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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Jul 13. 2019

호텔리어는 여행 가이드가 될 수 있을까?

호시노 리조트 취재, 그 뒷 이야기

콘텐츠에서 시작되는, 호텔의 고객 경험

여행업계에서 ‘경험(Experience)’이 큰 화두가 되면서, 호텔업계 역시 투숙객의 여행 경험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와 자구책을 내어놓고 있다. 호텔이 시설이나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식 경험이나 요가 클래스 등 다양한 상품을 부가적으로 내어놓아 여행자를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국내 특급 호텔의 이벤트나 프로모션은 브랜드의 철학이나 정체성과는 별다른 상관관계도 없이, 의례히 구색을 맞추기 위한 형식적인 상품이 많다. 호텔업계에서 주목해야 하는 여행경험은, 결국 자체 콘텐츠를 새롭게 발굴하는 지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일찌감치 깨닫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여행 콘텐츠 개발에 힘을 기울여 온 호텔이 있다. 바로 일본의 호시노 리조트다.


호시노 리조트가 도쿄 도심에서 떨어진 오츠카 역에 호텔을 열었다는 소식은, 매거진 B의 <호시노야> 편에 소개된 호시노 요시하루 사장의 인터뷰에서 접했다. "기존 도심 호텔은 비즈니스 고객과 여행객, 양쪽을 모두 타깃으로 보기에 콘셉트가 애매해집니다. (중략) OMO는 이 부분을 반대로 노린 브랜드에요. 비즈니스 고객을 배제하고, 오롯이 여행을 목적으로 '시티 투어리즘' 콘텐츠를 만든 것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이 호텔을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과거에 유명한 관광명소였다고 해서 지금의 여행자에게 꼭 목적지가 되리라는 법이 없다. 밀레니얼 세대는 여행을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접 맛보고 마셔보기 위해 떠난다. 호텔이 과연 차별화된 여행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지역관광 플랫폼으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지, 직접 살펴보고 싶었다.





지난 5월, 도쿄의 오모5 오츠카 호텔로 향했다. 로비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복도에 붙어 있는 거대한 지도다. 오츠카 역 주변의 맛집과 가볼 곳, 바와 펍 등을 빼곡하게 표시해 놓았다. 매일 오후, 호텔리어가 여행 가이드로 변신해서 여기 나온 곳을 테마 별로 안내해주는 오모레인저 투어는 이 호텔의 자랑이다. 호텔리어들이 직접 오츠카 일대를 탐방해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워킹투어/미식투어/나이트투어 등의 테마 투어로 만들어서 매일 운영한다. 


이러한 호텔리어의 '겸업'은 호시노의 경영 방식인 멀티태스킹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군의 구분을 느슨하게 하고 모든 임직원의 호텔 커리어는 서비스 직부터 시작한다. 호텔의 모든 직군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호텔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고 한다. 오늘도 방금까지 마케팅 담당자로 자신을 소개했던 직원은, 오모레인저 티셔츠로 갈아입은 후 여행 가이드가 되어 나를 호텔 밖으로 안내했다.


여기까지는 호텔 아비아 칼럼으로 연재한 내 기사 중, 오모5 도쿄 오츠카 관련 대목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호시노야 도쿄를 포함한 전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호텔 아비아 기사 바로 가기




바 투어에서 차례로 들른, 동네 수제맥주 집과 사케 바.


호텔리어는 여행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칼럼 연재의 의도와 맞지 않아 지면에서는 생략한, 개인적인 소회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참가한 투어는 레드 투어(바 투어)로, 참가비 1000엔의 유료 투어다. 오모레인저로 변신한 호텔 직원과 동행하여 총 두 곳의 바를 들렀는데, 첫 번째 가게는 직접 맥주를 만드는 펍이다. 푸드 투어의 음식 비용은 각자 주문한 만큼 부담하는 방식으로, 나는 크래프트 맥주 한 잔과 작은 사이즈의 샐러드 & 계란밥을 주문했다. 도쿄에 아는 사람이 없는 내게, 술 동무가 생긴다는 건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다. 앞서 1시간 동안 워킹 투어를 하며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기에, 오가는 대화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부터 어렴풋이 느꼈던 것은 그녀는 한국에 대해, 혹은 나에 대해 그다지 궁금한 것이 없어 보였고, 그저 업무의 연장선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내가 말문을 열기 전까지는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이 상황을 멱살 잡고 이끌어야 하는 양상은 더욱 선명해졌다.


