저리 시도하던 중 골목 양 옆에서 차와 오토바이가 왔습니다. 저보고 빨리 움직이라고 빵빵- 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결국 앞에 주차되어 있던 흰 그랜저를 살짜쿵 치고 말았습니다. 첫 사고라서 멘탈이 바스러졌습니다. 차 주인과는 다음 날 아침에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와인을 많이 마셨어요.
오늘 아침이 되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운전 안 할 거야! 난 사고를 냈어ㅠㅠ"라며 좌절했었지만, 술이 깨서 이성을 되찾고 보니 운전을 또 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게다가 도로의 눈도 녹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언니를 세무서에 데려다 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섰습니다. 세무서에 도착해서 언니를 내려줬을 때, 차 주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수리하는 데 얼마 정도 들지 물어봤습니다. 차 주인이 정비소에 문의하는 동안 저는 세무서를 떠나 커피 학원에 왔습니다.
커피 학원 앞에 주차를 하고 차 주인과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수리비가 30만 원이라고 해서 보험 처리하지 않고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30만 원을 계좌이체로 보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9시 26분이었습니다. 커피 수업이 시작되기 4분 전입니다. 학원에 들어가며 어머니께 전화로 잘 해결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커피 수업에서는 샤케라또를 배웠습니다. 칵테일을 만드는 셰이커에 얼음과 에스프레소, 시럽 일정량을 넣고 쉐킷 쉐킷-! 흔들어서 제조하는 아이스 에스프레소 음료입니다. 한 명씩 다 해봤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서 열심히 흔들었는데, 뚜껑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놓쳤는지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안에 있는 샤케라또가 제 얼굴과 옷, 그리고 바닥에 다 튀었어요. 정말 부끄럽고, 민망하고, 서러웠습니다.
자꾸 실수만 저지르는 제가 너무 미웠어요. 왜 이렇게 덤벙대고 침착하지를 못할까, 타박했습니다. 그런 자괴감에 빠진 모습을 몇 번 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싫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여전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로 책방을 열었습니다. 책을 읽을 만큼 진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서러움을 토해냈습니다. 조금 괜찮아진 뒤, 자리에 앉아서 할 일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들도 하나, 둘 오셨습니다. 어? 셋, 넷이 오시네요? 어어어? 다섯???
다른 가게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저희 책방은 평일에 다섯 명이나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놀라운 일이에요. 두 번째로 오신 손님들이 나가실 때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저 오늘 아침에 수요일의 편지 잘 읽었어요."
제가 놀랍고 기분이 좋아서, 신나는 목소리로 "네?"하고 되물었더니 즐거운 목소리로 화답해주셨어요.
"지난주부터 수요일의 편지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전 편지들까지 쭉 다 읽었어요."
와, 정말 기분 좋은 말입니다. 이 손님들이 나가시고 컵을 정리하면서 마스크 아래로 활짝 웃었습니다.
다음 손님도 나가시기 전에 인사를 건네셨어요. 이번에는 장식장에 놓인 컵을 물어보셨습니다.
"저기 있는 레몬컵은 구매하신 거예요? 아니면 사장님이 직접 그리신 거예요?"
또 신나서 제 아는 분이 도예를 하시는데, 그분이 개업 선물로 만들어주셨다고 주절주절거렸습니다.
8시쯤에 오신 마지막 손님도 말을 건네셨습니다.
"늦게까지 여시나 봐요?"
사실 손님들이 말을 안 걸어주시면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야깃거리가 없나 탐색하고 궁리하지만 찾기가 어렵습니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 실례가 될까 봐 조심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시면 신이 나요. 정말 단전에서부터 쌓아놨던 말들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으면 안 되니까 간략하게 말을 합니다.
"9시까지 열어요!"
엉망진창이었던 하루였는데,
말을 걸어주신 분들 덕분에 좋은 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