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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un 15. 2024

책이 사고 싶어서 책을 나누기로 했다

늘어나는 책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 나를 들여다본다, 어쩔 수 없는 책사랑

동네서점에 다닐 때마다 책을 구입한다. 작년에 낸 나의 책을(몇 군데 입고하지도 못했지만) 판매해 주신다는 곳에서는 더더욱. 어디든 갈 때마다 꼭 사고 싶은 책도 있고 새로이 눈에 띄는 책도 있다. 책을 고르고 사는 건 내게 큰 기쁨. 고르고 결제하는 시간은 금방이어도, 책장에 두었다가 꺼내 읽다가 말다가 다시 읽고 끝까지 읽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집에 안 읽은 책이 점점 늘어났다. 서점을 덜 가도 될 텐데 서점 방문은 별일 없는 일상에 별일을 만들어주어서 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겠는가, 대전에 사는 아들 둘을 둔 사십 대 교사에게 긍정적인 별일은 별로 없다. 작가의 북토크가 있으면 그 책을 사고, 북토크 당일의 기쁜 마음에 취해 또 다른 책을 사고. 그렇게 산 책들이 책등 혹은 표지만 보이는 채로 많아져갔다.


안 되겠다, 책 나눔을 해야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주면 어떨까. 오랜만에 책을 나눌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내가 보던 책을 애들이 좋아할까. 비담임이었을 때엔 국어 시간 도우미인 코디님들한테 책을 한 권씩 나누었다. 소설, 시, 에세이, 인문학 서적 등. 선생님 자리에 책 있어, 고르러 와. 그때도 고민하다가 주었지만, 국어 과목에 호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어서 그런가 한껏 기대하는 얼굴로 책을 골라 안고 갔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건 읽다가 좋은 부분의 귀퉁이를 접거나, 연필이나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편이라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재작년엔가 학교 공간에 책 전시를 한 일이 있다. 동네책방 주최로 책방지기가 소장하고 있는 귀하고 독특한 팝업책, 시리즈 시집, 청소년 소설 등을 테마별로 전시해 시간대 별로 반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책방지기의 밑줄과 태그가 가득한 것도 전시되어 있었다. 와, 이런 걸 전시하시네? 손때가 묻어있어서 오히려 더 눈길이 갔다. 어느 부분에 밑줄을 그어두셨는지, 이 페이지엔 왜 태그를 해두셨을까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가 읽었던 책이 주는 매력에 대해 새로이 느꼈다. 어쩌면 내가 읽던 책도 어떤 학생에겐 흥미롭지 않을까?


반 아이들에게 공책 반크기의 '공감 공책'을 나눠주고 일 년 간 쓴다. 일주일에 한 번 조회 시간에 주제를 주고 간단하게 작성해, 점심시간에 걷어 일일이 도장을 찍고 코멘트를 단다. 아이와 나 둘의 대화 공책이다. '오늘 내 기분은 무슨 색? 오늘의 감사 세 가지. 다음 문장을 완성하시오'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이번 주에는 '선생님께 아무 말' 오늘 성의껏 작성하는 두 사람에게는 읽던 책을 한 권씩 주겠다 선언하며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공감 공책 쓰는 시간에, 책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책을 추천하는 활동을 일주일에 한 번 -보통 월요일- 조회 시간에 한다. 발표하기로 한 아이가 펑크 낼 때를 대비해 나도 책을 준비해 간다. 이번에도 역시. 게다가 이번 주 전달 사항이 많고 방송이 송출되는 등 소개하지 못하던 걸 공감공책 쓰는 날 한 번에 했다. )

내가 소개한 책은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읽고, 나눔 할 책을 보여주었다. 외국어 공부에 관심 있을 친구를 위해 준비했다고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를 들어 보였다. 프랑스에 사는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에세이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일기 쓰고 앉아있네, 혜은>이라는 책을 보여주었다. ‘어떤책’ 출판사 책은 이렇게 가름끈이 예쁘게 달려있어서 세트 같지? 10년 일기장을 쓴 윤혜은 작가의 일기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사실 책을 소개하면서도 내 얘길 누가 듣고 있는 걸까 싶었다. 전에도 썼듯이 우리 반은 중학교 2학년 전체 중 가장 활달하고 씩씩하다. 덕분에 사건 사고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예쁜 건, 교사의 말에 대외적으로(!) 호응한다는 점이다. 축구 좋아하는 남학생들이 주도적인데, 내 책 소개를 들으며 억지로라도(이게 표정으로 드러난다는 게 포인트!) 웃으며 끄덕여주고 박수까지 친다. 특히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을 소개할 때 그랬다. 그런데 책을 주겠다는 데에는 별 반응을 안 보이는 거다. 공책 쓰느라 그랬을까. 역시 책을 받는 건 그다지 안 좋은 걸까.

