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칠월이 중순으로 가고 있다. 이미 장마권에 들었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기상정보가 무색할 정도로 비가 귀하다. 그런 데다 내가 사는 이곳은 본래 비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곳이다. 다른 지역은 폭우도 내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기는 한 가보다.
아침나절에는 종일 올 것마냥 추슬 대며 내리기는 했다. 그나마 떠날 때가 되니 가슴만 적셔놓고 가버리고 만다. 넓은 창가에 매달려 한없이 오지 않을 님,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것도 사랑이라고 저를 사랑하는지 아는 모양이다.
사랑이란 놈은 기가 막히게 안다. 내가 저를 바라고 있는지, 거부하고 있는지를. 또한 내가 원할 때는 그가 가버리고, 그가 원할 때는 내가 가버리고 마는 것이 사랑이지 않던가.
몇 해 전부터 내내 무엇인가를 떠나보내야 했다. 긴 세월 가슴에 함께 살았던 이들을 마음에서 보내야 했고 분신처럼 곁에서 나를 이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던 이들도 멀리 갔다.
이곳을 떠나 쉽게 손 닿을 수 없는 데로 간다고 한들 네 곁이 아니겠느냐고 떠나보낼 나를 위로해 주는 가까운 이도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수주 전에 한의원을 다녀왔다. 소화도 안 되고 어지럼증도 있고 무엇보다 무릎 관절이 부실한 것 같아 침을 맞아 보라고 해서다. 그런데 의사는 맥부터 짚어 보더니 무릎보다는 우울증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정수리부터 명치에서 발목까지 침을 놓더니 약을 지어 주었다. 그럴 때까지 자각증세를 모르고 있었다.
일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우울증이 염려된다는 소견과 자주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났다. 드라마를 보다 눈물이 났고 이따금 방송을 듣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도 울었고 설거지를 하다, 사거리를 도는데 눈물이 나고야 말았다.
나잇값을 못하는 데다 근래에 들어 더욱 혼자 있을 기회만 찾았던 것이 아마 그 때문이었나 보다. 감춰져 있어 몰랐던 것을 의사가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느끼는 통증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상실감이 아닐까 단정해본다. 흔히 아픔을 이야기할 때 잃었다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사랑을 잃었고 목숨을 잃었고 희망을 잃었다고. 모든 슬픔과 아픔의 감각은 상실에서 온다는 것을, 그래서 겪어본 바로 나는 믿고 있다.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데서 오는 허탈과 공허는 삶을 무기력하게 한다. 영원히 내 손에 있을 것 같았던 것이 소리도 없이 빠져나가고 말았을 때의 기막힘은 무엇으로든 표현하기 어렵다.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것에서 오히려 소외감과 내가 버려진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까지 몰고 온다.
편집증이라 할 만큼 하나에 빠지면 오랫동안 바꿀 생각조차 못 한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각자의 기호(記號)로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단지 좋아서다. 쉽게 싫증을 느끼는 성향도 아닌 데다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탓도 있으며 어느새 그들과 깊은 정에 빠져 있는 까닭이다.
그러다 물론 어느 시간이 되면 그들이 떠나든 내가 떠나든 할 때가 온다. 아주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싫증으로 내가 떠날 때도 있고 그가 떠났는지 내가 떠났는지 예전 같지 않은 것에 서운해서 발길을 끊을 때도 있다.
오랜 사람에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느끼게 되면 알아서 떠나 줄 때도 간혹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를 떠날 것 같지 않던 정신적 의미가 큰 손 안의 애장품을 잃었을 때 당혹함이란 ‘눈이 뒤집힌다’는 것 외에 부끄럽지만 적절한 수사가 없다.
이러고 나면 얼마간 슬프다. 의욕도 없고 재미가 없기도 마찬가지다. 단골집 앞을 돌아갈 때도 있고 애써 가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려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잃어버린 것에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정을 주기 위해 애쓴다.
무엇보다 나를 떠난 모든 것들은 나에겐 그저 먹을 수 없는 ‘신포도’였고 더 나은 것과 바꾸기 위한 ‘썩은 사과’였다는 생각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일종의 상실감을 회복하기 위한 자생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는 혼자 있는 시간은 곤란하다며 주의를 주었다. 술은 그렇다고 쳐도 커피도 당분간 금물이다.
결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그 못지않게 좋다. 적막하여 쓸쓸하기도 하나 더 할 수 없는 안정과 휴식을 주니 오히려 바라는 바가 크다. 울고 난 후 찾아오는 서러운 평화 같은 이 시간을 버릴 마음이 없는 이유이다.
이제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잃으면서 살아야 할 시간만 남았는지 모른다. 그동안 자신만만하던 것들이 모래따먹기처럼 조금씩 떠나게 될 것이고 그보다 더한 상실감에 쓸쓸해야 할 일만 남아 있다는 반증이다.
서서히 사랑에 대한 개념(槪念)을 새로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