심지어 그녀는 케이팝 아이돌의 광팬이고 지금까지 20회가 넘는 한국 여행을 한 데다, 당장 다음 달에도 서울행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특별히 일본과 우리의 문화가 달라서 초면인 외국인에게 예의를 차리느라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호텔리어는 호텔 운영이나 발전을 위해서라도 나와 같은 외국인 여행자나 인플루언서에게 더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6~7년간 전 세계의 수많은 해외 호텔리어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치를 쌓아온 데다 상대적으로 연장자인 내 입장에서, 호텔리어로서의 대화 스킬이 아직 능숙하지 못한 20대의 그녀가 이 투어를 마냥 이끌어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상황은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가야 하는 거고, 무엇보다도 이건 내 여행이니까.


다음은 일본 전역의 사케를 보유하고 있다는 한 사케 바로 향했다. 여행자에게 좋을 법한 사케 3종 테이스팅 세트를 주문해서 골고루 맛을 보기로 했다. 그녀는 이 투어를 자주 가이딩하기 때문인지 사케 바 주인장은 물론, 손님으로 와서 앉아있던 주변 식당 오너들과도 두루 친해 보였다. 하지만 사케에 대한 전문 지식은 당연히 없었고, 그녀 몫으로 사케를 주문하지도 않았기에 사케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도 없었다. 사케를 추천해주고 시음 세트를 구성해준 건 바 주인장이고, 그녀는 일본어로 된 메뉴 설명 일부를 번역해주는 역할만 했다. 투어에 포함되는 가게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냐고 물어보니, 호텔리어들이 퇴근 후나 휴일에 즐겨 찾는 주변 맛집을 선별하여 직접 구성한다고 했다.


이렇게 맥주 1잔과 사케 3잔을 마시는 데 한화 5만 원가량을 냈으니, 투어 참가비까지 6만 원 이상 든 셈이다. 그런데 클룩이나 마이리얼트립에서 판매하는 전문 푸드투어도 비슷한 비용이 들지만, 미식 관련 전문가가 직접 동행하면서 그들만 아는 지식이나 정보를 함께 알려준다. 과연 호텔리어가 직접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식이, 여행자의 시간과 비용에 합당하는 만족감을 주는가? 그러기에는 너무 경쟁자가 많고, 강점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자가 왜 '오쓰카'라는 평범한 동네에 굳이 찾아와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을, 이 투어는 내게 주지 못했다. 크래프트 맥주와 사케 테이스팅은 다른 지역에서도 흔하게 경험할 수 있고, 모바일로 수많은 식당을 직접 예약할 수 있는 지금의 여행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일본 식당을 예약해주는 인공지능 컨시어지 서비스도 나와 있다)


이번 투어는 호텔리어가 여행 가이드까지 잘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줬을 뿐이었다. 이 지역 토박이도 아닌 외지 출신 호텔리어들이 지역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도 그다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데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것도 아니라면 하다 못해 의미있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여행이 대중화된 지금, 콘텐츠의 전문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히 많은 곳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다. 이제는 미식과 액티비티, 건축 등 각 세부 분야의 탁월한 전문성이 콘텐츠와 결합했느냐가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호텔이 여행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분야별 전문 인력과 적극적인 협업을 하거나, 해당 전문성(혹은 덕력!)을 갖춘 호텔리어가 내부에 있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마침 2주 뒤에 모 특급호텔의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갈 예정인데, 수업시간에 한번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호텔이 여행을 '리드'해야 하는 세상이 온다면, 당신은 어떤 여행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말이다.




7월 30일, 내년을 준비하는 트렌드 강연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 신청 페이지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기술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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