뭐라고 썼을까 기대하며 아이들의 공책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남학생들은 딱 한 줄, 그것도 한 줄에 여백을 많이 남긴 채로 인사나 자기 기분 등을 썼고(그렇게나 받기 싫었을까?), 여학생들은 이러쿵저러쿵 다채로운 글을 보여주었다. 네 명의 후보 가운데 누굴 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책을 받고 싶다고 쓴 학생이 딱 둘이어서 결정했다. 한 아이는 꽤 긴 제목의 일기 책 제목을 정확히 호명하며 자기가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썼더라. 잘 듣고 있었다는 점에서 참 기특했다. 정성을 보여준 다른 아이 둘은 분명히 책 받고 싶어서 썼을 텐데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최근에 읽은 책들에 대해 남겨 주어 다음 책 나눔의 주인공으로 정했다. 책 나눔에 이렇게 선뜻 좋다고 표현해 준 마음이 고맙고 예뻐서, 주는 내가 더 기뻤다.


어제 독서동아리 시간, 재작년의 그 책 전시로 인연을 맺은 동네 책방지기님께 강연을 부탁드렸는데 책에 관한 훌륭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다. <모리스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날아다니는 책>으로 내용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덕분에 책 나눔에 대해 더 적극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을 수술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주인공이 죽은 책을 살리려고 책 수선을 하다가 텍스트가 숨을 쉬는지 살폈다. 그러다가 그 글 사이로 쑥 빨려 들어가 책을 읽는다. 그렇지, 책은 누군가에게 읽혀야 살아나는 거지! 책 나눔 또한 가치 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우리 집 좋은 자리에 꽂혀있거나 때로는 표지가 보이도록 세워져 있거나 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건 그저 내 소장욕구가 아닐까. (그럼에도 꼭 내 책장에 있어야만 하는 책들도 분명히 있다. 많다!) 책은 펼쳐서 읽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눈물이 차오르거나 하는 순간들에 반짝인다. 또 하나, 영상에서는 주인공이 흑백의 인물들에게 책을 한 권씩 골라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책을 손에 든 인물들은 그 순간 색깔을 갖게 된다. 그래 맞아, 정성껏 고른 내 책이 책장에 고이 꽂혀있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게 더 낫겠어. 평생 독서가를 키우는 내가 책 읽는 삶을 나눠야지!

덕분에 이번 주말에는 내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몇 권을 고르고 다시 꽂는 일을 반복하며 책을 추려냈다. 아까운 마음에 책을 다시 들여다본다. 특히 도그지어가 된 부분을 한 장 한 장 살폈다. 아, 맞아. 여기 좋았어. 어쩜 이렇게 썼을까. 오늘은 틈틈이 필사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쉬워서 못 보낼 것 같다. 책을 아끼는 내 마음까지 전해지기를 바란다.


어쩔 수 없이 헛헛한 마음에, 책을 없애는 게 아니라 선순환이라고, 책장을 비워야 또 살 수 있다고 나를 달랜다. 이번 주에 나를 떠나간 두 책은 저자의 신간을 눈여겨보고 있다. 윤혜은 작가님의 에세이는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는다. <매일을 쌓는 마음>이라니요! 나 또한 저분처럼 일기인이며, 윤혜은, 천선란, 윤소진 세 분의 팟캐스트 '일기떨기'를 즐겨 듣는다. 공저인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도 읽는 중이고.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책>의 뒷날개에는 다음 시리즈가 소개되어 있다. 곽미성 작가님의 불어책이라니! 프랑스어에 관심 많은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렇게 출간되지도 않은 책까지 기다리다니. 그러다 정신 차린다. 이거 봐, 아직 안 읽은 책들이 이렇게 많아. 서점, 도서관이 아니라 우리 집에! 일단 집에 있는 새책들부터 펼치자, 나여. 당장 다음 독서모임책들이 나를 기다린다. 세 권이나. 이래서 내가 자꾸 새책을 사는 건지도 모른다. 읽어야 할 책들 사이에서 이거 읽고 싶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려고.

@ 김미소,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동양북스 / 곽미성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어떤책 @ 중학생의 귀여운 글 : )
@ 윤혜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 어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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