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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ul 14. 2024

<퍼펙트 데이즈>를 향하여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대한 공명

영화를 보러 가기 전 노래 <Perfect day>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재생했다. 루틴대로 생활하는 공공화장실 청소노동자. 음악을 즐겨 듣고 하루의 마무리는 책 읽기로 하는 삶이라니. 이 잔잔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질투가 났다. 나의 매일도 반복되지만 내 삶이란 우당탕퉁탕 중학생들과 절대로 고요할 수가 없고, 특히 저 노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 질투가 나를 낡은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눈 뜨자마자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집을 나선다. 캔커피 한 잔을 자판기에서 뽑아 들고 차에 올라타 오늘의 음악 테이프를 고른다.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에 접어들면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그가 하는 일은 공원 화장실 여러 곳을 진심을 담아 청소하는 일. 필요한 청소도구도 직접 만들고, 이용자가 있으면 밖으로 나와 기다린다. 동료는 묻는다. 어차피 더러워질 건데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느냐고. 대꾸 없이 깨끗하게 변기를 닦는 히라야마를 보면서, 이 영화를 보러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초반이었지만, 딱 나를 위한 장면 같았는데 이런 얘길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던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

금요일에는 어쩌다 우리 반 아이들 각자의 공감공책에 편지를 쓰게 되었다. 시작은 우리 반 금쪽이. 이래저래 상담을 자주 오래 하고 반성의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에는 아이가 좀 달라질 것 같다는 기대에 마음에서 우러난 손편지였다. 그 아이에게 한쪽을 꽉 채운 글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방학식날 반 아이들에게 다 이런 편지를 써주면 좋겠다 생각해 쉬는 시간 틈틈이 썼다. 그렇게 긴 글은 아니어도 손글씨는 피로를 불러와 쓰다가 손목을 돌리고 쓰다가 손을 털곤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시간에, 아이는 또다시 수업 중 불미스러운 언행을 해서 또 같은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다는 거다. 같은 시간만 아니었어도 덜 실망했을 것 같다. 아이를 떠올리며, 듬직하게 성장할 미래를 상상하며 애정을 가지고 써나간 편지였다. 그런데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은 행동이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배신감이 들었고 다시 아이와 상담하면서 아이가 늘 하는 말인 ‘억울하다’는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중학생은 이런 시기지, 자꾸만 원래대로 돌아가고. 그래, 고작 한 뼘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무수히 많은 수고가 드는 거겠지. 아직 어리니까 같은 실수도 하는 거지 싶으면서도 허탈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히라야마가 말없이 곧 지저분해질 변기를 깨끗이 닦는 걸 보고, 학생에게 지도를 해도 제자리걸음이고 또 같은 훈육을 해야 하는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위안.


영화의 마지막 장면, 출근길 차 안에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른다.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고 미소 짓는 예의 그 웃는 얼굴은, 음악이 흐르면서 점점 눈가에 맺힌 눈물과 함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남몰래 우는 일이 생긴다는 걸까. 참아보려 해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고 싶다가도 얼른 자신을 수습하는 일은 왠지 나에게도 익숙하다. 웃고 우는 히라야마를 거울삼아 내 얼굴도 일그러지며 눈물이 맺혔다. 인생은 원래 이렇게 쓴 거야, 그래도 잘하고 있어,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되는 거야 등등 내 속에서 다양한 문장이 나를 다독이는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런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극장 문을 나서면서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살피면서, 하고 조금은 더 씩씩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삶은 언제나 나를 배신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어떤 순간들 덕분일까. 히라야마는 늘 같은 공원 같은 자리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무를 올려다본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싱긋 웃고 필름카메라로 찍는 사진 한 장. 주말마다 현상한 사진들을 엄선해 어떤 건 버리고 어떤 건 틴케이스에 보관한다. 매달 한 상자씩 쌓이는 그의 나날들. 그의 방에는 주말마다 헌책방에서 하나씩 고른 책들이 한가득 꽂혀있고, 그동안 모아 온 카세트테이프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 물건들에 깃든 시간과 정성을 헤아리며 나는 어떤 하루들을 남기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의 음악은 무엇으로 선곡할까. 잠자리에 들기 전엔 어떤 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할까. 히라야마의 흑백꿈처럼, 오늘 하루는 어떤 꿈으로 내 안에 남을까. 고약한 하루 가운데에서도 내가 적극적으로 건져낸 달달함을 손에 꼭 쥐어보련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오니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뽀득뽀득 닦고 햇볕에 말려 정갈하게 개켜두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오늘 밤에도 일기를 써야겠다.

@ 빔 벤더스 감독, <퍼펙트 데이즈>, 대전아트시네마에선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의 영화티켓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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