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살아남기
돈 없는 학생에게 답은 야간비행이지.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주로 야간에 이동했다. 야간 비행, 야간 버스, 야간 기차. 이유는 당연하다. 그래야 싸니까.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출발지 브뤼셀에서 암만까진 직선으로 6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급하게 잡았던 여행 일정 때문에 직행 비행기가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브뤼셀 밤 11시 출발+우크라이나 키예프 10시간 경유+요르단 23시 도착 비행기를 구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쌩썡했다...ㅎ
시간이 아까워서 키예프도 잠시 둘러보고 갔다.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도 한번 여행하고 싶은 곳이었는데, 결국 교환학생 시기 때는 못했다. 언젠간 가볼 날 있겠지... 물가가 싸서 좋은 곳이었다(지하철 편도 200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중동 여행에선 생각했던 것 이상의 힘듦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부터 그럴 줄은 몰랐다는 게 문제.
키예프-암만(요르단의 수도)행 비행기 2시간 동안은 지옥이었다. 안 그래도 밤을 새우고 키예프도 하루 종일 돌아다닌 상황인데, 같이 탄 요르단 학생들이 비행기를 전세 내기라도 한 듯 시끄럽게 떠들어서 잠도 못 자고... 덕분에 새벽에 암만 퀸 알리아 공항에 도착했을 땐 비몽사몽이었다. 첫 차가 오기 전이라 공항 스벅에서 꾸벅꾸벅 졸며 기다리던 내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여행을 간다면 어딜 가나 그런 법이긴 하지만, 특히 중동은 한국의 방식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게 돌아가는 곳이다. 택시나 버스의 바가지는 기본이고, 잘 가던 택시가 멈춰서 자기가 마실 커피를 사기도 한다(나도 하나 사주려고 하길래 참음). 암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딱 기분이 그랬다. 거리 곳곳에 보이는 아랍어, 히잡 쓴 사람들, 갈색 건물. '아 여기는 내가 그동안 다닌 곳이랑 다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곳. 좋은 첫인상은 아니었다. 다음날 바로 페트라로 떠나야 해서, 조금 부지런히 움직였다.
중동에는 로마 유적이 많다. 이슬람스러운 걸 좀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로마 유적부터 먼저 보게 됐다. 암만에서 48km 정도 떨어진 제라시는 그 규모만으로도 꽤나 볼만했다. 로마 유적지 자체야 이탈리아에서도 본 적 있는데, 중동의 로마 유적은 또 느낌이 다르다. 물론 나중에는 이런 유적들을 너무 많이 봐서 좀 질리긴 했다. 앞으로도 종종 사진이 더 올라갈 예정
위에서도 말했지만 중동은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주로 안 좋은 쪽으로). 체계 없는 시스템이 대표적인데, 이 중구난방 시스템을 제라시에서 처음으로 겪게 된다. 암만에서 제라시까지는 보통 대중교통으로 쓰이는 밴을 타고 다니는데, 갈 때는 1 디나르(1500원)였던 요금이 올 때 갑자기 2 디나르로 오른 것. 동행한 미국인이 열심히 따져봐도 자기네는 영어를 모른다며 버티니까 도리가 없다. 1500원 버리는 셈 치고 밴을 탔는데, 이번에는 잘 가던 도중 갑자기 어느 마을에서 멈추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운행한다'며 다 같이 내리라고 해서 얄짤없이 우버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현지인들 상대로 화를 내봤자 여행자만 손해 보는 법. 그러려니 하고 남은 시간엔 버스표를 사고 암만 시내를 돌아다녔다.
날도 좋고 제라시를 한번 둘러보고 오니까 긴장이 좀 풀린 느낌이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긴장 풀리고 보니까 암만도 이뻐 보였다. 저녁 될 때까지 열심히 쏘다녔다.
중동을 여행하다 보면 위 같은 훔무스(병아리콩 있는 수프)랑 팔라펠(경단)을 지겹게 먹게 된다. 제일 싸고 대중적인 곳이라 나중에 이스라엘 넘어가기 전에도 몇 번 와서 싸게 배를 채웠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해서 4~5 디나르였던 걸로 기억.
다음날 페트라행 버스가 오전 6시에 있어 빠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보니 잠이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