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직장인'임을 자각하는 날
친하게 지내는 한 타사 기자는 모 건설사를 아주 싫어한다. 정확히는 그 건설사의 오너를 싫어한다. 어떤 공사 건을 두고 주민들이 오너의 집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이걸 기사로 썼다가 홍보팀으로부터 '오너 이름을 빼달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드라이하게 팩트만 들어있는 문장을 두고 들어온 태클에 그는 뭐가 잘못됐냐며 버텼지만 데스크에서 직접 수정 지시가 들어오니 별 수가 없었다. 평소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없던 친구도 이 날만큼은 '내가 기자에 자존심을 가지고 있을 줄 몰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론사도 회사다. 정부, 관청, 기업 같은 광고 주체와 묘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광고가 직결로 걸려있는 산업부에서는 이런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기업과 언론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예민한 문제다. 잘못한 부분은 당연히 비판하지만 이런 미묘한 문제에서는 묘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월급쟁이 기자가 자존심을 부릴 여력은 사실... 별로 없다. 조직의 이익과 내 월급이 달려있는데 고집을 부릴 직장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결국 팩트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만 타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기자도 직장인'이라는 잊고 있던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입사 3년도 안 돼서 펜보다 강한 밥의 현실을 느끼는 건 꽤 슬픈 일이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회사의 방향에 맞지 않아 이직하거나 아예 업계를 떠나는 경우도 왕왕 들려온다. 밥은 확실히 펜보다 강하다.
쓰기 싫었던 기사를 쓴 날이면 진한 현타가 퇴근길을 감싼다. 절대 반대했던 정책을 두둔하고, 여러 사정으로 '억까'를 하는 날에는 그 친구가 느꼈던 심정을 절절하게 느낀다. 각오는 했지만 준비가 안 된 느낌이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말은 30대가 넘어도 적응이 안 된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나라고 자위 하기엔 그 뒷맛이 씁쓸하다. 저연차에 생각보다 빠른 고민을 떠안았다는 느낌이다.
'이 기사는 쓰기 싫었어요'라는 말을 길게 돌려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