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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Oct 10. 2022

영화리뷰 : 헌트



생각보다 평이 좋아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던 작품이었다. 

80년대를 전후로 한 근현대사의 실제 사건들을 조합하여 각색하였고,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한 첩보 스릴러물이라는 점에서 진부해져버리기 쉬운 구성이었지만 나름대로 장르적 문법을 잘 구사하면서도 같은 이야기의 지루한 반복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건조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첩보물에 내가 관대한 점도 있지만, 오랜만에 2회 관람한 영화였다. 시나리오의 힘이겠지만 이정재나 정우성 같은 비주얼을 배우를 주연으로 두고 이를 화려하게 활용하고 싶어질 유혹을 잘 참아내고 어느 일방도 대단한 영웅도 악당도 아니게 그려낸 것 역시 칭찬할만하다.

아무튼, 의외의 수작이라고 느껴진다. 



이하 되도록 스포일러 없이 작성하도록 노력하였으나, 이야기 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일부 줄거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됨은 양해를 부탁드린다. 


---스포일러 절취선-------------------


시대적 고증 

그 시대의 디테일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시대상을 그려내는 그러한 치밀한 고증이라고 하기는 힘들겠다. 또 이야기의 얼개를 맞추기 위하여 무리하여 반영한 설정도 없지 않다. 가령 '박평호' (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은 각각 중앙정보부에서 13년, 군에서 중령 예편 후 각 중앙정보부 입사인데, 적어도 80년대 시점에서 그 정도 경력으로 중앙정보부 해외와 국내 파트장인 차장급에 올랐을 것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박평호가 이중간첩으로서 탁월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치더라도, 80년 광주에서 소령, 곧 중령 진급했다하더라도 영화의 배경인 83년까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무리 정권의 누군가의 눈에 잘 들었다고 하더라도 핵심 권력 기관의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도 할 수 있는 중장정보부의 국내 파트장을 맡겼다는 것은 인사상 잘 납득가지 않는 흐름. 적당히 젊고 매력적인 연령대의 주인공이 현장에서 액션도 하고 하는 그림이 나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거 같기는 하고, 그 시대의 어두움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덮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장치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고증 가운데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었다. 


다만, 그 시대 자체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80년대 관료들이 일하는 방식과 정부기관 내의 알력다툼이 섬세하게 묘사된 점은 돋보인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거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남산의 부장들'에서 차지철과 김재규의 관계를 빗대여 정권의 가장 충실한 하수인인 경호실과 중정의 충성경쟁을 커리커쳐 하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보다 더 디테일하다. 아랫사람을 신임하고 있는 것처럼 하되 그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도록 경쟁시키고, 윗선의 지위를 위협할 정로도 성장하지는 못하게 하는 질리도록 권력의 안정만을 위하여 사람을 도구적으로 다루던 그 시대의 느낌을 더 잘 살리고 있다.  이정재는 배우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고, 관료제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을텐데, 관료제 특유의 안전한 것 같으면서 항상 위태롭고, 지위 높은 자들마저 항상 감옥에 있는 듯 답답한 그 느낌을 잘 재현하였다. 


물론 그외 80년대 정보기관의 사무공간에 대한 미장센 역시 훌륭한 편이다. 실제로 시대 배경에 맞는 소품 등을 찾아내기 위해서 꽤 공을 들였다고 한다. 컴퓨터 없이 전화와 타자기 그리고 수기로 일하던 때의 사무공간과 화려할 것 없어 80년대 초반 한국의 공공기관의 사무실 배경을 잘 그리고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 만큼은 나무랄점이 없는 편이다. 다만, 대통령 전용기의 묘사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전용기 도장을 하고 있음), 야외에서 도로 이동 간에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2000년대 이후의 정비된 인프라 등은 조금은 시대고증상 아쉬운 장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라고 까지 하기는 힘들다.    




