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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 asatoma Nov 15. 2024

밤 수영에는 와인 아닌가요

밤 수영 뒤엔 와인이죠

봄엔 막걸리 가을엔 와인


낮에 긴급재난문자가 왔어요


ㅇㅇㅇ씨를 찾습니다-키 얼마, 몸무게얼마, 검정바람막이, 검정바지, 검정운동화


내가 아는 누구도 요즘 그러고 다니면서 자신이 마치 세상의 그림자 같다고 그랬거든요

그것도 남편의 바지와 티셔츠와 잠바를 입고 말이죠

그림자로 살아간다나 뭐라나 운동하러 나올 때도 그렇게 입었네요


수영 뒤에 와인이 어떻게 가능하냐면요

그..작은 물병인데 내부는 스텐으로 되어 있고 보온과 보냉이 되는 밀폐 마개가 되는 물병이요

아, 텀블러. 이런 외래어 힘들어요

와인을 텀블러에 넣어 마시면 맛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온도가 유지되어서 좋고, 휴대가 가능해서 좋고, 꼭 그래야 할 팔요는 없지만 남들이 보기에 물이나 커피처럼 보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수영 올 때부터 걸음이 좀 가벼웠어요 어떤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요 혼자 설레고 기대되는 거 남자를 몰래 만나는 것보단 낫지 않나요 몰래 술 마시는 거 뭐, 꼭 몰래 할 이유는 없지만 재미있으니까


이 와인을 어서 마시고 우리 동네 술가게에 가서 건조한 키스 맛이 나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할 거예요 설마 그대로 표현하진 않을 거고 몇만 원대 와인 중에서 탄닌이 가장 강한 걸로요,라고 하겠지요 문장의 제일 첫머리엔 가격대를 분명하게 제시해요 참 오늘은 그래서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걱정 마세요


나에게 꼭 필요한 훈련을 시켜주는 강사를 만나면 인사하고 싶은데 모든 사람들이 건물을 빠져나가고 아무도 없어요 약간 돌고래 소리를 내는 강사예요 미안한 말이지만 사람 같지 않고 귀엽고 영리한 바다생물 같아요 난 이 와인을 그러니까 집에도 남지 않게 우리 동네 술가게에 빨리 갈 수 있도록 어서 마셔버릴 거예요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가 있고 별개로 내일 어떤 발표회가 있지만 나는 지금 와인을 마셔야겠어요 한두 잔에도 취하는데 나는 빨리 취하는 게 좋아요 솔직히 사람과 함께 마실 때는 잘 취하지는 않아요 나무 옆에서 마실 때와는 다르게요


지나는 사람 누구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어요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겠어요 누가 신고할지도 모르지만

밤에 여자 혼자 거리에서 술 마시기 가장 좋은 곳은 어딘지 아세요 특히 인적 드문 이런 시골에서는요 관공서 앞이요 이를테면 경찰서나 소방서 같은 그런데 업무 보시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 근처 버스정류장이요 조명도 조금 있고 사람도 있다가 없다가 하기는 해도 소리치면 근처에서 인지할 수 있는 정도의 버스정류장 사실은 지금 달무리가 엄청나게 크거든요 저 옆에 앉아 있는 청년한테 말해주고 싶은데 입술이 너무 벌개 가지고 169번을 발라가지고 좀 그래요 달무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요 보실래요?



10시 10분이 되면 집에 가서 보고서 마무리를 할 거예요 어떤 아저씨가 담배 피우고 왔다 난 담배 안 피우는데 뽀뽀할 때 냄새나면 별로라서 텀블러에 너무 많이 담아왔나 봐요 이따가 맞춤법 검사는 꼭 해야지 酒醉의 사실보다 맞춤법 틀리는 게 더 싫어요 남편은 酒臭를 느낄까요 그럴 거리에 있을까요 그럴 리가요 아 선배가 어떻게 지냈니 물으면 한 마디로 답하기가 어려우니 한 권 책 내밀게 봄에 멈춰뒀던 걸 그대로 진행할까 고민이 많아요 그것과 별개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무지하게 건전한 출간제안서 하나 보내 두고 기다리는데 다른 곳에도 보내려고 해고 올해를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서요


참 그리고 승진하려고요 할까 말까 고민의 시간이 있었는데 저 청년이 가면 좀 눕고 싶은데 저 총각이 기다리는 버스가 안 오나 봐요 직함을 바꾸어보려고요 갔어요 이제 한 모금 남았어요 시간은 6분 남았네요 나 신고받은 적 있는데 어느 가을에 용지호숫가에 차 세우고 책 읽고 있었는데 경찰이 출동했어요 누가 신고했다고 괜찮아요 나도 신고 자주 하거든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 있으면요 참, 승진하려고요 월급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닌 의미 없는 직급이지만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게임 퀘스트 깨듯이 그냥 하는 거죠 나 디아블로 밤새면서 했었거든요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이제 우리가 헤어질 시간 낮에 갔던 커피집엔 한 번 더 가보려고요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스피커와 선곡이 좋았어요 당신이 오면 좋을 텐데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김해출장 가요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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