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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May 22. 2024

도시락 싸고 다니는 남편, 이상한가요?

고물가 시대, 여의도 직장인으로서 도시락은 선택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오뎅, 계란프라이, 김치, 흰쌀밥으로 구성된 도시락

요즘 회사에 도시락을 싸고 다닌다. 가파른 물가와 고요한 내 월급 때문이다. 순댓국이 1만 원인 여의도 점심에 백기를 들었다. 그나마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작은 사치를 부려본다. 육개장 사발면을 1000원에 구입해 자극 한 스푼을 더한다.


출근 전 20분 만에 싼 밥, 깍두기, 소시지, 장조림으로 도시락을 싼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 맛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이상하게 집밥은 많이 먹어도 금방 배고프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지나가던 L부장님의 이야기가 꽤나 신빙성 있다. 아내의 사랑이 담겨야 할 도시락을 내가 직접 싸서 그렇다고 한다. 반찬은 듬뿍 담았지만, 사랑이 안 담겨서 그렇단다.


아내에게 이 얘길 해주니, 착한 아내는 내게 함박 스테이크를 하사했다. 그렇게 오늘은 함박 스테이크, 밥, 깍두기로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을 먹고 있으면 누군가 한 번쯤 물어본다. '혹시 아내가 싸주신 거예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아뇨, 제가 직접 아침에 쌌어요 ㅎㅎ"라고 답한다.


이 말이 끝나면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비슷한 반응에서 오는 이유를 알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짐작컨대 남직원 중 도시락을 직접 싸는 건 내가 유일할 거다. 사실 아내가 몇 번 도시락을 싸줬다. 하지만 서로 다른 취향의 반찬을 이해하기엔 직장인의 점심은 너무나 소중했다.


직장인에게 하루에 1번,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점심이다. 그래서 회사 밖 식당은 자극적인 입맛으로 가득하다. 반면 아내는 금방이라도 굴러갈 거 같은 남편을 위해 건강한 식단을 싸줬다. 몸은 좋아지지만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출근 시간이 빠른 내가 먼저 일어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아침에 굽는 소시지와 장조림 냄새가 출근 준비하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감칠맛 나는 깍두기와 흰쌀밥을 꽉꽉 담고 나면 괜히 뿌듯하다. 이렇게 직접 도시락을 싸게 됐다.


아내도 이런 내 취향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내 의사를 존중해 준다. 맨날 소시지나 고기반찬으로 도시락을 싼다고 용돈을 삭감하겠다며 귀여운 협박을 한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며 신혼의 1년을 맞춰가고 있다.


물론 이 생활이 지속될지 모른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여의도 점심가격은 아침에 눈을 절로 뜨게 한다. 내 나이 30대 중반,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생각해야 한다. 조금씩 건강한 식단으로 도시락을 싸봐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냉장고 안에 재료를 생각한다. 두부, 나물, 고등어 등 어릴 적 어머니가 주셨던 음식을 이젠 나도 먹어야겠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도시락을 쌌다. 늘 도시락을 뭘 싸야 할지 고민했다는 어머니의 지난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건강과 맛 둘 다 겸비했던 어머니의 도시락을 기억하며 도시락 쌀 궁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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