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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wny Taewon Kim Jun 04. 2024

사라질 습관과 루틴

Resetting habits

전 루틴의 사람입니다.


저를 만든건 '2할의 재능과 8할의 루틴'이라 생각해요.

게으르고, 의지 약하고, 재미란 유혹에 취약할진대, 그래도 나름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건 습관 같은 루틴 덕입니다.


그게 다 사라지게 생겼습니다.


처음엔 이 차원으론 생각하지 못했는데, 4주의 순례사회적 임사체험이기도 합니다.

연속성 가정하의 모든 일들이 멈추게 됩니다. 기억과 물성의 유효기간을 넘는 것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가기 전에 읽던 책들을 싹 마무리 짓고, 잉크 조금 남은 만년필들 다 써서 청소해두고 정리했습니다. 루틴 기록하는 앱의 항목까지 다 정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메일 정리.

하루 100통 정도 받는데 대부분이 뉴스레터 같은 정보성입니다. 매일 대충 훑고 지우는게 일상이었습니다. PC에선 그게 일도 아니지만 순례길에서 눈도 안가 그냥 수십통씩 지울게 뻔합니다. 뉴스레터 해지를 2주간 했습니다. 3년간 한번도 안 본 것, 십수년전 프로젝트 하면서 신청해둔 것까지 쓸모가 닿지 않는걸 언젠가, 혹시나라는 미명하에 꽁꽁 움켜쥐고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진작 이 쾌적함을 맛보지 못한건, 관성과 미련이겠죠.


마지막으로 캘린더의 반복 일정 정리.

매일 눈뜨면 독서하고 운동하고, 수면점수와 몸무게를 기록해 넣고, 하루 일정 정하는걸로 시작해, 주별, 월별, 분기별 수많은 루틴이 있습니다. 이중 일별, 주별 루틴은 긴 순례에선 소용이 없어 캘린더에서 싹 지웠습니다.  


가장 두려운 마음이 드는건 독서입니다. 무게를 줄일 겸, 전자책조차 안가져갑니다. 심심할 땐 폰으로 읽겠지만, 제 일별, 주별 루틴의 기준선이 되는 독서를 들어낸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지 상상이 잘 안갑니다.


루틴으로 세운 저, 루틴들을 해제해버리면 리셋이 될 테지요.

겁나지만 또 기대도 됩니다.

비워야 채울게 있고, 새로 들어오는 습관은 분명 근사한 부분도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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