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0. 개관
OCS 훈련 과정은 총 11주이다. 이중 1주차는 가입교라고 하여 정식 입교 전까지
이후부터 훈련과정이 본격 시작되고 이는 군인화 단계와 장교화 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군인화 단계에서는 주로 군인으로서의 기본이 되는 체력을 기르고 각종 제식과 기초 전투기술을 훈련 받고, 장교화 단계에서는 체력 훈련은 유지하면서 장교로서 기본 소양에 대한 교육 위주의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복장도 군인화 단계에서는 주로 훈련용 전투복이 주된 복장이고, 장교화 단계에서는 좌식 수업이 늘어나고 카키색 해군 근무복을 입고 생활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1. 가입교
가입교 기간에는 해군과 해병대 사관후보생 동기들이 함께 진해에서 1주일간 생활한다. 사실 해병대에 해군과 일체감을 주입하기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인데 특별히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대체로 해군은 해병대를 해군 휘하의 특수병과(상륙군)개념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많고, 해병대는 해군 따위가 우리의 모체라니 같은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병대가 엄연히 해군의 육전대 개념인 것은 맞으므로 동기야 잘하자?
이후에는 우리가 1주일간 해병대 교훈단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1주일간 지내면서 해병대 체험을 할 때 또 보게되고, 훈련 마지막 주 임관식 준비를 위해서 마린 친구들이 다시 진해로 와서 얼굴을 보게 된다. 사실 훈련 성격이나 군 문화에서 차이가 꽤 있기도 하고, 해병대는 나름의 프라이드가 강해서 서로 완연히 같은 군이라는 생각들은 별로 가지게 되지 않지만,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친숙해지는 기회가 되는 것은 같다. 가입교 기간 때 친했던 해병 동기들은 실무에서 마주칠 없어도 제대하고도 반가운 마음이기는 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가입교 기간중에는 간단한 신체검사 등과 피복 등 각종 보급품 수령과 같이 본격적인 훈련 진행을 위한 사전적인 행정적인 절차를 미리 실시한다. 특히 후보생들이 훈련을 이수할 신체상태인지를 최소한이나마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한데 이에 따라서 혈압도 재고 채혈도 하고 하는데, 혈압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들이 조금 있다. 혈압은 훈련 받는 도중에 진짜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어떻게든 정상 범주로 측정되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내게 되는데 꽤 많은 후보생들이 생소한 환경, 긴장감 등의 이유로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에는 침대에 눕혀놓고 안정을 취하게 해서라도 혈압을 낮추어 놓고 어떻게는 기준치에 맞추어 입교하게 해주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렇게 해도 영 정상 범위로 안 떨어지는 후보생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퇴교 조치를 하게 된다. 우리 때에도 1명이 혈압 수치가 결국 정상범위로 내려오지 않아서 퇴교 조치 되었는데, 아직 서로 친해지기도 전인데 엉엉 울면서 퇴교하는 동기를 보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몸 만들고 혈압 낮추어서 다음 기수로 오면 되기는 하지만, 인생에서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내딘 걸음에서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그만두어야 한다니 몹시 속상했을 것임이 짐작은 가는 바이다.
한편 가입교 기간은 민간생활과 군생활 시작의 완충구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때 해군 OCS의 경우에는 배를 바다에 띄운다는 의미의 이른바 "진수식"을 거친다. 기수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1~2시간 가량 몸도 풀고, 구보도 하고, 체조도 하고, 푸쉬업도 하고, 크런치도 하고, 온몸 비틀기도 하고, 팔벌려뛰기도 하고, 아직 아무런 친분이 없는 동기들과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도 하고 즐겁고 쾌활한 육체활동을 하게 된다. 진수식은 사실상 민간인들이 처음으로 '군인다움'을 접하는 단계이기도 하고, 나름의 전통을 가진 의식이므로, 훈련관님들도 분위기를 엄격하게 잡는 편이다. 사실 아직 군 생활이 뭔지 감도 오지 않는 후보생들에게는 이때가 가장 낯설고 힘들 때 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는 이를 통해서 훈련 받을 의지가 있는 자원과 그렇지 않는 자원을 걸러내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므로 단상에는 종치고 퇴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종'이 비치된다. 우리 때는 종치고 퇴교한 인원들은 없었다. 다른 기수에서는 더러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 기수가 유독 단 한명도 포기자가 없었던 것은 우수한 기수여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우리 동기들 가운데 당시 해사에서 주요보직을 맞고 있던 장성급의 자녀가 같이 입교했기 때문에 되도록 모든 과정에서 너무 극한으로는 몰아붙이지 않도록 관리가 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사실 첫 주차에는 아직 정식 입교도 아니고 보급품 배분 등 행정적으로 처리할 것들도 많아서 '훈련'이나 '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해군사관학교 내에 각종 주요 시설물들(가령 거북선이라든지!)도 견학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다고 일과가 여유 있지는 않은데 엄연히 가입교도 훈련 기간의 일부이기 때문이기는 하다. 다만 가입교 기간에는 아직 정식 후보생은 아니므로 훈련관들도 후보생들을 거칠게 몰아붙이지는 않는 편이기는 하다.
이것 역시 가입교 기간에 이루어졌던지, 군인화 단계에서 이루어졌는지 기억이 조금 애매한데 (생각해보니 이건 아무래도 해군 군가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해병 동기들이 포항으로 떠나고 정식 입교 후 진행했던게 아닌가 싶다.) 군가를 배우는 시간이 별도로 편성되어 있는데, 무려 성악과 출신의 군악병이 와서 군가를 가르쳐준다. 재능의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만큼 장교 후보생들로써는 중요 자원으로 대우 받는 느낌을 주므로 초임 소위가 되기 위한 과정에 '뽕'을 주입하는 나름의 효과는 있었다랄까.
아무튼 이와 같이 민간인으로 얼떨떨한 상태에서 나눠주는 피복을 지급 받고, 아직 친하지 않은 동기들과 점차 말도 트고 얼굴도 익히고 몸에 베지 않은 생활에 익숙해지다보면 1주일은 금방 가고 어느 덧 첫 주말과 첫 종교활동 그리고 정식 입교를 앞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