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Mar 03. 2019

롤모델이 없는 길을 간다는 것

그리고 1인 1직업의 시대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말미에는 호텔 여행기 대신 '나의 롤모델 이야기'라는 글을 실었다. 세계 3천 여 호텔을 취재한 호텔 저널리스트, 테라다 나오코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든 그녀는 평생 쌓은 전문 영역을 기반으로, 여전히 일본의 여행업계에서 활발히 현역 활동하고 있다. 처음 책을 쓸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꼭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

 

다양한 직업적 롤모델의 부재

굳이 외국인을 사례로 든 것은 아직까지 한국의 호텔/여행 콘텐츠 직종이 다양하지 않기도 하지만,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참고할 중장년 여성 롤모델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성들의 다양한 직업적 롤모델과 이후의 행보를 접하기 어려운 이유는, 결국 현실적인 직업적 단절(결혼과 육아)에 의한 커리어 사례 부족이 가장 크다고 본다. 반면 30대와 40대라는 황금 같은 시기에 직업적 전문성을 꾸준히 쌓아온 일본의 여성 전문가들은, 인생 후반기에 놀라울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는 그들의 환경과 직업의식이 부러웠다. 더 늦기 전에 나만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4년 스타우드 행사에 참석한 테라다 나오코(중간). 세키네 교코(오른쪽)도 20년 이상 호텔만 취재한 베테랑 여행기자다. 


사실 나의 메인 잡이라 할 수 있는 기업 강의 업계만 보아도, 여성 강사가 강세를 보이는 교육 분야는 아직까지 한정적이다. 내가 기업 강의 시장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여행 분야 역시 남성 전문가의 강의를 당연시해 왔다. 그러다 아웃도어나 산행 등 국내여행 콘텐츠가 인기를 서서히 잃고, 여가학이나 전문 주제 강의가 밀려나면서 콘텐츠의 선호도가 바뀐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모델을 이 바닥에서 단 한 명도 찾지 못한 채로 일을 시작했다. 물론 5년이 지난 지금은, 마흔이 되기 전에 온전한 나만의 직업(+여유)을 갖게 된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여행 쪽 커리어로 좁혀보면, 내가 지향하는 직업적 롤모델을 찾기란 더욱 불가능에 가까웠다. 직업적인 측면에서 내가 바라는 이상향은, 특정 기업에 소속되는 것보다 업계의 어떤 기업과도 일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직업인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두 저널리스트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특정 분야를 20~30년 동안 취재해온 여성 전문가를 국내에서는 찾지 못했다. 이들을 전문가로 칭한 것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책으로 내는 여행작가와는 하는 일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여행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그중 스스로가 어떤 분야에 기여할지를 명확히 포지셔닝한 상태에서 전문 리포팅을 한다. 내가 이 업계에서 하고 싶은 일도 정확히 그 지점이지만, 국내에서는 선례가 전무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존에 존재하는 직업군이 아닌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첫 번째 사례가 되는 것뿐이었다.




2019년 1월, 베트남 하롱베이 출장 중. 호텔 저널리스트 자격으로 초청된 행사다.


호텔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고요?

책 출간을 전후로 호텔업계 기고와 강의를 활발히 하다 보니, 호텔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자연스레 얻게 됐다. 그래서인지 내 책을 읽고 '아, 이런 직업이 있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을 얻었다며 개인적으로 문의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특히 '호텔 칼럼니스트가 롤모델이에요. 그런 일 하려면 뭐부터 해야 돼요?'라는 독자들의 간절한 질문을 받을 때면, 참으로 안타깝고 난감하다. 내가 롤모델을 찾아 헤매던 10~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서다. 


일단 답을 하자면, 호텔 칼럼니스트는 직업보다는 타이틀이자 정체성에 가깝다. 직업은 '먹고살만한' 수익을 창출하는 일을 의미한다. 나의 대부분의 매출은 호텔이 아닌 일반 기업의 교육에서 나오니, 한국식 기준으로는 '강사'가 직업인 셈이다. 동시에 메인 강의 외 시간에는 호텔 관련 기고와 강의를 하고 있으니 호텔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도 생긴 것이다. 해외여행 업계가 태동한 2006년 즈음 이 일을 시작해서 서서히 호텔로 분야를 좁히고, 전 세계의 호텔 120곳을 다니고 책을 완성하기까지 총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호텔 칼럼니스트는 직업이라기보다는 나의 '직업적 정체성'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직업은 이렇게 여러 가지가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로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의 멀티-직업은 말 그대로 서로 관련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서 수익을 늘리는 '투잡'을 의미했다. 반면 앞으로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2~3가지 직업이 함께 전문 영역을 구축하며 돌아가는, 새로운 업의 구조가 보편화될 것이다. 강사이면서 저술가, 유튜버 등 서로 관련 있는 일을 동시에 하는 지식 생산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이들은 새로운 직업을 스스로 만들고, 의미 있는 수익을 지속 가능하게 창출한다. 이를 위해서는 20~40대에 해당 업계에서 넓고 다양한 경험과 업력, 네트워크를 꾸준히 쌓아 두어야만 한다. 


이제부터는 직업적 롤모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 된다. 과거의 많은 직업이 미래에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지금 하는 일을 조금씩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직업을 계속해서 만들고, 각각의 직업 포트폴리오가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구조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들이 뭘 하는지보다는 '나다운' 일을 찾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얼마전 MBC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피디님이 내 선곡표를 보고 '왜 음악 관련 일을 하지 않으시냐'며, 무려 십 몇년 전에나 하던 음악 칼럼 일을 다시 시작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예전에는 음악과 여행 분야는 서로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두 산업은 여러가지로 재미나게 엮여있다는 것도 최근에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남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가장 먼저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미래의 '직업'이고 1인 1직업 시대도 그리 멀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기록해 둔다는 게, 또 이렇게 길어졌다.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이전 14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