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화 단계와 장교화 단계는 시간을 들여서 에피소드식 구성을 서술하고 싶었는데, 그렇게하면 짜임새 있는 글이 나올때까지 결국 다음 글을 쓰지 못하고 본론인 통역장교 수기 본편으로는 나가지도 못할 것 같아서, 불가피하게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파편적인 요소들을 열거하여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차후에 본편 연재가 끝난 후 캐릭터를 살려서 정리해서 다시 에피소드적 구성으로 재편집하여 돌아오겠다 약속드리며 우선은 아쉬운대로 해군 장교후보생 과정의 편린들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아마도 이건 가입교때부터 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교교육대에서는 이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를 전체 훈련 과정의 과학적 (=체계적) 구성을 자랑하는 키워드로 엄청 홍보했었다. 그 유래를 찾아보니, 원래 정확히는 신체단련법이라기 보다는 모병 대상자의 심폐기능을 간단하고 빠르게 체크하기 위한 테스트라고 한다. 그래서 정확히는 '하버드 스텝 테스트'이고, 무려 미국에서 1942년에 고안된 것으로서, 2차대전기에 모병시 최소한의 심폐기능상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서는 최근에 하버드에서 개발한 트렌디한 신체단련법인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무려.. 2차대전기에 도입된 것이라니 나는 지금 몹시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당혹감과 무관하게 아직 군대식 달리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즉, 딱딱한 보급 운동화나 전투화를 신고 달리기했다가는 바로 부상자들이 속출할,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약골 상태의 후보생들에게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기에 앞서 1~2주 정도 몸을 달구어줄 생각으로 매일 아침과업으로 하버드스텝을 테스트가 아닌 훈련과업으로 부과한 것이 썩 나쁘지 않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은 든다.
그 유래와 무관하게 엄하게 홍보포인트로 잡고, 60년은 족히 된 운동방법을 엄청나게 최신의 외래 운동법인 것처럼 우리에게 약을 판 것이 얄미워서 위에 한참 투덜거림의 말들을 남겼지만, 사실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굳을데로 굳은 몸을 가진 후보생들에게 첫주부터 구보가 아닌 하버드 스텝 같은 것으로서 준비 기간을 부여하는 것은 나름 칭찬할만하다고 생각하고, 의외로 몸이 구보에 유사한 움직임에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유효한 면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버피 테스트 역시 테스트로 고안된 것이지만 운동법으로 잘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결과론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후보생 때 하바드스텝에서 시작해서 중거리 구보까지 부대에서 시키는대로만 따라가면 임관종합평가 할 땐 대부분 특급, 못해도 1급 안에는 들어오므로 나름 구보와 관련해서는 해사 장교대의 노하우가 있다고는 생각이 든다. 나도 입대할 땐 이미 상당한 고령에 비루한 몸이었지만, 임관종합평가 때는 3km를 11분 40초를 끊어서 넉넉하게 특급으로 들어왔으니 해사 장교대 구보 프로그램 아주 칭찬한다. 그 프로그램만 띄어서 다시 참여하고 싶기도. 재입대는 절레절레.
입대 시에는 다들 기초체력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따끔씩 운동 좋아하고 이미 몸이 만들어져서 입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소수고, 대부분은 학창시설 피씨방 정도나 다니다가 입대한 경우가 대많다. 아, 그 예외중 하나가 나의 통역 동기였는데, 지금도 우리가 DY라고 애칭으로 부르는 이 동기는 사이드로 트레이너를 하던 친구였다. 정말 군대 러닝하나만 입혀도 멋져보이는 몸을 가진 친구인데 장교대에서 단백질 보충을 못하고 유산소 위주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임관 시점 즈음에는 오히려 10kg이 빠졌다고 한다. 근손실이 그만큼 난 것이니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본인은 몹시 아쉬운 일이였을 터. 아 또 내 자랑은 아니지만, 동기 자랑을 하나 더 하자면, 우리 때는 근대5종 선수출신 동기가 있어서 극강의 피지컬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이 동기는 차후 SSU 수료함)
아무튼 그와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체력이 훈련을 논할 수준이 아니기도 하지만, 훈련 시키려면 나름의 베이스라인 기준이 있어야 하므로 입대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체력을 측정하게 된다. 이 때에는 대부분 푸시업 바를 잡고 팔굽혀펴기 정자세로 20개도 못 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윗몸일으키기는 말할 것도 없고, 측정 종목은 아니지만 턱걸이도 하나도 못땡기는 경우가 더 흔하다. 달리기는 아침에 운동장 두서너 바퀴만 뛰어도 죽으려고하는 단계이니 굳이 더 자세히 묘사하지 않겠다.
하지만 전체 훈련 기간도 아니고, 앞에 한 6주 정도 인텐시브 케어를 받으면 임관종합평가 기준 정도는 다들 가볍게 만족시키니,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잘못된 식단과 생활습관을 바탕으로 나태하게 살고 있었는지 익히 알 바다. 아무튼 이때 체력측정을 하고 나면, 막연히 다들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가 현실에 직면하고 과연 나는 이 훈련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실존적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수준을 달성하거나, 임관종합평가에 실패하고 집에 가거나 둘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사뭇 절박한 심정이 되게 된다.
물론, 장교교육대대는 이미 TO에 맞추어 뽑아놓은 후보생들을 손쉽게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당신이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어떻게든 기준을 맞추게 해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 그냥 초기에 조금 비루함을 견디면 되는 문제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