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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퍼 Jan 31. 2022

요리의 언어

모든 것은 나랑 같이해요

우리 따님이 요즘 요리에 불이 붙으셨다.

벌써 3주째 주말마다 요리를 같이 하자고 한다.

"모든 것은 나랑 같이해요"라고 살갑게 굴던 딸이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은데.. 갑자기 함께 요리를 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아이의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아마도 게임을 1시간 하면 쉬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는 약속을 신경 쓰며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내가 출근하는 날엔 쉬는 시간에 무얼 했는지 물어보면 주로 솜이 털을 빗겨주거나 낚싯대로 놀아주기를 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지 않고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도 약속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기기를 하루 종일 붙들고 있을까 봐서 1시간 간격으로 꼭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함을 잘 설명해줬다. 오래오래 게임을 즐기려면 반드시 쉬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각인시키고 있다.

"엄마는 프로게이머 딸과 산다고 생각할 테니 즐겁게 집중해서 게임을 해. 단 뇌를 쉬게 해주는 휴식시간은 필수야"라고 얘기해 줬다.


갑작스레 요리에 심취한 까닭은 뭘까?

1월 초 초등학교 졸업식을 해서 중학교 입학 전까지 두 달 동안 긴 방학이다. 엄마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업시간 잘 지키기와 잘 씻기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밖에 지킬 게 없어서 심심해진 탓도 있겠다.


딸은 내 카톡으로 2개의 유튜브 영상 링크를 보내왔다. 우유떡 만들기와 구름빵 만들기였다. 요리는 사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아이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우리 솜이는 호기심이 생기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요리하는 모녀를 관찰하고 있다. 요리 테이블에 올라오지 않고 재료를 건드리지도 않고 조심조심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기만 한다. 오늘은 좀 더 간섭하고 싶었나 보다. 요리 재료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자 냉장고 위까지 톡 하고 올라와서 우리 모녀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물해 줬다.


벌써 4종류의 요리를 만들었다.

덕분에 주방에 조리도구도 여러 가지를 새로 구입했다. 자동 거품기, 지름 23cm 강화유리 믹싱볼, 소스볼, 실리콘 주걱, 오븐용 사각 세라믹 채반도 샀다. 어느새 주방이 한층 부유해졌다.


첫 번째 요리는 우유떡 만들기였다.

찹쌀가루와 감자전분, 우유, 설탕과 약간의 소금만 있으면 3분 만에 만들 수 있다는 유튜브를 보고 바로 만들어 봤다. 모양은 그럴듯했는데 맛이 뭐랄까? 덜 익은 반죽 맛이 났다. 그래도 같이 만들면서 재료 계량도 하고 재미있었다.

두 번째 요리는 구름빵 만들기였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모양도 맛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구름빵은 최애 간식처럼 벌써 세 번이나 오븐에서 태어났다. 공룡알 같기도 하고 겉은 반질하고 속살은 정말 부드럽고 달콤했다. 세 번째 만들 때는 혼자 다 먹어도 되는지 물어본다. 너무 맛있는데 반 조각은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엄마는 다른 간식을 먹을 테니 혼자 다 먹으라고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구름빵은 약간의 노동력이 요구된다.

계란의 흰자만 분리해서 거품기로 실컷 저어준 다음 설탕을 넣고 또 열심히 저어야 하는데 내 역할은 계란 흰자만 분리해주는 일이다. 거품이 풍성하게 생길 때까지 만들어지면 옥수수 분말을 조금 넣은 뒤 또 열심히 저어야 한다. 계란 거품이 머랭처럼 끈끈해졌을 때 주걱으로 떠서 팬 위에 모양을 잡아서 오븐에 구우면 된다.

세 번째 요리는 버터를 잔뜩 넣고 만드는 버터 크랙 쿠키였다. 버터를 으깨고 달걀노른자만 한 개 넣은 뒤 다시 섞어야 한다. 설탕을 한 움큼 넣고 잘 섞은 후 박력분을 넣어 반죽을 완성하면 된다.

집 앞 마트에는 중력분과 강력분만 팔아서 그냥 중력분을 넣고 만들었다. 계란 노른자 분리해서 넣어주는 일 말고는 딸아이가 알아서 척척 만들었다. 오븐에 넣기 전에 쿠키 모양을 조금 만져서 하트쿠키로 만들어 줬다. 쿠키도 제법 그럴듯한 모양과 달콤하고 고소한 간식이 되었다.

네 번째 요리는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너는 커피를 못 먹는데 괜찮아?"

"엄마가 커피 좋아하니까 만들어줄게"

"와우! 우리 딸이 엄마를 위한 요리를 만드는 거야? 정말 고마워"


원래 달콤한 커피류는 거의 마시지 않는 나였지만

딸이 만들어준 달고나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의사소통과 관련된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시간과 인내,
그리고 기꺼이 다시 시도해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리에타 맥카티-

사춘기 딸과 대화의 단절을 극복하는 일에는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시간과 인내 그리고 기꺼이 다시 시도해보려는 마음에 힘을 더해주는 게 요리라고 생각된다. 방안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던 사춘기 딸과 소통이 시작되고 있다. 주방이 지저분 해지고 설거지가 쌓이면 어떤가? 방 밖으로 나와준 딸과 요리를 통해 아름다운 언어를 쌓아가고 있다.

다음 요리 주제는 뭘 들고 올지 기대된다.


사춘기 딸과 오랫만에 요리 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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