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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닉샘 Nick Sam Feb 05. 2020

공간 인테리어, 차라리 노출 콘크리트가 부럽다

배움의 공간 메이킹노트 #3 공간 인테리어 전에 생각해보기

코러닝스페이스 창업을 위해 퇴사를 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공간을 얻은지도 한 달이다. 몇몇 지인들은 공간을 언제 오픈할지 물으신다.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시기는 있지만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아직 텅 빈 공간을 무언가로 채우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 창업자로서도 공간 지기로서도. 공간기획이나 건축을 배워본 적 없이 처음으로 혼자 준비하는 공간이다. 공간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두근거림도 있지만, 하얀 도화지 앞에 무엇을 그릴 지부터 떠올려야 하는 막막함도 있다.


처음에는 가는 곳마다 인테리어만 눈에 들어왔다. 퇴사를 하며 몸이 자유로워지며 조금 더 열심히 여기저기를 가보고 있다. 카페나 식당, 문화공간,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다니며 예쁜 테이블이나 의자, 가구들을 보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요즘은 오래된 빈 공간의 특징을 살린 힙한 공간들이 많다. 그런데 유독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리거나 간단히 에폭시 코팅을 한 회색빛 공간에 검은색 철재 프레임에 주황색 조명을 매달아 놓은 컨셉의 '카페'가 참 많다. 어쩐지 노출 콘크리트 스타일이 아닌 특색 있는 카페를 찾는 게 더 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의 공간이 조금 흔해지긴 했어도 아직은 '색다른 느낌'을 살리기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특히 비용이 저렴해질 것 같다.

요즘 카페들은 노출 콘크리트가 대세인가 (서울 송파구 / 성동구 소재 카페들)


하지만 내가 얻은 공간의 장점이자 단점은 이미 전창과 벽면이 아주 깨끗하고 하얗게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어 있다는 점. 바닥만 콘크리트가 드러나있다. 요즘 본 인테리어가 대부분 빈티지 & 노출 콘크리트 컨셉이다보니 오히려 내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하얀 벽에 무엇을 붙여야 할지 새로 페인트칠을 해야 할지.. 공간도 꽤 넓은 편이다. 테이블과 책장 등 가구 위주로 배치를 하더라도 공간의 휑한 느낌을 어떻게 없앨지 내 머리로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그냥 철거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화지 같은 공간 (그래도 건물 주인께 감사하다. 덕분에 공사비를 많이 아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내가 못하는 걸 다 배워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인테리어에 대한 공부는 너무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요즘 인테리어도 DIY가 대세인 것 같아 조금 욕심도 나긴 하지만 나의 시간과 자원가 역량은 매우 제한적임을 인정한다.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부분에서는 인테리어를 도와주실 건축가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간 기획을 위한 나의 역할이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건축가와 함께 공간을 디자인해본 경험은 없지만, 나의 빈 공간에 함께 서서 어떻게 만들어갈지 이야기 나누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나는 공간의 주인으로서 건축가에게 무엇을 이야기할까? 

1. 공간의 목적 - 공간을 운영하려는 이유
2. 공간의 사용자 - 공간에서 배움을 만들어갈 사람들, 고객, 인원수
3. 공간에서 이루어질 활동 - 배움을 위한 이벤트, 모임, 활동의 구체적인 계획
4. 공간에 넣고 싶은 것들 - 공간 내 활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과 가구, 집기류
5. 가용 예산 - 공간 인테리어에 쓸 수 있는 사업비, 여유자금
6. 공간의 특징 - 공간의 이름, 개인적으로 원하는 공간의 취향과 색깔, 디자인 등


일단 떠오르는 것은 이 정도인 것 같다. 그냥 사업계획서를 보여드리는 게 좋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건축가와 이야기 나누면 위의 목록도 다듬어지겠지. 무언가는 더 필요하고 무언가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정도를 건축가에게 설명하겠다고 생각하니 내가 더 알아보고 공부하고 구체화해야 할 것들이 드러난다.


특히 공간에서 이루어질 활동과 채울 것은 내가 생각하는 범위에서의 구상도 중요하겠지만 실제 공간에서 배움을 얻을 주체들, 공간을 사용할 사람들, 즉 고객이 바라는 바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다. 공간을 이용할 마을의 청소년과 청년들, 공간을 운영할 매니저나 배움의 멘토들이 건축가와 함께 모여서 공간 기획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2019년 여름 아이들과 진행했던 공주 원도심 놀이터 디자인 워크숍


또한 공간의 구획과 구상, 인테리어와 색감 등에 대해 건축가와 이야기 나눌 때 명확히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공간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대한 책들도 좀 더 찾아보고 다른 공간들도 더 유심히 보면서 공간 기획에 대한 나의 지식과 시야도 더 넓히면 좋을 것 같다. 직접 인테리어와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문가와의 원활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다. 이 정도의 준비라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공부의 범위 안에 있는 것 같다.


공간을 준비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고 즐겁다. 


공간 창업을 마음먹기 이전부터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대화, 관계를 디자인하는, 즉 '커뮤니티를 디자인'하는 일을 나의 전문 영역으로 규정하고 커뮤니티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공간이 가지는 힘'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유명한 커뮤니티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의 책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에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름다움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 포인트는 외부에서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아름다움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움은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어떤가 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집니다. 사람의 행동을 창출하기 위한 아름다움이니까요....

아름다운 공간이 제시되는 순간, 그들의 에너지는 엄청나게 상승합니다.

야마자키 료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 나의 '인생 책' 중 한 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다. 아름다움은 공감을 일으킨다. 공감은 소통과 참여를 낳는다. 소통과 참여는 새로운 행동과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내가 과거에 경험했고, 현재 상상하고, 앞으로 만들어갈 '커뮤니티 안에서 배움'의 과정이다. 아름다운 공간에서 아름다운 커뮤니티, 아름다운 배움을 만들고 싶다.


일단은 테이블과 의자 몇 개로 시작해본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채울 수 있으니까. 공간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어줄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보자.

당장 공간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게 테이블과 의자를 준비한다. 바닥 공사해야 하는데..


2020년 2월 5일 by 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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