이야기

디테일한 미장센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여주는 장치라고 한다면, 이야기 자체가 힘이 있지 않고서야 영화가 재미있을 수는 없다. 이 영화 (혹은 시나리오)의 장점은 폭력과 야만과 광기의 시대 속에 그것을 체화한 체제에 속한 사람들 모두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구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면서도 그 안의 개개인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폭압의 시대를 살아견뎌야 했던 개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주된 정서라고 할까. 이 지점이 중요한 것은 비록 야만의 구조 속에서 그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개인이라할지라도 다음 세대에게 이 증오와 폭력을 물려주지 않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증오와 폭력의 고리를 상징적으로 끊어내는 것은 새 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가 그 시대의 (뒤틀린) 윤리를 강요하는 전 세대의 잔재를 '죽임'으로서 이루어진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정권의 가장 민낯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박평호' (이정재 분)와 군인으로서 독재자의 의지가 국민과 부딪히는 가장 폭력적인 지점에 있을 수 밖에 없던 '김정도' (정우성 분)가 각자 정권을 잡은 자들을 배반하는 선택에 이르는 명분에 대한 설명이 무리하지 않다. 


정권의 수호를 위하여 매일 같이 야만속에서 살아야했던 박평호가 정권의 야만성을 정당화하는 논리인 '안보'라는 명분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평화통일'을 선택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이중간첩 (북한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고위 정보원 '동림')이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순진한 선택이었다고 하여도 이해가 간다. 영화는 심지어 북한의 의도가, 박평호가 믿었던 서로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따위가 아니라 남한 대통령 암살 후 혼란상을 틈탄 전쟁이었음을 드러내면서 남측도 북측도 어느 하나 그 권력자들을 믿을 수 없었음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아울러 박평호가 조국에 대한 '변절'을 택한 것도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에 침투한 북측 조직에 붙잡혀간 박평호가 '겨우 전쟁이나 하려고 내가 이 시간을 견딘 줄 알아'라고 절규하는 장면에서는 이러한 배경이 더 잘 드러난다. 사실 박평호가 한 선택에 대하여서 보다 직접적인 설명은 황정민이 분한 '리중좌' (이웅평을 모티브로 한 귀순 파일럿) 가 중정 취조실에서 뱉은 말들 속에 있다. 자신에게 변절자라고 하자 크게 분노하며, 자신은 인민과 조국을 사랑하고 그러나 정권을 세습하는 행태에 분노하여 남조선으로 왔노라고. 결코 변절자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결국 이들 모두 '조국'이라고 할 북한 또는 남한에 대하여 그리고 그 안의 시대의 동료들에 대하여 나름의 애정으로서 행동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수단이 나이브했다거나 결국 의미 있지 못했다고 하여도 말이다.  


김정도의 선택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군인'이라는 명분에 충실한 사람으로서, 정권을 찬탈하고자 하는 기자신의 권력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군을 사병처럼 동원해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아 살육을 버린 그 자리에 있었다. 사실 군인이라고 한다면 전두환이 군을 동원해서 국민을 학살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권력적 지위를 공고히한데에 대하여 누구라고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나는 군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물론 그에 반발하거나 분노한 군인은 없다시피 하였다. 적어도 군부내에서 전도환의 선택을 도저히 군인으로서 할 수 없는 부당한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주류가 아니었고 아마도 전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군 내부에 지금도 독재정권 시대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넘쳐나고, 보안사의 후신인 기무사(이제는 군사안보지원사) 역시 '빨갱이'에 대한 증오와 사회에 수두룩하게 침투해 있는 간첩에 대한 편집증적 불안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독재자를 사살하기 위한 '베드로작전' 같은 것을 시행하기 위해서 유의미한 수준으로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판타지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군인들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진압당하는 와중에 적어도 한 두명의 군인이 그에 깊은 환멸을 느꼈음은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충실한 군인이고자 하였던 김정도가 그러한 군인으로서 마음 속 깊이 전두환 (극 중에서는 '천수호')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간직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는 이해가 될 수 있는 동기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덕은 불의한 시대에도 나름대로의 정의와 선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던,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되어 있던 박평호와 김정도 역시 체제 안의 참여자로서 때론 기꺼이 때론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되고 때론 서슴없이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박평호는 고문기술자 이씨 (이근안 모티브)를 보고 그 잔혹함에 자신도 모르게 구타하며 화풀이를 하지만 그 역시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고문을 주저없이 택하고, 김정도 역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본래 의도를 숨기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하여도 중앙정보부가 붙잡혀온 개인들에게 자행하는 폭력을 그저 받아들인다. 이렇게 모두가 피해자이자 모두가 가해자인 가운데, 권력은 참여자 모두를 공범으로서 만듦으로서 누구도 이탈할 수 없게 관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결하다고 할 수 없는 개인들이 하는 선택은 그 체제에 균열을 낳는다.    


