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를 걸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길에서 길을 묻다
까미노 여행기 보면 같이 걷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저도 가기 전에 봤고, 대략 짐작은 했습니다. 보는 사람 자꾸 보다 보면 친해지겠구나.
그건 피상적 생각이었네요.
저희가 걸었던 까미노 프리미티보는 유독 친교와 연대가 강한 길이었어요. 험한 산지라 그렇습니다. 인구밀도가 극도로 낮고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25km내외에서 크게 무리할수 없는 지형이에요. 그래서 전구간 동안 숙박하는 마을과, 점심 먹는 마을이 거의 같습니다. 따라서 몇시에 출발하건 속도가 어떻건 하루만 지나면 길, 카페, 바르, 숙소 근처의 광장이나 음식점에서 다시 보게 됩니다.
유대가 깊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고행과 모험의 까미노를 걷는 사람은 왔다는 자체로 공통점이 많지요. 정신적 토양이 유사하고, 기막힌 사연 하나 씩은 지니고 다니니까요. 예컨대, 주디란 분은 프리미티보 갈림길 중 고원으로 가는 오스피탈레스(Hospitales)를 처음부터 노래했습니다. 매일 오스피탈레스 이야기를 해요.
저녁먹는 자리에서 제가 농담삼아 물었죠.
"주디는 왜 그리 고산길에 집착해요?"
"음.. 작년 12월에 남편이 죽었어요. 그 유해를 조금 가져왔고, 고산길 3개 유적지에 조금씩 놓아두려고 해요."
(헉)
그 외에 가족과 친구들 소원 편지를 지니고 걷는 사람, 아빠와 딸이 다르게 시작해 오비에도에서 만나 함께 걷는다든지, 살날이 많지 않은 모험가 할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는 손자라든지.
반복되는 고행길은 매일 걷다 보면 풍경마저 익숙해지만, 길위의 사람들은 항상 다이나믹합니다. 스토리도 흥미롭고 주고 받는 정서도 시시각각이라 찐 재미입니다. 수다떨고, 웃고, 돕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동조하고.. 중반까진 까미노 친구라고 부르다, 나중엔 까미노 패밀리라고 서로 부르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까미노를 다회차 걷는 분들은 아마도 까미노 친구에 중독된게 아닐까 생각해요. 길이 같아도 사람이 다르면 새로운 모험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