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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r 24. 2024

3월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아이들 만나기

미래의 나를 위한 <즐거운 편지>

로컬 매장에서 장을 보고 꽃을 사 왔다. 화병에 맞추어 길이를 자르고 꽂아두었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거베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꽃집 꽃보다는 얼굴이 작고 덜 싱싱한 건 알았지만 하룻밤만에 너무 했다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길이를 맞춘다고 물 없는 화병에 꽂으며 잘라줬는데 모양만 잡고 그대로 둔 것이다. 아무리 정신없는 3월이라지만 나 정말 너무했네. 얼른 물을 채워 넣었다.


신학기는 학생에게도 혼란스럽지만 교사도 마찬가지. 벌써 반 분위기라고 하는 것이 잡혀서, 수업하고 돌아온 교과선생님들과 그 반만의 특성을 왈가왈부하게 된다. 우리 반은 전교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반이다. 옆반에서 국어 수업을 할 때마다 ‘오~!’하는 감탄사와 박수소리에 방해를 받는다. 아이들이 ‘쌤네 반 너무 시끄러워요 ‘, ’하루 종일 저래요‘ 등 하소연을 늘어놓아 자꾸만 사과를 하게 되는 형국이다. 심지어는 옆에 옆 반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저게 우리 반에서 나는 소리냐‘ 물은 적도 있다.

작년 아이들은 2학기 중반까지 얌전하고 조용한 반이었는데, 올해 너무도 다른 아이들을 만나 어리둥절하다. 별일 아니어도 ‘와아’ 함성을 지르고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고, 책상 위를 두드리는 중2라니. 덕분에 첫 국어 시간, 나에 대한 퀴즈를 낼 때 가장 열띤 질문 세례를 받았다. 우리 반 수업을 하고 오면 기 빨린다는 동료샘의 얘길 들었는데,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을 위한 수첩에 우리 반의 특징에 대해 써내면서 두 명이 기 빨린다, 한 명은 나 같은 조용한 친구를 사귀고 싶다 써냈다. 허허. 그럼에도 이런 활발한 반이라 좋단다.


2월 학급 배정 이후, 작년에 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께서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주신 일이 있다. 듣고 무척 놀라고 말았다. 학교폭력 관련자가 둘이나 있다는 것이다. 둘이나 있기는 흔치 않은데.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에 대해 외우지도 못하고 잊고 지내다가, 이번 주 개인상담을 통해 좀 더 알게 됐다. 작년에 힘들었던 일에 대해 모두에게 묻고 학교생활을 돕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명도 빠짐없이 올해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새로 만난 담임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읽었다. 시작하는 마음의 귀함을 다시금 알았다. 아이들의 과거가 어떻든 지금의 장점에 주목해야겠다. 가장 호응하는 반이라는 점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그래도 수업은 돼.”하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나도 이번 주에 알았다. 진도가 가장 느려서 이제야 교과서 진도를 나갔는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채롭고 적극적으로 반응해 나도 신나게 수업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3월은 서로 알아가느라 힘겹다. 벌써 학교 기물을 하루에 두 건이나 파손한 학생이 있었고, 우리 반이 아니더라도 주먹다짐이 있었다. 이제 겨우 3월의 3주가 지났다. 문득 생각난 시의 문구.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담임의 마음이 아닌가. 늘 우리 반의 무사와 안위를 생각하는 내 마음 같아서 생각났나 보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이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질 때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고 싶다. 가장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아이들이라고, 첫 상담할 때 잘하고 싶은 마음을 뿜뿜 내보이던 아이들이라고. 그러니 이 시와 글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즐거운 편지>인 셈.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일 년간 내가 마음을 썼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새로 만난 아이들과 부대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설렘, 기쁨을 새로 고침 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학년말까지도 아이들은 새로운 모습을 선사할 터. 그들의 변화와 성장에 계속해서 감탄하게 되길.

또 하나, 고개 숙인 거베라가 일어섰으면.


@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에서

@ 제목 사진은 Mendo Mundo 전시장에서, <Library 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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