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될까?
사건일까? 세계일까? 어떤 인상적인 이미지나 대사일까?
물론 이야기의 시작은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사람은 때로는 영웅이고, 때로는 범인(凡人)이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그들이 느끼는 갈망과 상처, 선택과 실수, 도전과 성장의 궤적이 곧 서사의 몸통이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이야기의 첫 문장은 ‘누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무엇을 겪느냐"보다 "누가 겪느냐"
동일한 사건이라도, 겪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눈이 내리는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의 장면이 있다고 해보자.
둘이 사랑에 빠졌다면 그것은 로맨스다.
한 사람이 과거의 원수를 알아보고 복수를 다짐했다면 그것은 복수극이다.
둘 중 하나가 실은 인간이 아닌 존재라면 그것은 판타지가 된다.
사건은 틀일 뿐이다.
그 틀에 어떤 인물을 넣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방향을 바꾼다.
이 말은 곧, 사건 자체보다 '누가 겪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는 ‘새로운 사건’이 드물다. 고전 서사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비슷한 구조를 반복하며 이야기를 써왔다. 사랑과 복수, 성장과 몰락, 이별과 귀환.
이런 면에서 보자면,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독자가 이야기에 감정이입하고 몰입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전혀 새로운 사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인물의 입장에서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인물이 사건을 겪으며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것이 서사의 진짜 시작이 된다.
인물의 반응이 곧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야기의 씨앗은 한 가지 단순한 상상에서 시작된다.
“내가 만든 인물이 어떤 상황에 던져졌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
이 반응이 바로 이야기를 움직이게 만든다.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치는가, 맞서는가.
애매한 윤리 앞에서 망설이는가,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 나서는가.
그 반응은 곧 다음 사건을 불러오고, 또 그 다음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플롯이 아니라 인물의 선택이다.
작가는 외부 세계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길로 걸어갈지는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독자에게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탄생한다.
독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따라간다
우리는 책을 읽고 나서 사건보다 사람을 기억한다.
“그 장면 진짜 충격적이었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 장면에서 그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가 마음에 남는다.
결국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여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이미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서사의 첫 단계는, 인물의 내면을 상상하는 일이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하나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대신, 누구를 쓸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이 연재는 앞으로 인물의 욕망과 결핍, 트라우마와 세계관, 관계의 갈등 구조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밀하게 파고들 것이다.
그렇지만 출발은 단순하다.
단 하나의 인물, 그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심장이 뛰기 시작할 때,
서사도 함께 박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