마지막으로 처음 볼 때는 잘 몰랐지만, 두 번째 볼 때 이런 면에서 가장 유의미했던 캐릭터는 고윤정이 분한 '조유정'이다. 조유정은 박평호가 일본지부에 있을 때 정보원이었던 조원식의 딸인 인물이다. 다만 극중에서도 과연 조유정이 조원식의 딸이었는지, 오직 어렸을때부터 북한측의 공작원으로 키워지고 조원식의 딸로 위장하여 박평호에게 접근하여 그를 감시하고 보고하던 암호명 '천보산'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그녀는 '천보산'임을 틀림 없지만, 그가 조원식의 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다만 '조유정'은 그 실체와 무관하게 박평호가 인간다움을 유지하고 버티게 하는 하나의 고리로서도 작용하는데, 그는 모두가 국가의 도구로 사용되는 갑갑한 관료제의 구속 안에서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간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관계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천보산'으로서의 조유정에게도 전해졌기에, 그녀는 마지막에 '박평호'를 사살하라는 당의 명령을 차마 이행하지 못하고 다만, 그의 임종을 지킨다. 박평호는 그녀에게 가명으로된 단수여권을 하나 건네고, 이후 영화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폭력과 종속의 고리를 끊고 국가에 의해 지시되지 않는 개인이 되기 위하여 그녀가 북측 요원들을 사살하는 것으로서 이야기가 마치게 된다. 그녀가 과연 이쪽도 저쪽도 야만스러운 그 체제로부터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채 영화는 끝나고, 다만 우리는 이 야만과 폭력 속의 모두가 가해자가 되는 피학의 연관고리를 끊어내는 선택을 그녀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의 끝을 대하게 된다. '박평호'가 숨이 끊어지기 전에 건넨 '너는 다르게 살 수 있어'라는 마지막 말처럼.     



액션 

첩보영화에 사실 들어가면 현실적이지 않지만 빠지면 심심한 것이 총격전인데, '헌트'는 이를 장르적 문법 안에서 적절히 잘 활용하였다고 보인다. 당연히 과장섞인 액션들이지만 지나치게 과하지 않고, 그 시대에 있을 법한 상황과 무장들로 연출하였고 가급적 총기를 다룸에 있어서도 리얼리티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가령 남측의 무장은 거의 대부분 시대적으로 잘 들어맞는 M16A1과 M1911이 등장하고 주인공들의 전투력이 과장되기 마련인 장면들도 적절한 수준으로 잘 다듬고 있다. 물론 차장급인 나이든 관료 아저씨들이 그렇게 온몸으로 날아다닌 다는 것 자체가 고증오류라면 오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주인공은 멋져야 하지 않는가. 또 마지막에 김정도가 쓰러진 채 탄을 다 소비하고 슬라이드가 후퇴 고정된 M1911의 방아쇠를 당길 때 철컥 철컥 소리가 나는 것은 명백한 고증 오류지만, 이는 관객에게 더 이상 김정도에게 탄이 남아 있지 않음을 아울러 상징적으로는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므로 감독이 그러한 고증오류를 감수하기로 한 선택은 납득이 된다.  무엇보다 어쨌든 액션 시퀀스가 '멋지다'라고 느껴지게 긴장감 있게 연출한 것으로서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랄까. 


정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공범이던 야만과 광기와 폭력의 시대에 개인이 그나마 자신의 '윤리'를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했어야 하는가에 대한 묘사가 이 영화가 나름대로 시대배경 첩보 스릴러 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게 한다. 한편으로는 기적적으로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화된 사회를 건설하였지만 여전히 그 안에 구성원들은 안전하다고만 느끼지 못하고 또 다른 이데올로기 속에서 소비되고 있는데 그 안에서 개인들의 선택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서도 생각이 들게 한다. 개인의 문화적, 경제적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그 시대와 같은 인권유린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여전히 우리가 해결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들과 거대담론으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해야 하는 가치의 설정과 그 안에서 개인들의 실질적인 선택과 관계맺음을 어떻게 우리는 보장할 수 있나. 차라리 단순했던 광기의 시대보다도 복잡한 선택들을 우리는 해야 하는데 개인은 '옳다'는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도 좋은 것일까. 가끔 보는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감정이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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