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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Jul 08. 2024

선배, 사랑이 뭘까요

말랑한 마음을 슬쩍 꺼내보기

“선배, 사랑이 뭘까요? 대체 사랑이 뭐냐고요.”


후배 A가 실연을 당했다며 주정을 부렸다. 내가 알면 이러고 있겠니, 옆에 있던 기혼자 선배를 쳐다보며 바통을 넘겼다. 그는 “나도 너무 오래 전이라...”라며 말끝을 흐렸다. 후배의 질문은 꼬리가 길어서, 당시에는 대충 넘겼지만 그 후 며칠은 더 마음 속에서 맴돌았다.


사랑이 뭔지 정말 잘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아흔이 넘어서부터인가 전화의 끝맺음을 “사랑한다”로 바꾼 어떤 변화를 보면, 죽기 직전까지도 사랑은 배워야 써먹는 것도 같다. 그런데 진짜 사랑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뭔지 알 것도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도 없지는 않았다. 저마다 사랑이 와서 꽂히는 ‘순간’이 있지만 사랑 그 자체가 무엇인지는 누구도 쉽사리 정의하기 어렵다고 봐야 하나.


다만 더 쉬이 알 수 있고 꼭 알아야 할 삶의 요령은 사랑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일이다.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알아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20대 내내 사랑이 아닌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단호함을 길러왔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사랑을 알아채는 분별력이 조금은 싹트고 있다고 믿는다.


나를 욕망이 있는 개별적 인간보다는 여자로 먼저 보는 시선은 사랑은 아니다.

상대의 안전과 건강을 뒷전에 놓는 그 어떠한 성적 행동들도 사랑이 아니다.

나를 좁은 세상에 머무르게 은근히 유도하는 언행은 사랑이 아니다.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 배우자의 자질을 내게 끼워맞추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자신을 갈망하는 상대에게서 느끼는 만족감과 자아 도취는 사랑이 아니다.

반대로 나의 불안에서 튀어나간 상대에 대한 의심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상대가 떠날까 자꾸만 꾹 누르게 되는 나의 감정들은 모조리 다 사랑이 아니다.

제동 없이 달려오는 마음도 때로는 사랑이 아니다.

나를 헷갈리고 혼란스럽게 하는 감정은 사랑이 아닌 쪽에 가깝다.

이 정도는 참아야 사랑이 아닌가 싶으면 그것이야말로 절대 사랑일 수 없다.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이 교차하는 삶의 많은 지점에서, 나는 그곳을 벗어나는 선택을 해왔다. 그건 일종의 생존 기술이었다. 여성 1인 가구로 오래 살면서 상대가 악하지 않은 사람임을 알더라도 이별의 순간마다 불쑥 불안함이 밀려왔다. 사귀는 동안 좋은 사람이었던 것과 이별의 순간 보장되는 나의 안전은 완전히 별개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들려오는 풍문이 쌔고 넘쳤다. 그런 이유로, 헤어진 인연들은 내겐 사회적 망자가 되었다. 나의 자아에 생채기라도 내는 관계는 칼같이 끊어내는 ‘프로 손절러’가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세상에 등장한 ‘안전 이별’이라는 단어를 보며 나의 방어적 태도를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때로 내가 사랑이 아닌 행동을 하기도 했고, 사랑이 아닌 행동들도 당했던 것 같다. 사랑 아님을 알아채고 재빨리 빠져나올 수만 있어도 삶은, 특히 여성의 삶은 훨씬 안전하고 단순해진다. 감정의 격동에 시달릴 일도 잘 없다. 사랑이라 여겼던 마음을 잃고 오랜 기간 아파하더라도 차라리 그 편이 낫다. 그 연습을 했던 한시절이 나를 사랑으로 조금 더 가까이 데려가주지 않았을까.

 

연약하고 취약하더라도 타인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단단하지 않은 마음을 가졌던 시절이 가끔 그립다. 마음의 경화가 일어나버린 내가 중요한 삶의 과정-장기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기-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삶을 복기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나의 말랑한 마음은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라고 믿으며 그 마음을 가끔 꺼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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