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여행자의 시선에서 보았던, 남들이 일하는 풍경
여행 계정으로 열었던, 브런치인데....
두 달에 한 번은 비행기에 몸 실었던 10년인데,
반년 가까이 #집콕 #stayhome 중이다.
작년 가을,
미국 시애틀 인근의 십년지기 집에서 스테이 하며, 재택근무자로 일하는 워킹맘 친구의
라이프를 마주했다.
데이타임에 여행을 하면서 시애틀 도심 카페에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의 외주 일을 하고 있는 듯한 프리랜서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도 이런 업무 환경이 곧 열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covid-19가 급격하게 우리의 업무환경의 변화를
가속화시킨 요즘, 내 삶에서 일과 삶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의사결정의 이슈(이 프로젝트할까? 말까?)와 대면 보고로 업의 본질이 좌우되는 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 당장 재택근무에 들어가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결과물과 기한 준수 체계를 갖춰나간다면, 모든 업무를 만나서 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재택근무 2년 차에 접어든 십년지기 친구의 삶은 비교적 안정세를 갖춰가고 있었다.
“첫 해는 너무 힘들었다.” 고 표현했지만.
오후 4시~새벽 1시까지 진행되는 업무라서,
하루 종일 두 아이와 가족의 삶을 매니징하고,
나만의 업무는 오후부터 가열차게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번째 해부터는 포지션 변경과 함께,
해당 업무에 대한 트레이닝을 진행하고 있었다.
“2주 동안 메인 트레이너에게 인수인계와
교육을 받고 있는데, 정말 빡빡해.”
일주일 가량 관찰한 친구의 삶은 아래와 같다.
- 오전 8:00~11:30 : 오전 근무
: 두 딸의 아침식사와 등교는 사업하는 남편에게
(ft. 애들 머리 묶어주기, 여자 아이들과
공감 토크 등 아빠에겐 난위도 ‘상’ 육아 업무)
- 오전 11:30~오후 12:30 : 점심
: 부엌으로 내려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빨래+청소+집안일을 함
- 오후 12:30~오후 4:30 : 오후 근무
: 커피 타임조차 없이 바쁨
오후 3시 아빠가 ride 해서 둘째 아이 도착,
큰 아이는 스쿨버스로 4시 귀가
- 오후 7:00 : 모두 모여 저녁식사
: 다시 엄마와 아내의 Role 복귀
일주일에 1번 정도 외식
친구와 집에서 일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니 아래 정도로 정리가 됐다.
단점은?
업무는 대단히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지만,
존재감 등 기여도 평가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
지속 가능하고 큰 관점에서 다른 일 혹은 커리어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은 든다.
장점은?
아이들이 커 가는 걸 지켜볼 수 있다. 출퇴근에 대한 압박이 없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회의’ ‘미팅’ 또는 ‘프리토킹’ 중에 집단 지성을 경험하는 일이 잦은 편이다.
1차 thinking, 2차 함께 thinking together, 3차 정도에는 결론에 도달하는 업을 선호하는 편이고,
‘여러 사람의 에너지 속에서 나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기’를 업무적인 습관으로 가지고 있다.
오전 타임에 답을 찾지 못한 프로젝트를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아, 그래. 그거야!’로 공감 토킹을 하게 되는 일도
잦다. 생각을 관리하는 패턴도 그러하다.
따로 또 같이 일하면서
함께 ‘희’와 ‘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뭣보다 난 혼밥이 싫다. 누군가는 음식의 맛과 질에 집중하고 나만의 시간이라 좋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개취(개인의 취향)는
2명 이상 4명 정도 함께 먹는 점심, 저녁이 좋다.
언택트 라이프로 소셜 다이닝처럼
밥 먹는 분할화면도 재밌는 경험이긴 하나....
뭔가 아쉽다.
나랑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습,
한 공간에 같은 걸 보고 맡고 경험해도 다 다르게 느끼게 되는 그런 감성 공유의 시간이
개인적으론 좀 더 좋다.
커피가 유명하기도 하고, 인근의 브류어리에서 만드는 맥주의 맛도 훌륭한 시애틀에서
나는 카페와 브류어리 투어로 시간을 보냈다.
카페마다 커피의 풍미가 다양한 것이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었고,
카페마다 오는 사람들의 ‘시간 쓰기’ 방법이 다양한 건 더 큰 즐거움이었다.
조금은 새로운 레시피의 커피를 파는 상업 지구의
1층 카페였는데,
이곳엔 소상공인들의 모임처럼 자영업을 하는 듯한 아웃핏의 손님들이
“나는 무슨 일을 하는데, 우리 함께 해 보지 않을래?” 류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리스타들의 모습도 자유로웠다.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손님들과 교류했다.
“새로 나온 원두인데, 한 잔 더 마셔볼래?” 정도의 권유 정도다.
토요일 이른 오후였고,
1일 3 카페 중이었다.
카페력 강력한 시애틀에서, 들린 두 번째 카페는
‘햇살 자리’가 명당이었다.
커피 바에 앉았다가, 햇빛이 드는 창가로 커피 잔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그랬더니 맞은편 자리에 “여기 앉아도 되겠느냐” 는 정중한 멘션이 들려온다.
늘 흐린 날이 대부분인 시애틀에서 ‘햇살 한 줌’은 큰 위안이다.
그렇게 시작된 일상적인 대화.
반대 편에 앉은 이와 무얼 하고, 여긴 왜 와 있고, 어떤 커피 좋아하느냐 류의 대화를 이어갔다.
카페 속 사람들은 햇살을 즐기거나,
노트북으로 무언가 끄적이거나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릴랙스 타임’을 즐겼다.
일 하는 사람들의 주말은 어딘들 소중하지 않을까.
카페의 원래 기능은 ‘잠깐 쉬어감’이었지 싶은데,
카페의 모든 시간이 여유롭진 않다.
그다음 주 월요일 오전,
구글 사옥 근처에서 들린 카페의 모두는
노트북과 사투 중이었다.
밥 짓는 시간에 비유해 보자면
누군가에게는 고두밥이 좋을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진밥이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도 그런 상대적인 개념이 아닐까.
스무 살 무렵에 ‘뭘 할까’를 고민하며
수업 땡땡이 시간에 학교 잔디밭에 누워서
‘삶과 꿈’ 이런 걸 생각해 보곤 했다.
세상의 생김을 받아들이게 된 시기였던 것 같다.
15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속칭 일을 제법 잘하는 과라서,
일이 주어지면
바로 그려내고, 바로 만들고,
사람들이 ‘어 이거 좋네’ 할만한 걸 해 온 것 같다.
정답은 없겠지만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게 된다.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연봉인지, 경험이나 지식 기준인지에 대한 의구심까지.
지루할 정도로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는 시간이
에너지의 원천인 나는,
다시 여행을 가고 싶지만,
현실은 ‘참으라’고 권고 중이다.
오늘은 연차, 소중한 평일 휴가다.
지나간 시간 정리차, 한토막의 일기를 적어 낸 오후.
이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시간이다.
3년 전 이탈리아 여행길에 사 온 모카포트에 커피 김을 퐁퐁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