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아 May 17. 2024

아무튼, 독서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나만의 아무튼.

책 읽기에 빠지게 된 건 사실 십 년도 안 되었다. 한비야 작가처럼 일 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이십 대의 나는 얼마나 바빴는지. 거대한 대학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던 마음보다, 책에 압도된 기분이 더 커서 깨작깨작 책을 읽었을 뿐이다.

첫째가 초1이라 휴직했을 때, 나는 아침마다 허탈했다. 집에서 지내는 게 나랑은 맞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왠지 늘어지고 나 스스로가 무용하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나가려고 일을 만들었다. 단장하고 밖에 나가는 일, 내가 원하는 삶은 그런 거였다.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갈 수 있는 목적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늘 백화점에 다닐 수도 없고, 대전은 서울만큼 즐길 거리가 없었다. 그땐 동네책방도 없었으니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 유일했다. 지출이 없다는 점의 커다란 매력. 나의 바깥을 꾸미기보다 내면을 채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일 년짜리 프랑스 살이의 전과 후, 휴직 기간에도 도서관은 나의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때엔 더더욱 통장잔고가 신경 쓰였는데 걱정 없이 위안을 주는 유일한 것이 바로 책이었다.

파리에서 시작한 인스타그램, 온통 파리 풍경이던 피드는 곧 북스타그램으로 바뀌었다. 자랑할 만한 장소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고 음식 사진 찍기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읽은 책 사진을 예쁘게 찍어 올렸다. 사진과 함께 글도 써야 했기에,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이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덧 그런 책 리뷰 피드 올리기가 일상이 되었다.

2017년과2024년의 인스타그램 화면 @gioiadiary

예전에 알던 아이친구 엄마가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 물었을 때의 뉘앙스는 '대단하다'가 아니었다. '만날 사람이 없어서 책만 읽는 거야?'였을 거다. 사람들과 모이기를 좋아하던 때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일 년 지내다 오니,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정이라는 이름으로 간섭을 하는 듯 느껴지는 관계, 속내와 다르게 웃고 있어야 하는 자리를, 나의 가식을 더 이상 견디기 싫었다. 그러나 책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것도 교양 있고, 내 감정을 뒤흔들기도 하는 파워를 가진 채로.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작가가 내 생각을 대신 표현해 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공감의 순간, 따뜻한 위로와 함께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묘한 해방감을 얻는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에 흠뻑 빠져 다른 세계를 헤매기도 한다. 활자를 통해 펼쳐지는 상상은 위력이 대단해서 책의 페이지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책은 제일 가성비 좋은 여행 상품일 수도 있다. 현실은 교실이어도 나는 먼 과거 혹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살 수도 있는 것.

'이 좋은 걸 왜 몰라?' 하고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권한다. 당장은 게임이나 유튜브 쇼츠 등에 밀려 찬밥 신세일지라도 모르지, ‘언젠가 그대가 한없는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먼지 쌓여가는 책 한 권이 당신을 숨 쉬게 할 수도. 책이 가진 구원의 힘을 나는 여전히 믿을 테다.


*저자 소개: 하루에 한 번 이상 책 읽기. 속한 독서모임 3개 이상. 취미는 책사진 찍기. 동네책방에서 신간 구경하는 것을 즐기며 간간이 도서관에서 읽고 싶던 책을 반갑게 대출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을 책으로 도배하고 읽은 책을 중학생들에게, 혹은 독서모임에 추천한다. 독서 인구가 늘어나 세상이 순해지고, 살만해지기를 바란다.


*중학교 독서동아리 시간에 '나만의 아무튼 쓰기' 수업을 하면서 썼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만들고,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중학생들의 귀여운 어휘력(혹은 맞춤법 파괴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