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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ul 02. 2021

농담이 뭔지

7년 만에 인생책을 다시 읽을 때

7월만 되면 항상 입대를 기다리던 날들이 생각이 난다. 


인생의 최하점을 찍고 있던 시기였다. 군대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것들이 꼬여있었다. 여기에는 다 쓰지 못할 분노 내지 울분 억울함 뭐 그런 것들.... 그런 마음으로 입대를 했다. 2014년 7월의 일이다.


그 해 하반기를 일병으로서 죽은 듯이 지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간신히 책 한 권 들여오는 것을 허락받았을 때 우연히 들여온 책이었다. 여름의 원인모를 화와 울분이 남아있을 때였다. 농담 때문에 인생을 망친 주인공, 내가 있던 부대와 비슷한 환경에서의 복역, 화, 분노, 그리고 그 너머의 것들. 시기도 잘 맞았고, 내용도 잘 맞았다.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한 번에 읽어버렸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뭔가 치유 같은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속에 뭔가가 누그러들었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대학생 시절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여자 친구를 놀리기 위해 악의 없는 농담을 보낸다. 하지만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체코 사회와 당은 루드비크의 농담을 반동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루드비크는 당에서 추방되어 5년 간 탄광 근처 군부대에서 강제로 복무하게 된다. 증오와 복수심에 루드비크의 마음은 뒤틀려 버리고, 결국 자신을 구원해줄 수도 있었던 루치에와의 사랑도 비극적으로 끝을 내고 만다.


복무를 마친 루드비크가 고향으로 돌아오며 소설은 시작된다. 인생도, 사랑도 모든 게 뒤틀려버린 루드비크를 이끄는 건 증오와 복수심이다. 농담 한 마디에 꼬여버린 모든 것을 루드비크는 돌려놓으려 한다. 자신의 인생, 루치에와의 사랑,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넣은 이들에 대한 복수 등등.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고, 오히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루드비크를 이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루드비크는 깨닫게 된다. 영원한 것도,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인생이란 거대한 농담 같은 것이고, 루드비크의 그것 역시 거대한 농담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결국 루드비크는 그 어떤 것도 되돌려놓지 못했고, 삶 역시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 역시 농담 같은 삶이 이끌어가는 일부분임을 루드비크도, 나도 알게 된다.


오늘날에도 벌써 역사는 잊힌 것들의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가느다란 기억의 밧줄일 따름이지만,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이제 한정된 개개인의 기억 속에 모두 들어올 수조차 없는 또 다른 수천 년의 세월이 이미 지나가 버리고 난 후인 시대가 다시 또 올 것이다. 수백 년, 수천 년이 또한 와르를 모두 무너져 내릴 것이며, 몇백 년의 그림과 음악, 몇백 년의 발견, 투쟁, 책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리라. 불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개념 자체를 잃어버릴 것이고, 파악도 이해도 불가능한 인간의 역사는 의미를 상실한 도식적인 기호 몇 개로 축소되어 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책의 추천사를 쓰시오' 얼마 전 봤던 필기시험에서 나는 결국 <농담>을 적어내지 못했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안 읽는 주의인데, 7년 전 내가 읽었던 내용과 주제가 정확했던 걸까. 혹여라도 내가 잘못 이해한 내용으로 글을 쓰면 역효과만 나지 않을까. 끝끝내 나는 고민을 이겨내지 못했다.


필기 시험장을 나오면서부터 이번 것은 통과하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왔다.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농담>을 썼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그랬다가 틀리기라도 한다면? 혹시 대신 적어 낸 책을 시험관이 더 좋아하지는 않을까?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후회와 일말의 희망이 섞여 혼란스런 몇 주를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냥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농담>은 내가 생각했던 그 책으로 남아있었을까. 분노와 절망으로 차 있던 7년 전 내가 책의 원래 메시지를 잘못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다시 집어 든 책은 놀랍도록 그대로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스토리도, 주제도 모두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기억하고 있는 대로 필기에 썼으면 적어도 후회는 되지 않았을 것을. 한창 책을 읽고 있던 사이에 필기에서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후회막심으로 좌절해야 하는 상황인데,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필기도, 7년 만에 집어 든 책도, 7년 전에 집어 든 책도 모두 농담 같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하다. 필기시험 한번 망하는 걸로 간만에 인생책을 다시 읽을 기회를 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거지같지만) 웃긴 농담이다. 이전에 느꼈던 까닭 모를 치유를 다시 한번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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