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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un 15. 2022

자전거 도둑

       

 저녁 무렵. 아파트 정문을 들어서는데 꼬마들이 자전거 묘기에 정신이 없다. 조심스럽게 서행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니 초등학교 4~5학년은 되어 보인다. 뒷바퀴로 힘차게 타는 아이, 엉덩이를 든 채 방지턱을 높이 뛰어 넘는 아이, 앞바퀴로 점프를 하는 아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차를 세우고 구경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30여 년 전 일이다. 일요일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늦은 시간이었다. 아직 상가 형성이 채 안 된 신도시라 두 아이 운동화를 준비하러 구도시로 가는 중이다. 그때 작은아이가 아빠에게 차 좀 세워 달라고 말한다. 아이의 간절한 눈빛과 절박함이 얼굴과 온몸으로 쏟아졌다. 지나친 자전거가 아무래도 자기 자전거 같다고 한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주차를 끝내자 그때 서야 아이는 튕겨 나가듯이 문을 열고 한참 지난 저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끌려온 송아지처럼 해물탕집 앞에 메어있는 자전거에 아이는 흡착되다시피 했다. 딸아이도 덩달아 긴박한 걸음으로 뒤를 쫓았다.      


 슈퍼에 간 아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다. 비명에 가깝게 자지러지는 두 아이 소리가 자전거 쪽에서 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터진 듯했다. 그때까지 제 자리에 있던 나는 시끄럽기도 하고 궁금한 마음에 빠르게 갔더니 세상에, 정말 아이들 자전거가 아닌가. 아이들 흥분만큼 흥분해 남편을 아이들처럼 불렀다.     

 

 곧 남편도 뛰어 왔고 식당 주인 여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자전거가 네 것이냐고 확인한다. 주머니 안에 10원짜리 세 개, 조그만 나사못도 있고 장식이 떨어져 나간 것 하며, 두 아이는 흥분했다. 그 못지않게 나도 구매한 지 이틀 만에 바퀴에 흠집을 내어 혼을 냈던 것을 기억하며 결정적으로 아이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바빴다. 남편까지 상가 자전거 점포명을 확인하고 놀란다. 아직 건설 중인 신도시라 유명 자전거 대리점은 몇 되지 않았다.     


 연락을 받고 온 아들은 고등학생으로 보였는데 엄마의 다그침에 대꾸할 겨를도 없이 며칠 전에 친구에게 샀다며 난처한 얼굴이다. 이러는 사이에도 오누이는 무엇도 안중에 없이 돌아온 짝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반가워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안장도 툭툭 쳐 보고 바퀴를 손으로 닦아도 보더니 망가진 기아 줄에 울먹이기까지 했다. 앉아서 만져봤다가 서서 만져보고 뒤로, 앞으로 돌아가서 들여다보고.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아이들한테 자전거가 있었다. 어린이날 아빠로부터 선물 받은 자전거였다. 두 녀석이 배우며 타기 시작한 것이라 이젠 낡을 대로 낡았고 바퀴도 작아 세월만큼 커버린 아이들 덩치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끔 새 자전거 이야기를 넌지시 떠보기는 했어도 냉큼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 관대한 남편은 사주기를 강요했지만 좀 더 미루고 있었다.     


 하루는 큰아이가 기아 있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따로 다닌다며 입을 삐죽였다. 사실 자전거에도 기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그러던 중에 친정어머니가 오셨는데 사정을 아신 외할머니는 아이들을 고생시킨다며 덜컥 큰돈을 놓고 가셨다. 우리 형제를 키우실 때는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것을 자식들에게 사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분이었다.     


 그렇게 하여 아이들은 기아 18단, 가장 큰 원둘레 바퀴가 달린 은빛 자전거를 가지게 되었다. 두 녀석의 자전거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휴일이면 서로의 방에 자명종을 이른 시간으로 돌려놓고 옷까지 감춰가며, 때로는 옷을 입은 채 잠이 들곤 할 정도였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와 골목길이 아닌 아파트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도, 바라 보는 나도 행복했다. 아파트 단지 내를 돌다 우리 동을 돌 때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엄마를 크게 부른다. 내려다보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손잡이에서 팔을 떼고 양팔을 낀 채 고개까지 바퀴를 좇아 갸웃거리는 둥 재주까지 부려가며 요리조리 타는 모습이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파도를 타듯 가물가물 행복해하며 내다보곤 했다. 낮이고 밤이고 가로등이 켜지면 켜지는 대로 가랑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 모습은 나에게 기이한 자유로움을 주기 충분했다.      


 그러니 새 자전거였음에는 말해 무엇하겠나. 은근히 거만함까지 보이며 타기를 마치고 나면 대어 놓는 자전거 걸이를 마다하고 반드시 8층까지 가지고 올라와 걸레로 닦고 고리를 걸면서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달을 그리 보내고 추석 연휴를 막 마친 다음 날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녀석이 자전거를 누구에게 빌려줬냐며 자전거 안부를 묻는다. 30분 전까지 난간 옆에 있었다!     


  녀석은 가방을 팽개치듯 던져놓고 그길로 나가선 9시가 다 된 시간에 들어왔다. 얼굴은 눈물과 땀에 얼룩으로 범벅이 되어 손가락은 어쩌다 베었는지 아주 멀리까지 찾아 헤매다 돌아 온 모양이었다.    

  

 그날 밤 아이는 밤새 자전거 꿈을 꾸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내게 말했다. 얼마 전에 함께 본 ‘자전거 도둑’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나 보다. 주인공처럼 자전거를 훔치고 싶다는 나쁜 생각을 하면서 주인공을 이해하게 됐다는 말이다.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 공황기가 배경인 영화였다. 빈곤한 시대 가난한 30대 가장이 주인공이었는데 어렵게 마련한 전 재산 자전거를 잠깐의 방심으로 잃는다. 자전거를 찾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어린 아들과 함께 끊임없이 계속되나 늘 실패였고 초조한 나머지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자전거 도둑을 시도하다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붙들리고 만다. 아이가 그 생각을 했었나 보다. 그날 이후 아무래도 사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중이었다.      


 흥분한 남편을 밀치고 내일쯤 자전거를 가져가기로 했다. 가출 후 10일 만의 귀가다. 그렇게 자전거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는데 지금도 신기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것도 불을 밝힐 만큼 주위가 어두웠는데 어린 녀석이 어떻게 제 것을 알아보았을까. 몇 번을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애끓는 어린 녀석의 초인적인 직감이었을까.     

 돌아오는 길, 아들은 세상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그동안 어린 것이 혼자 겪었을 아픔을 생각하니 늦게 서야 미안함에 그지없다. 자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니 달콤한 기분에 눈물이 난다.     

  

 엉덩이를 치켜들고 자전거와 한 몸이 된 저 아이들이 아이들은 아닌지, 가슴을 뛰게 한다. 고마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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